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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의 개척자들] 요 라 텡고(Yo La Tengo)

2024.02.15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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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록’, ‘인디펜던트 록’이라는 용어는 처음 아마추어에 가까운 소규모 음반사와 계약한 밴드들을 지칭하는 데에 사용됐다. 

사실 인디 록은 가장 모호한 장르 중 하나인데, 그 테두리 안에서 활동하는 밴드들의 음악적 소분류가 너무도 다양하게 나눠지기 때문이다. 

‘독립’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에서 가늠해볼 수 있듯 인디 록의 경우 DIY 정신으로 무장한 펑크,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진 결과물, 혹은 거대자본을 거부하는 아웃사이더들을 위한 음악들로 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이는 기존 록이 지닌 향락적 성격들과는 거리가 멀었고 때문에 똑똑하고 교육받은 힙스터들의 전유물이 됐다. 이러한 제작방식의 성격으로 인해 보다 창의적인 결과물들이 인디 록 씬에서 다수 배출되기도 한다.

1977년 버즈콕스가 자신들의 EP <Spiral Scratch>를 독립적으로 제작 및 배포하면서 인디펜던트 제작 방식이 주목을 끌었다. 밴드는 초도 1000장을 매진 시킨 이후 1500장을 재발매 하면서 규모를 키워갔고 그 과정에서 인디 레이블의 청사진을 완성해갔다. 

한때 인디를 대표했던 밴드 R.E.M.의 경우 이들의 초창기 레이블 I.R.S가 메이저로 흡수되기도 했고 밴드 또한 메이저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하고 스타디움 공연을 매진시키는 등 공룡 같이 체급이 커지면서 인디라는 말이 무색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R.E.M.을 거쳐 인디 음악이 대중화 될 조짐은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부터 명백해 졌다. 인디 록으로 인해 그런지/얼터너티브 밴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수많은 명문 인디 레이블들이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작품들을 내놓았는데, 이를테면 서브 팝의 너바나, 크리에이션의 오아시스의 경우 오히려 메이저를 뛰어넘는 성과를 이뤄냈다. 

이처럼 어떤 밴드는 메이저로 진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다시 ‘대학원’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직업을 얻곤 했다.

서울 서교동 홍대 에반스라운지에서 국내 인디밴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서울 서교동 홍대 에반스라운지에서 국내 인디밴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그렇다면(말이 좀 우습지만) 진정한 인디록의 수호자는 과연 누구일까. 단연 ‘요 라 텡고(Yo La Tengo)’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요 라 텡고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었다. 이들은 활동 이래 꾸준히 인디 레이블에서의 발매를 고수하면서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고 존경받는 인디 록 밴드가 되었다. 

요 라 텡고가 소속되어 있는 레이블 마타도어의 동료인 페이브먼트도 물론 중요한 인디 록 밴드이지만 요 라 텡고보다 시작이 늦었고, 무엇보다 밴드가 한번 해체되기도 하는 등 요 라 텡고 만큼 꾸준하게 활약하지는 못했다. 

어느 덧 결성 40주년을 맞이한 요 라 텡고는 그 긴 세월동안 활동의 공백 없이 매번 중요한 앨범들을 발표해오며 아직까지도 그 커리어를 이어 나가고 있다. 

다양한 공연 활동은 물론 <심슨 가족> 10시즌의 어느 에피소드에서는 이들이 연주한 테마가 삽입되기도 했으며, 영화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에서는 벨벳 언더그라운드로 출연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발표하는 앨범들이 매회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고 밴드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의미 있는 족적들을 전개해갔다.

뉴저지 교외에서 성장한 아이라 카플란은 어렸을 때 기타를 구입하고는 몇 년 동안 방치했다. 

처음에는 음악가가 아닌 언론인으로서 활동했던 아이라 카플란이 조지아 허블리를 만난 것은 뉴욕의 떠오르는 밴드들을 취재하던 도중이었다. 

이 둘은 결혼해 호보켄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밴드를 결성하는데, 뉴욕 메츠의 중견수 리치 애쉬번이 충돌을 피하기 위해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유격수 엘리오 차콘에게 외쳤던 문구인 “Yo La Tengo”, 즉 “내가 잡았어”를 팀 이름으로 정한다.

이후 요 라 텡고는 이 부부를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영향을 흡수하면서 독특한 분위기와 사운드를 개발했다. 

초창기에는 비교적 차분한 팝 위주의 곡들을 만들었는데 수차례 베이시스트가 교체된 이후 1991년 제임스 맥뉴가 합류하면서 이 세 명의 조합은 지금에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물론 요 라 텡고는 아이라 카플란과 조지아 허블리 부부가 중심이 됐지만 제임스 맥뉴의 창의력 또한 점점 중요해졌고, 이들은 서로 악기 포지션을 바꾸기도 하면서 열려 있는 창작활동을 펼쳐갔다.

