◆ 탱고(Tango)
십여년전 이맘 때 페르난도 보테로의 전시회를 보러 갔던 기억이 난다.
둥글둥글하며 풍만한 느낌과 채도가 높은 밝은 색채, 명화를 코믹하게 재해석한 위트 있는 그의 그림은 보는 내내 기분 좋아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의 그림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림은 춤을 추고 있는 남녀를 그린 그림인데, 그림 속 느낌과 악기의 구성 등으로 볼 때 아마도 남미의 대표적인 춤 “탱고”를 추고 있는듯하다.
탱고가 언제부터 남미사람들의 삶에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탱고의 춤과 음악은 이제 그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때론 강렬하게 때론 서글프게, 또 인간실존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탱고는 삶의 고단함을 기쁨으로 승화시켜주는 음악으로서 이제 비단 남미만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세계 속의 한 장르가 되어버렸다.
격식 있게 교양을 쌓아야 들리는 음악이 아닌 무의식적이며 본능적으로 다가오는 탱고는 우리의 깊은 내면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Gidon Kremer)의 탱고연주로 처음 접하게 된 작곡가 피아졸라(Astor Piazzolla)의 곡들은 또 하나의 보편적 언어로서 클래식음악에 접목되어 한 획을 긋고 있는데, 올해는 그가 탄생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 보는 것과 듣는 것
20세기의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는 또 한명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는 “음악은 우리에게 그냥 듣는 것과 주의 깊게 듣는 것을 구분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아졸라의 음악은 주의 깊게 음악이 던져주는 메시지를 생각 안 해도 듣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그의 언어가 이미 몸 안을 돌아다니고 있게 된다. 마치 술을 한잔씩 계속 마시다가 결국 취하듯이 그의 음악도 어느새 인가 서서히 마음을 사로잡곤 하는 매력이 있다.
현존하는 남미화가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페르난도 보테로 또한 작품의 해석이 어렵거나 그로테스크적이지 않으면서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고 있다.
피아졸라와 보테로는 서로 국적은 다르지만 남미 라틴이라는 문화를 서로 공유하고 있으며, 자신의 예술로서 그것을 승화시켜놓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피아졸라의 음악을 단순히 듣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는 자신이 겪고 있는 감정과 심상을 음표를 이용해 악보 위에 그리고 있다.
보테로의 그림 또한 보는 것에 그치고 있지 않다. 춤을 추고 있는 그림은 물론 심지어 정물화에서 조차 그의 작품은 음악과 춤을 동시에 들려주고 있는 듯 하다. 보고 있지만 들리고, 듣고 있지만 보이는 그들의 작품은 우리의 감각과 상상력을 자극하며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프랑스의 물리학자 아르망 트루소는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고,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이다”라고 했다. 자신 분야만의 좁은 시선에만 갇혀있으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는 뜻으로, 두 명의 예술가는 분명 음악가이면서 화가이고 화가이면서 음악가이자 댄서로 느껴진다.
◆ 보테로(Fernand Botero)
유럽에서 공부하던 시절 갤러리들을 돌며 많은 거장들의 작품을 보러 다니곤 했는데, 당시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아(지금도 그렇지만)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의 설치작품 이외에 딱히 기억에 남는 작가가 없었다.
하지만 10여년전 덕수궁에서 만난 보테로는 지금까지도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세계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그는 자국에서 열린 살롱전에 입상 후 넓은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유럽으로 떠난다.
바르셀로나를 거쳐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그리고 파리의 루브르와 피렌체의 우피치에서 대작들을 공부하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위한 초석을 다진다.
그리고 다시 조국 콜롬비아로 돌아온 그는 유럽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렸던 자신의 작품들로 전시회를 열었는데, 한 작품도 팔리지 않았을 정도로 대중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후 멕시코로 이주한 그는 인생의 전환점이 된 작품을 그리게 되는데 “Still Life with Mandolin”으로 “만돌린이 있는 정물”이다.
그의 화풍은 이때부터 변화하기 시작했고 양감과 질감을 중요하게 표현했으며, 어두운 내용을 포함하는 그림에 밝은 색채를 사용해 아이러니함을 독특하게 표현했다.
