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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여기 서 있나

[시가 된 노래, 노래가 된 시] ⑫전인권, <사랑한 후에>

2022.02.28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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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하루 지나고 언덕 저편에
빨간 석양이 물들어 가면
놀던 아이들은 아무 걱정 없이
집으로 하나둘씩 돌아가는데
나는 왜 여기 서 있나
저 석양은 나를 깨우고
밤이 내 앞에 다시 다가오는데
이젠 잊어야만 하는 내 아픈 기억이
별이 되어 반짝이며 나를 흔드네
저기 철길 위를 달리는 기차의
커다란 울음으로도 달랠 수 없어
나는 왜 여기 서 있나
오늘 밤엔 수많은 별이 기억들이
내 앞에 다시 춤을 추는데
어디서 왔는지 내 머리 위로
작은 새 한 마리 날아가네
어느새 밝아온 새벽 하늘이
다른 하루를 재촉하는데
종소리는 맑게 퍼지고
저 불빛은 누굴 위한 걸까
새벽이 내 앞에 다시 설레이는데
(전인권 작사, 외국 곡, 1988년)

 
지방 소도시에서 자란 나는 방과 후면 집에 가방을 던져놓고 골목으로 뛰쳐나갔다. 동네 아이들과 소란스럽게 구슬치기 딱지치기 하다 보면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지고, 밤의 그림자는 골목길을 사과 베어먹듯이 조금씩 쳐들어왔다. 어느 집에선가 모락모락 밥 짓는 냄새가 골목까지 흘러나왔다. 굴뚝 저 너머 기적 소리가 아스라이 들리고, 같이 놀던 작은 새들도 파드득 둥지를 찾아 떠났다.

“개똥아 밥 먹어라.” “오빠, 엄마가 밥 먹으래.”
아이들은 하나둘씩 자기 구슬을 챙겨 집으로 돌아갔다. “덜컹” 양철 대문 닫히는 소리만 골목에 남았다.

그 골목에서의 홀연한 느낌을 기억하는가. 동무 엄마들은 다들 부르는데 울 엄마는 어디 갔는가? 혼자 남은 골목길, 외로움을 외로움으로 깨닫지도 못했을 나이에 가슴에 싸하니 불어오는 어떤 바람 소리. 나는 왜 여기 서 있나.

그건 인생 최초의 고독이다. 아니, 최초의 전율이다. 평생을 부적처럼 붙어 다닌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풍경적 영감이었다.

“나는 어느 날 내 삶에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죽음의 실체를 뼈저리게 느꼈다.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어릴 때 나는 공부하는 것보다 어머니와 놀고 싶었다. 어머니는 자식들과 먹고살기 위해 매일 새벽 6시경이면 남대문시장으로 장사를 나가셨다. 어머니는 매일 사이렌이 울리기 직전에야 돌아오셨다. 우리는 어머니의 절대적인 사랑의 힘이 필요했다. 우리 삼형제 중 나를 어머니는 유독 이뻐하셨다.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나는 그 후 지독한 허무주의에 빠졌다. 이 노래의 사연은 가사 안에 모두 있다.”

전인권은 2019년 경향신문에 20회 분량으로 직접 써서 연재한 ‘전인권의 내 인생’에서 이 노래의 탄생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랑한 후에’는 실연의 노래가 아니었던 거다. 박효신 노래에 같은 제목의 유명한 노래가 있는데 그건 실연의 아픔을 노래한 곡이다. 전인권의 ‘사랑한 후에’는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사모곡이다. 그는 한 방송에서 “어머니 돌아가시고 저녁부터 밤 지나고 새벽에 이르기까지 얘기를 쓴 것”이라고 말했다.

‘사랑한 후에’는 그룹 들국화가 해체된 후 전인권이 1988년 발표한 첫 솔로 앨범에 실렸다.
‘사랑한 후에’는 그룹 들국화가 해체된 후 전인권이 1988년 발표한 첫 솔로 앨범에 실렸다.

가수들에게 어머니란 존재는 자주 음악으로 환생한다. 전인권이 음악을 시작하면서부터 표상으로 삼았던 비틀즈의 ‘Let it be’도 폴 매카트니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꿈을 꾸고 깨어나 바로 만든 노래다. 실의에 빠져있던 그에게 어머니는 꿈 속에 나타나 “그냥 내버려 둬라, 다 내버려 둬라”라고 말했다.

