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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 싶었지만…

[시가 된 노래, 노래가 된 시] ⑨양희은의 ‘한계령’

2021.12.29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양희은의 이 노래가 불린 후 한계령은 한낱 고개 이름이 아니다. 정태춘의 ‘북한강에서’ 이후 북한강이 그렇듯이, 더 이상 고유명사의 운명은 아닌 것이다. 노래를 듣는 이들의 추억이나 경험이 투영돼 어떤 이에게는 의미와 상징을 지닌 추상명사가 되었다.

우리는 한 번쯤은 구불구불한 그 고개를 넘으며 한계령휴게소에서 몸과 마음을 쉬고 갔다. 아니 누군가는 씻고 갔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설악의 사계는 한계령에서 절정을 이룬다. 어느 계절이든 한계령휴게소에서 아래를 굽어보면 숨이 멎는다. 단풍이 온통 채색한 능선, 백설이 애애한 계곡,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신록, 안개가 피어오르는 산 아래, 구름도 쉬어 넘는 정상을 바라보며 오만가지 상념에 잠기지 않는다면 그건 당신의 인생이 지독히도 무미건조한 거다. 한계령은 나의 삶을 돌아보는 천상의 곳이다. 이곳에 서면 그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한계령에서는 무조건 양희은의 청아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강원 산지에 눈이 내린 지난 2019년 3월 31일 오전 인제와 양양을 잇는 한계령 정상 휴게소에서 관광객들이 설경을 즐기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강원 산지에 눈이 내린 지난 2019년 3월 31일 오전 인제와 양양을 잇는 한계령 정상 휴게소에서 관광객들이 설경을 즐기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고단하고 남루하고 핍진하고 비루한 이 인생, 왜 나만 이리 힘들게 사는 걸까. 바람처럼 살다 가고 싶다. 이 산 저 산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살고 싶다. 그런데 산은 냉정하게 나를 채찍질한다. ‘울지 말아라’ 하고 ‘잊어버려라’ 하고 ‘내려가라’고 한다. 내 상처를 감싸주기는커녕 꾸짖는다. 슬픔을 삼켜라, 집착과 미련에 얽매이지 마라, 현실로 내려가라고 지친 내 어깨를 떠민다. 아니, 나를 달래는 것일까, 위로하는 것일까,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니 내려가라고 용기를 주는 걸까.

이 노래의 탄생이 그랬다. 이 노래는 발표 당시인 1985년부터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가 작사·작곡한 것으로 돼 있었다. 하지만 발표 후 20년이 넘어서 ‘사연’을 지닌 원작자가 나타났다.

한계령 아래 산골짜기 오색에서 태어난 정덕수라는 무명시인이었다. 가난해서 어머니는 일찍 집을 나가고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그는 무작정 상경해 봉제공장에서 삶을 이어갔다. 그러다 1981년 나이 열여덟에 그런 삶을 내던지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어릴 때부터 설악에서 나무지게를 지고 다니며 한계령의 구름과 바람을 벗 삼아 공책에 ‘한 줄기 바람처럼 살고 싶다’고 글을 끄적이던 소년은 그렇게 한계령 시인이 된다. 그의 고난과 꿈은 ‘한계령에서’라는 연작시로 승화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한참일 때 그는 대청봉에서 등반객들과 산장에 묵었다. 그때 여대생들이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노랫말이 귀에 익었다. 자신이 쓴 시의 구절들과 너무 비슷했다. 하지만 당시 저작권법이 제대로 정비되지도 않은 데다, 생계에 신경을 쓰다 보니 뒤늦게 권리를 주장하는 일도 귀찮았다. 그러다 노래가 나온 지 22년 만인 2007년 지인들이 제대로 바로잡아야 한다며 발 벗고 나서 비로소 이 노래의 작사가로 인정받게 된다.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는 하덕규와 함께 공동작사가로 등재돼 있는데 많은 자료에는 여전히 하덕규 한 명으로 돼있다.

하덕규는 이 시에 감명을 받아 부분부분 발췌해 가사로 만들었음을 인정했고 그 동안의 저작권료에 대한 보상을 하겠다고 했다. 정덕수는 DSLR 카메라 한 대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 소년 덕수는 어느덧 쉰여덟이 되어 스스로 한계령이 되었다. 시집 ‘한계령에서’와 ‘다시, 한계령에서’를 내고 설악의 사진을 찍으며 설악에서 산다.

그런데 하덕규의 고향도 한계령 자락 홍천이었으니 두 사람의 만남과 노래의 탄생은 운명적으로 수상하다. 하덕규가 이 노래를 만들었을 때 그 심정은 청년 정덕수와 같았다. 
 
1981년 기타리스트 함춘호와 함께 ‘시인과 촌장’으로 데뷔한 하덕규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의 날들을 보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나 많았다(‘가시나무’). 지금 목회자가 된 그는 한 간증에서 말하길, 20대 중반 한계령에서 떨어져 죽을 마음으로 어릴 때 늘 바라보던 마음의 고향 한계령을 찾았다고 한다. 거기서 그는 죽음 대신 삶의 영감과 노래를 얻었다. 산은 우지 마라고 하고 내려가라 했다 한다. 다시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라고 밀어내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 감흥을 노래로 만들어 선배 양희은에게 주었다. 비록 원작자의 허가 없이 군데군데 가져다 곡조를 붙였지만, 하덕규의 탁월한 시적 감성과 재능이 노래의 자양분이 된 것이다. 

