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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와 차이코프스키

[클래식에 빠지다] 춤과 발레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와 프티파

2021.12.02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 춤과 발레

우리에게 몸짓은 예로부터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수단이었다. 언어가 생기기전부터 몸을 이용한 동작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 중 하나였으며, 영적인 의식을 통해 점차적으로 발전되었다.

춤을 뜻하는 영어단어 ‘Dance’는 산스크리트어의 ‘Tanha(탄하)’가 어원이며, 탄하는 ‘생명의 욕구’를 뜻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원초적 표현수단이자 상징인 몸짓은 리듬(rhythm)이라는 규칙적인 박동과 결합했고, 추상과 패턴화를 통해 현대에 와서 ‘춤’이라는 예술로써 재탄생 하게 되었다.

그 중 발레는 우리에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춤의 장르 중 하나이다. 발레는 라틴어로 ‘춤추다’라는 뜻의 ‘ballare’에서 이탈리아어 ‘Ballo(춤)’로 유래되어 현재의 발레 ‘Ballet’가 되었다.

르네상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발레는 궁정에서의 고상하고 사교적인 무용으로 시작했으며, 초창기에는 여성들의 참여가 금기시되어 귀족 남성들만 출수 있었다.

이런 발레가 당대 최고의 세력가문인 메디치가(Medici)의 딸 카테리나와 프랑스 국왕 앙리2세의 결혼으로 프랑스에 전파된다. 이후 발레 마니아이자 직접공연에도 출연하였던 태양왕 루이14세에 이르러서는 전문적인 왕립무용음악학교가 설립되면서 공연예술로서 큰 발전과 함께 예술적으로도 만개하게 되었다.

◆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흔히 발레 하면 떠오르는 나라 중 하나가 러시아인데, 러시아가 발레강국이 된 이유 중 하나는 프랑스혁명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프랑스 무용가들이 러시아로 대거 유입되면서부터이다.

당시 유럽최고였던 프랑스 무용가들은 자신들의 노하우와 예술성을 러시아에 전파했고 러시아의 음악가들과 작업을 하면서 더욱 더 발전하게 되었다. 또 다른 이유는 19세기 프랑스중심 이였던 유럽 발레가 남자무용수(발레리노)들의 급감으로 쇠퇴기를 맞이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 황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황실발레학교 ‘바가노바 아카데미(Vaganova Ballet Academy)’는 남녀 동수의 인원을 선발해 최고의 지도자와 함께 당시 발레를 주도하고 있던 파리, 로마 등에서 연수를 받게 했다. 

이후 기량이 일취월장한 러시아의 발레는 20세기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i Diaghilev)를 통해 전 유럽에 소개되었으며 센세이션과 함께 잊고 있었던 발레의 아름다움과 감동을 다시 유럽에 불러일으켰다.

한 차원 높아진 모던함과 깊은 예술성을 보여준 러시아발레는 자신들의 미적인 감각을 세계에 널리 알리며 100년이 지난 현재도 그 영향력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다.

◆ 차이코프스키와 프티파

19세기중반 러시아는 황실과 귀족들의 예술에 대한 투자로 최고의 무용수와 음악가, 화가, 안무가, 작가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그 중 프랑스 출신 마리우스 프티파(Marius Petipa)와 차이코프스키는 발레음악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당시에는 문화적으로 유럽의 변방이었던 러시아는 최고의 무용수들을 초청해 자국의 문화적 발전을 도모하였는데 그 중 한 명이 프티파였다.

25세에 수석무용수로 러시아에 망명하여 활동하다가 이후 안무가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자신의 안무와 창의력을 소화시켜줄 작곡가를 찾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은 작곡가들과 일을 하면서 갈등을 빚던 그는 자신보다 20살 이상 어린 젊은 작곡가 차이코프스키를 만나게 된다.

당시 국민악파와 다른 길을 걷고 있었던 차이코프스키는 좀 더 독일낭만주의적이고 서정적인 감수성을 지닌 자신의 음악관을 확립하고 있었다.

차르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자기애적이고 독단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던 프티파와 섬세하고 예민하며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차이코프스키는 성향상 서로가 상극이었다.

특히 때때로 트집잡는 프티파의 성격과 그가 먼저 짜놓은 안무에 음악을 작곡해 입히는 작업을 하였던 차이코프스키는 그와의 작업이 썩 내키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노련한 안무가는 자신의 안무를 완성시켜줄 음악가로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차이코프스키를 알아보았고 원하는 바를 고집스럽게 요구했다. 차이코프스키 또한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발레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통해 동작과 리듬에 따른 감정의 세밀한 표현을 발레음악에 구현했다.