‘사랑한 후에’는 사실 사모곡이 아니어도 좋다. 가사에 ‘어머니’란 단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석양, 집, 밤, 별, 기차, 새, 새벽, 종소리, 불빛뿐이다. 이 노래는 한 편의 소묘에 담긴,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다. 짧지 않은 가사에서 한 문장만 꼽으라면 단연코 이 질문이어야 할 것이다. “나는 왜 여기 서 있나”

어릴 때부터 화가가 되고 싶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잠시 국제극장 영화간판 그리는 화공과 만화가 조수를 했던 전인권은 글도 잘 썼다(그의 선친은 한학자였다). 많은 노래를 만들며 직접 작사했는데 지금도 빛을 잃지 않은 가사들이 많다.

80년대 쌍문동 그 골목길, 정다운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은 ‘응답하라 1988’에는 ‘걱정 말아요, 그대’가 자주 흘러나왔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절망과 질곡의 그 시대에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릴 거야/행진, 행진, 행진하는 거야”(‘행진’)라고 도도하게 포효했고, “해가 뜨고 해가 지면/달이 뜨고 다시 해가 뜨고/꽃이 피고 새가 날고/서로 다르게 같은 시간 속에/어두운 곳 밝은 곳도/앞서다가 뒤서다가/다시 돌고 돌고 돌고”(‘돌고 돌고 돌고)라며 세상사의 알 수 없음을 말하며 실의에 빠진 아픈 청춘을 위무했다.

전인권은 (풍기는 인상과 차림과 달리) 결코 허무주의자나 대책 없는 배가본드가 아니다. 그의 노래들은 인생을 관조하고 희망과 의지를 말했다. 그의 온몸을 관통해 나오는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드높고 거친 샤우팅, 그 외피 안에는 의외로 섬세한 인문학적 성찰과 아포리즘을 품은 내피가 있다. 그래서 그가 지은 노랫말은 어느 것 하나 시시하지 않다.

이 노래는 이상하게 나이 들수록 좋아지는 노래다. 나이 먹어서야 가사에 감정이입 할 수 있다. 이 노래를 듣자면 소주 한 잔을 반주 삼지 않을 수 없다. 석양은 어찌 나를 재우는 게 아니라 깨우는가, 내 아픈 기억은 어찌 별이 되어 반짝이며 나를 흔드는가, 저 새벽의 불빛은 날 위한 것인가.

한 편의 성장소설을 읽는 느낌, 나의 아련한 유년이 머릿속에 리플레이 되는 환영, 그리고 “난 대체 무얼 하며 살아왔지”하는 이 시점의 회한까지 겹쳐 노래는 애잔하면서도 처연하다.

노랫말은 전인권의 손에서 나왔지만, 곡은 그가 만든 게 아니다. 그가 좋아했던 영국 포크록 가수 알 스튜어트(Al Stewart)가 1978년 발표한 ‘The Palace of Versailles(베르사이유 궁전)’의 곡조를 빌렸다. 가사는 프랑스 혁명을 다룬 것으로 조금 무시무시하다. 그 노래에는 또 원곡이 있는데 르네상스 시대 영국의 교회음악이었다. ‘사랑한 후에’의 핏줄은 찬송가였던 것이다.

전인권의 번안곡은 템포감이 있는 원곡에 비해 훨씬 느리고 어둡고 무겁고 애상감이 넘치는 록발라드로 재탄생했다. 번안곡이 원곡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폰을 꽂았다. 지금은 사라진 힘찬 기적 소리와 함께 노래가 열렸다. 이어 기차 바퀴가 레일 위를 지나는 “철커덕 철커덕” 금속성 소리가 몇 번 나고 키보드 전주가 이어지며 전인권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긴 하루 지나고…” 첫 6음절에서부터 고음이 압도한다. 2옥타브 “솔솔솔 솔솔#솔”이다. 누군가는 망치로 정 대가리를 여섯 번 명중시키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이런 고음 소절을 안정적으로 부를 수 있는 가수는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몇 명 없다고 한다. 야성의 보컬리스트 전인권은 고음에서 일부러 소리를 찌그러뜨려 특유의 탁하면서 애절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각설하고 이제 ‘들국화’를 말해야 할 때다. 암울한 군사독재 정권, 민주화 열망이 내적으로 폭발하던 1980년대 뮤지션들은 그 시대의 분위기를 제대로 음악으로 만들 수도, 부를 수도 없었다.
 