아울러 인물과 사물의 크기와 비율을 비현실적으로 표현해 자신만이 바라보는 사회적 부조리를 유머러스하게 지적하기도 한다.
젊은 시절의 보테로가 활동하던 시대는 유럽의 피카소와 마티스가 미술계를 양분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한 미국에서는 잭슨 폴록(Jackson Pollock)같은 추상주의 미술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보테로는 확실히 그들과는 다른 선과 형태가 확실한 고전적인 요소들을 많이 보여준다.
그는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을 묘사하는 것은 필수적이다”라며 자신의 그림에 대한 철학을 말하고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과 상상력이 현대에 그를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만들어주었고 나아가 작품을 보는 우리를 미소 짓게 만들고 있다.
◆ 피아졸라(Astor Piazzolla)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작곡가 피아졸라는 탱고 음악을 클래식의 한 장르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그는 탱고의 대표적 악기인 반도네온을 시작하면서 음악에 첫발을 내디뎠다. 유년시절 부모를 따라간 뉴욕에서 바흐와 클래식음악, 재즈 등을 익숙하게 듣고 자라면서 자신의 탱고에 접목시키고자 했다.
보테로처럼 자국에서 열린 경연에서 입상해 파리로 유학을 떠나게 된 그는 수많은 음악가를 길러낸 나디아 블랑제(Nadia Boulanger) 문하에서 공부를 시작한다.
그때까지 그는 자신의 롤모델로 당대 유명 작곡가였던 스트라빈스키나 벨라 바르톡 (Bela Bartok)등의 음악을 따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반도네온 연주를 들은 스승은 피아졸라가 ‘탱고’에 있다고 조언했다. 그의 본질을 꿰뚫어 본 블랑제의 혜안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피아졸라 음악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다만, 자신이 태어난 곳의 음악과 자신이 하고 싶어했던 음악이 서로 접점을 찾아가며 작품과 음악활동이 무르익고 있을 때 그의 고향에서는 그의 음악을 배척하고 있었다.
탱고란 원래 부둣가의 노동자들이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구슬프고 애절한 음악이었는데 피아졸라의 ‘누에보(새로운) 탱고’는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항상 새로운 시도에는 기존의 틀을 유지하고 지켜나가고 싶은 세력과의 충돌이 있었다. 지금 누가 그의 음악이 탱고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본질적 요소의 탱고 음악을 한 차원 끌어올려 더 많은 대중과 소통하게 만들어준 그를 지금의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사랑하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 두 명의 시선
피아졸라와 보테로, 라틴계인 그들의 성향과 예술작품이 서로를 직접적으로 연상하게 만든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피아졸라의 음악은 보테로 보다는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에너지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고독감, 때때로 반 고흐(Van Gogh)의 강렬함도 느껴진다.
또한 보테로의 그림은 피아졸라의 선배인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의 여유롭고 위트 있는 음악이 좀더 연상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이 두 명의 예술가는 자국의 정치적 압력, 그리고 롤모델들의 모사를 통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 이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이들 예술이 내포한 휴머니즘에 있지 않을까 싶다.
보테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예술 작품은 슬픔보다 기쁨의 감정을, 예술은 오아시스나 피난처가 되어야 한다”. 그의 따스한 시선이 느껴지는 발언이다.
모든 예술가들이 고민하는 오래되고 공통된 문제가 있다.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나 어떠한 사실을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전달하는가이다. 그리고 보테로와 피아졸라는 자신의 그림과 음악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피아졸라의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를 들으며 어릴 적 부모님과의 추억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란다.
☞ 추천음반
피아졸라가 직접 반도네온을 연주한 <The Central Park Concert> 음반은 그의 음악세계와 대표작들이 녹아있다. 라이브 연주라서 더욱 생동감이 느껴진다.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Gidon Kremer)의 연주앨범들 또한 대중적이며, 그의 사계녹음과 오페레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마리아(Maria de Buenos Aires)>는 개인적으로 명반이라 생각한다.
한편 피아졸라의 말년에 발매한 1989년작 <La Camorra>는 그의 심오한 음악세계를 느껴볼 수 있다.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