단순히 반주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연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서 무용과 동등한 위치까지 발레음악을 끌어올렸으며, 모음곡으로도 자주 연주되는 그의 발레곡은 이러한 그의 발레에 대한 통찰력을 잘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프티파의 조수이자 조력가였던 레프 이바노프(Lev Ivanov) 역시 발레명작의 탄생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차이코프스키와 프티파가 서로 잘 화합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그리고 <백조의 호수>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2010년 12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국립발레단 제 135회 정기공연 <호두까기인형> 프레스 리허설에서 무용수들이 극중 한 장면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 2010년 12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국립발레단 제 135회 정기공연 <호두까기인형> 프레스 리허설에서 무용수들이 극중 한 장면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문학과 음악

발레와 오페라의 공통점은 이야기가 있는 공연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오페라는 대사를 통해 스토리라인을 보다 쉽게 알 수 있지만 발레는 대사와 노래가 없기 때문에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좀더 은유적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차이코프스키의 3대 고전발레인 <호두까기 인형>의 원작은 독일작가 E.T.A.호프만의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대왕>이고,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프랑스작가인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의 동화집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백조의 호수> 또한 러시아 전래동화를 기반으로 세 작품 모두 어린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동화를 기반으로 몸짓의 언어와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샤를 페로와 호프만은 전업작가가 아닌 법률을 다루는 판사와 변호사였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그들은 직업적으로 딱딱하게 법률을 처리하고 판단하며 사는 것에 답답함을 느꼈을 듯하며, 작가로써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글쓰기가 하나의 해방구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 중 <호두까기 인형>의 원작자인 E.T.A. 호프만은 개성 있고 독특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낮에는 대법원 판사로 일하면서 밤에는 글쓰기와 그림, 작곡을 한 다재 다능한 인물이다.

문학작품 <칼로 풍의 환상곡>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이후 도스토예프스키, 보들레르, 발작, 애드가 알렌포우 등 많은 후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특히 자크 오펜바흐(J. Offenbach)의 유명한 오페레타 <호프만의 이야기>는 그의 단편소설을 기초로 작곡되었다. 호프만의 타고난 상상력은 여러 언어에 능통하고 문학적 소양이 깊었던 차이코프스키의 감성을 자극해 발레모음곡의 ‘마스터 피스’로 재탄생 했다.

차이코프스키는 <호두까기 인형>의 작곡에 앞서 여러 새로운 시도들을 했는데, 당시 유럽에 흔치 않았던 첼레스타라(Celesta)는 악기를 사용해 작은 종소리 같은 효과를 보여주었다.

1막 마지막 곡인 ‘눈의 꽃’에서는 발레공연으로는 드문 어린이 합창단의 목소리를 사용했으며, 이 외 장난감 북, 장난감 나팔, 크레셀등 효과악기를 적절히 사용해 독특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발레는 리듬과 템포에 맞춰 안무가 주어지며 음악이 없는 발레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음악에 문학적 상상력이 없다면 그 발레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 우리만의 발레

인상주의 화가 에드가 드가(Edgar Dega)는 파리의 수많은 발레리나들의 공연과 리허설장면을 포착해 1500여점이 넘어가는 명작을 남겼다. 그의 작품에 간혹 등장하는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는 사실 그녀들의 스폰서들이다. 하지만 무용수의 위상이 떨어지면서 프랑스 발레의 주도권은 러시아로 넘어가게 된다.

흔히 발레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거쳐 러시아에서 완성되었다고 한다. 러시아 황실과 사회지도층들의 국가적 지원, 발레예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지금의 러시아 발레를 있게 만든 것이다.

발레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서양의 전통 춤으로 얘기할 수 있고 우리의 전통무용은 한국적 발레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세계를 휩쓸며 떠오르는 케이팝과 한국의 컨텐츠들을 보며, 분명 우리의 한국적 발레(전통무용)도 세계와 공유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연말이면 항상 공연되는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보며 우리문학과 춤을 입힌 호두까기인형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영국의 조각가 헨리무어(Henry Moore)는 춤이 가진 속성을 “가장 위대한 직접성과 강렬함”이라고 말했다.

☞ 추천음반

크리스마스기간에 자주 보게 되는 발레공연 <호두까기 인형(The Nutcracker)>의 음반은 예전 명반도 많지만 요즘 레코딩으로는 미하일 플레트네프 (Mikhail Pletnev)가 지휘하는 러시아 내셔널오케스트라(Russian National Orchestra)음반이 개인적으로 좋았다.

또 영국의 합주단체인 세인트 마틴 인더 필즈(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의 레코딩과 사이먼 래틀(Simon Rattle), 베를린 필의 조합도 너무 멋진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The Sleeping Beauty)>는 므라빈스키 이후 러시아지휘자 명맥을 이은 로제스트벤스키(Rozhdestvensky)의 연주를 추천한다.

끝으로 <백조의 호수> 또한 Rozhdestvensky의 연주 외에 몬트리올 필하모닉과 샤를 뒤뜨와(Charles Dutoit), 그리고 요즘 음반으로 네미 예르비 (Neeme Jarvi) 브레겐필, 특히 솔리스트로 나온 제임스 이네스(James Ehnes)의 바이올린연주가 압권이다.

김상균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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