1985년 언더에서 활동하던 네 명의 남자가 만난다. 사자머리 전인권(보컬, 기타), 허성욱(키보드), 최성원(베이스), 조덕환(보컬, 기타)이다. 의기투합한 그들은 홀연히 ‘들국화’라는 밴드를 결성한다. 그리고 불멸의 데뷔 앨범을 낸다.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등이 담긴 이 앨범은 방송 출연 없이 소극장 공연만으로 100만 장 이상이 팔리는 한국 대중음악계의 신화를 만든다. 20년이 지난 2007년 경향신문은 음악전문가들의 투표로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을 발표했는데, 그 첫 자리는 이 앨범에게 돌아갔다.

1985년 결성한 전설의 록그룹 ‘들국화’가 낸 1집 앨범 재킷 앞면. ‘행진’과 ‘그것만이 내 세상’이 실린 이 앨범은 입소문으로만 100만 장이 팔렸고 20년 후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의 첫 자리를 차지했다. 위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부터 전인권, 조덕환, 최성원, 허성욱.
1985년 결성한 전설의 록그룹 ‘들국화’가 낸 1집 앨범 재킷 앞면. ‘행진’과 ‘그것만이 내 세상’이 실린 이 앨범은 입소문으로만 100만 장이 팔렸고 20년 후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의 첫 자리를 차지했다. 위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부터 전인권, 조덕환, 최성원, 허성욱.

2집 앨범은 1집만큼 평가를 받지 못했다. 들국화는 2년 만인 1987년 해체된다. 혼자가 된 전인권은 그 이듬해 솔로 1집을 발표하고 여기에 실린 ‘사랑한 후에’가 큰 사랑을 받았다.

들국화의 노래는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80년대를 헤쳐나간 청춘에게 지하의 교과서였다. 대폿집에서는 대체불가 카타르시스였다. 서정성 짙은 통기타 포크 가객 정태춘과 김민기와는 결이 달랐다. 그의 피는 로커다. 사람들은 그의 장르를 포크락, 락발라드라고 부른다.
   
그래서 전인권의 노래는 전인권만이 불러야 한다. 아무도 감히 넘볼 수가 없다. 유튜브에서 이 노래를 검색하면 정말 많은 가수가 부른 것을 들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가수다2’에서 부른 한영애 버전이 최고다.

전인권 이름 석 자에는 대마초라는 꼬리표가 있다. 5번 감옥을 들락날락했고 요양원에 유폐도 되었다. 경향신문에 연재한 자서전에 그는 이렇게 썼다.

“내 탓이오, 내 탓이로소이다. 이 말처럼 나를 키워준 말은 없다. 나의 모든 건 내 탓이 맞다. 내 삶의 참 많은 일들이 내 탓이었다.”

68세 전인권은 들국화처럼 살아남은 ‘전설’이다. (유튜브 캡처)
68세 전인권은 들국화처럼 살아남은 ‘전설’이다. (유튜브 캡처)

들국화의 여러 멤버들은 먼저 하늘로 떠났다. 전인권은 강인하게 살아남았다. 세월과 무관한 영원한 팬덤, 음악에 대한 열망, 가족에 대한 사랑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이제는 어렵지 않게 그를 방송에서 본다. 68세, 여유 있는 모습이다. 후배들과 함께 노래하는 그에게 세월의 더께는 탁성을 더 짙게 칠해주었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 있는 전설이다.

“너 없이 어찌/이 쓸쓸한 시절을 견딜 수 있으랴//너 없이 어찌/이 먼 산길이 가을일 수 있으랴//이렇게 늦게 내게 와/이렇게 오래 꽃으로 있는 너//너 없이 어찌/이 메마르고 거친 땅에 향기 있으랴”(도종환 시, ‘들국화2’ 전문)

한기봉

◆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과 신문윤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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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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