1985년에 처음 발표된 ‘한계령’. ‘양희은의 새 노래 모음’ 앨범에 실렸다. 양희은의 나이 서른셋이었다. 더 이상 청춘의 우상인 청바지 나이가 아니었다. 양희은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다.
1985년에 처음 발표된 ‘한계령’. ‘양희은의 새 노래 모음’ 앨범에 실렸다. 양희은의 나이 서른셋이었다. 더 이상 청춘의 우상인 청바지 나이가 아니었다. 양희은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다.

양희은의 ‘한계령’은 그렇게 길 잃은 양처럼 고향을 찾은 두 사람에게 빚을 진 노래다. 이 노래는 그러나 앨범이 나온 지 5~6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입을 타고 대중에게 불리기 시작했다. 양희은이 서른 세 살에 이 노래를 내놓을 때 회사에서는 노래가 너무 무거워 안 팔릴 거라며 홍보를 포기했다고 한다.

한계령(寒溪嶺)은 인제에서 양양으로 넘어가는 백두대간 고갯길이다. 한자 의미는 ‘차가운 시내’다. 높이 1004m로 영동·영서 지역의 분수령을 이룬다. 영동과 영서를 잇는 대관령, 미시령, 진부령 중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준령이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면 오색약수터가 나온다.

조선시대에는 ‘오색령’으로 불렸다가 일제 치하에서 한계령으로 바뀌었다. 고개 이름을 두고 인접한 두 지자체 간에 갈등이 있었다. 양양군은 ‘오색령’으로 복원하길 원했으나 인제군은 반대했다. ‘오색’은 양양군 서면 오색리, ‘한계’는 인제군 북면 한계리의 지명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이곳이 자기 관할인 양양군은 한계령 휴게소에 ‘오색령’이라 적힌 표지석을 설치했고 오색령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에는 오색령이 안 나온다. 인제군은 휴게소에 양희은의 노래비를 설치하려고 노력했지만 무위로 끝났다.

44번 국도에 있는 한계령휴게소는 한계령만큼 사랑을 받는 곳이다.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빼어난 작품으로 1982년 한국건축가협회 대상을 받았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부드럽게 안겨 있는 듯한, 온통 검은 색의 겸손한 건물이다. 4면이 개방된 구조, 자연을 조망하는 긴 테라스,  설악의 바람과 눈을 견디는 경사진 지붕이 일품이다.

이렇게 폭설이 내리는 날이면 한계령이 부르는 듯하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한계령은 기꺼이 묶이고 싶은 그 어떤 것이면서도, 또는 아니기도 한 것이다. 한계령에 올라 눈부신 고립과 완전한 고독이 주는 축복에 몸 둘 바를 모르면서도, 한편으론 그 격한 감정에서마저도 자유롭고 싶은, 또는 차단을 극복하고 싶은 곳이다. 인생이란 폭풍우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빗속에서도 춤을 추는 법을 배우는 것.  

‘한계령’은 하덕규 작사·작곡으로 발표됐지만 20년이 지나서 정덕수의 ‘한계령에서1’이라는 시의 구절구절을 원작자 허가 없이 발췌해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은 하덕규와 정덕수가 공동작사가로 돼있다. ‘한계령’은 2004년 문학계간지 시인세계가 설문조사한 ‘시인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요 노랫말’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표를 받았다. 정덕수는 ‘한계령 시인’으로 불리며 설악에서 살고 있다.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블로그 ‘寒士의 문화마을’에 실린 사진.
‘한계령’은 하덕규 작사·작곡으로 발표됐지만 20년이 지나서 정덕수의 ‘한계령에서1’이라는 시의 구절구절을 원작자 허가 없이 발췌해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은 하덕규와 정덕수가 공동작사가로 돼있다. ‘한계령’은 2004년 문학계간지 시인세계가 설문조사한 ‘시인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요 노랫말’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표를 받았다. 정덕수는 ‘한계령 시인’으로 불리며 설악에서 살고 있다.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블로그 ‘寒士의 문화마을’에 실린 사진.

(원작 시) 한계령에서1/정덕수

온종일 서북주릉(西北紬綾)을 헤매며 걸어왔다

안개구름에 길을 잃고
안개구름에 흠씬 젖어
오늘, 하루가 아니라
내 일생 고스란히
천지창조 전의 혼돈
혼돈 중에 헤매일지

삼만육천오백날을 딛고
완숙한 늙음을 맞이하였을 때
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담배 연기빛 푸른 별은 돋을까

저 산은,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상처 아린 옛 이야기로
눈물 젖은 계곡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구름인 양 떠도는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홀로 늙으시는 아버지
지친 한숨 빗물 되어
빈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온종일 헤매던 중에 가시덤불에 찢겼나 보다
팔목과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
빗물 젖은 옷자락에
피나무 잎새 번진 불길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증(愛憎)의 꽃으로 핀다
찬 빗속
꽁초처럼 비틀어진 풀포기 사이 하얀 구절초
열 한 살 작은 아이가
무서움에 도망치듯 총총히 걸어가던
굽이 많은 길
아스라한 추억 부수며
관광버스가 지나친다

저 산은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내려가라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서북주릉 휘몰아온 바람
함성 되어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1981년 10월 3일 한계령에서 고향 오색을 보며…)

※가사 중 ‘우지 마라’는 ‘울지 마라’의 틀린 표기다. ‘홍도야 우지 마라’도 마찬가지다.
‘ㄹ’ 받침 탈락은 ‘우네’나 ‘노세’처럼 ‘-네, -세’ 앞에서만 가능하다.

한계령을 위한 연가/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 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처음 짧은 축복에 몸 둘 바를 모르리

한기봉

◆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과 신문윤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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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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