데뷔 무렵 기타 중심의 간단한 음악을 했던 요 라 텡고는 경력이 발전함에 따라 음악 또한 다양한 분야를 포괄해갔다. 밴드가 급격하게 치고 올라갔던 시기는 제임스 맥뉴가 합류하고 밴드가 마타도어와 계약했던 1990년대 초였다. 

1993년 작 <Painful>, 그리고 <Electr-O-Pura>를 통해 밴드는 훨씬 더 크고 중요하며 독자적인 음악을 완성해내면서 스스로의 위치를 끌어 올렸다. 

밴드 경력의 정점은 1997년 작 <I Can Hear the Heart Beating As One>에서였다. 

각국의 비평의 찬사는 물론 30만장 이상을 팔았는데, 이는 요 라 텡고가 얼마나 음악적 야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지를 호들갑 떨지 않으면서 보여주는 작품이었고, 인디 록이 과연 무엇인지를 감히 정의 내린 기록이기도 했다. 

이후 <And Then Nothing Turned Itself Inside-Out>, <I Am Not Afraid of You and I Will Beat Your Ass> 등 주로 긴 제목의 앨범들에서 이들의 어떤 일관된 음악적 구성들이 두드러졌다. 

2000년대 이후에는 <준벅>과 <올드 조이>, <숏버스>, 그리고 해양 다큐멘터리 <The Sounds of Science> 등의 영화 음악 작업을 하기도 했으며, 선 라의 <Nuclear War> 커버 EP, 그리고 <We Have Amnesia Sometimes>처럼 아예 대놓고 급진적인 프리 재즈, 드론, 앰비언트 작업물들을 내놓기도 했다. 

긴 공백 없이 꾸준히 양질의 앨범들을 발표해온 이들은 2023년 2월 <This Stupid World>까지 여전히 왕성한 창작활동과 투어를 이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국내에는 세 차례 내한했다.

기타 중심의 독특한 실험과 친숙한 팝을 오갔던 요 라 텡고는 음악에 대한 끈질긴 헌신과 인디 레이블과의 장기간의 제휴로 인해 ‘인디 록의 선구자’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었다. 

정작 이들은 밴드나 씬에 대한 유산과 성취 보다는 밴드 스스로가 찾을 수 있는 자유에 더 초점을 두는 것 같았다.

실제로 아이라 카플란은 인터뷰 중 밴드의 커리어에 관한 질문에 대해 자신들은 유산이라고 할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관점을 요구한다 답했다. 

자신들이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며 그저 우리가 아는 것은 음반을 만들고 있는 것뿐이라 덧붙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는 자유는 선물이라고 말했다. 자유롭게 폭넓은 작업들을 해오고 있지만 정작 야심이라곤 없었다. 

요 라 텡고의 이야기는 특별히 주목할만한 것이 못될 수도 있다. 부부가 함께 오랜 시간 같은 팀에서 활동해오고 있지만 원만한 부부생활이 뉴스가 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소닉 유스처럼 결혼 생활과 밴드 활동이 동시에 중단되는 상황을 보면 가정생활과 예술활동을 공존시키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요 라 텡고는 그걸 몇 십 년째 해오고 있다.

요 라 텡고는 인디 록 밴드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해냈다. 무엇보다 끈질기게 존재해냈고, 지금도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업로드한 비디오 하나로 하루 아침에 스타덤에 오를 수 있는 작금의 시대에도 여전히 기존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고막을 강타하는 기타 노이즈와 부드러운 포크 발라드를 오가는 독창적인 뉘앙스를 창조해온 밴드는 의도와 상관없이 순수함 그 자체에 도달하려 하는 듯 비쳐지곤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이(좀 낯뜨겁지만) 인디 음악이 추구해야 하는 방향이라고 웅변하는 듯 보일 때가 간혹 있다.

☞ 추천 음반

◆ I Can Hear The Heart Beating As One (1997 / Matador)

밴드의 대표작이자 90년대 인디 록의 교과서. 얼터너티브, 슈게이즈, 포크, 보사노바, 사이키델릭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절묘하게 혼합된 집대성 적인 작품. 

영미권 인디 씬은 물론 2000년대 초 다수의 한국 인디 밴드들 또한 이 앨범에게서 직간접적으로 영향 받았다 고백하는 사례들이 다수 있었다. 

◆ And Then Nothing Turned Itself Inside-Out (2000 / Matador)

<I Can Hear The Heart Beating As One>에서 집대성된 요 라 텡고의 특성은 바로 이 2000년도 발매 작을 통해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진다. 

격렬한 멜로디의 기복은 없지만 전편을 통해 떠도는 다운 템포의 비트, 그리고 담담한 목소리와 분위기가 천천히 마음에 남겨진다. 18분에 달하는 마지막 곡 'Night Falls On Hoboken'이 끝난 이후 앨범이 주는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한상철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On the Pulse>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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