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만큼 다양한 색깔을 지닌 도시가 있을까?
우리나라 제2의 수도 부산광역시는 시대별로 확연히 다른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멋들어진 해운대와 광안리 해변, 야경을 더욱 빛내는 마린시티와 광안대교, 서핑의 성지 송정으로 대변되는 화려한 바다와 부산국제영화제 등 글로벌 메가시티로 발돋움하는 도시가 부산이다.
허나 전후 세대들에게 부산은 동족상잔의 비극 6·25에서 살아남은 낙동강 이남 피란의 땅이자 전쟁 동안 임시수도였던 '피란 수도'의 땅이다.
영화에서 보았던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 등 전후 피폐한 나라의 경제를 일으킨 경공업의 도시기도 하다.
부산만큼 다이내믹하고 열정적인 도시가 또 있을까.
그래서일까? 100가지 지역문화를 엄선한 '로컬100'에 부산은 금정산성축제와 UN평화문화특구, 부산진구의 호천문화마을 등 무려 여덟 개의 콘텐츠를 이름 올린 문화의 도시다.
인천과 서울이 각각 5개, 대구가 6개의 콘텐츠를 보유한 것보다 훨씬 다양한 볼거리 이야깃거리가 부산 곳곳에 있었단 말이다.
아름다운 바다를 에두른 휴양의 도시 부산, 그렇다면 한 세기 전, 아니 좀 더 거슬러 올라간 부산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 답을 로컬100 '동래읍성지'에서 찾기로 했다.
이름처럼 부산(釜山)은 가마솥을 엎은 형태의 산이 많은 땅이다.
지금에야 유명 관광지가 된 감천마을, 호천마을 같은 산동네 마을들도 감당할 수 없이 많이 떠밀려온 피란민들이 산등성이에 보금자리를 만든 곳이다.
일본인 공동묘지의 묘비 돌들을 주춧돌 삼고 구불구불 산복도로 이어지는 풍경은 대한민국이 급성장 하는 내내 부산의 오랜 상징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오래전, 부산의 옛 이름은 동래였다. 근대 이전까지 부산은 '동래부'라는 이름으로 현재의 동래구를 포함해 연제구, 금정구 일대를 아우른 이른바, 동래권역 정도를 중심부로 했다.
조선시대에는 초량 쪽에 왜관(倭館)을 설치하면서부터 동래는 일본과의 무역 거점 도시로 크게 성장했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파견됐듯이 일본의 사신단이 조선으로 들어오면 수도 한성까지 안내하기엔 1592년(선조 25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의 기억이 너무도 참혹하여 동래에서 일본사신단을 맞이 하는데 그쳤다.
동래는, 아니 부산은 역사에 있어 일본을 빼고 논할 수 없다.
특히나 적들을 방비하기 위해 쌓은 옛 동래읍성은 그 태생 자체가 무려 천 년 전 1021년(고려 현종 12년)에 왜구의 노략질을 방어하기 위해 현재 수영구 망미동 일대에 쌓았던 성이다.
고려 말에 왜구의 침입이 갈수록 심해지자 1387년, 현재의 동래시장 일대로 옮겨진 성은, 익히 알려진 대로 임진왜란 최초의 격전지이자 안타까운 패전지로 기록되어 있다.
통한의 피눈물로 써간 그날을 고고히 증거하고 있는 동래읍성.
반세기 이상 무허가 건물과 경작지 등으로 방치된 동래읍성과 일대를 잘 정비한 지금은 시민들에게 멋진 휴식을 제공하고 지난 2007년에는 '동래읍성 역사관'을 개관해 각종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한적한 동래읍성 북문을 지나 북장대까지 오르는 성곽길은 산책으로 안성맞춤이다.
크게 경사가 심하지도 않고 낮은 계단으로 잘 정비한 터라 남녀노소 누구나 걷는 데 무리가 없다.
한 10분 남짓 올랐을까? 부산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북장대의 전망은 두고두고 기억날 터다.
그리고 북장대에 서서 동래성의 상징이 된 한 사람을 오래오래 기억한다.
송상현(宋象賢) 이름 석 자. 더러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부산 사람들에겐 더없이 반가운 이름이겠지만 모르는 이들이 더 많아서 안타까운 인물이다.
조선 초기에도 동래(東萊)는 군사적 요지로서 '죽음의 땅'이라고 불렸다.
조정의 미움을 받은 송상현은 동래부사로 취임해 전란의 방비를 서둘렀으나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만다.
오랫동안 조선과의 전쟁을 준비해 온 왜군의 기세는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5월 23일(음력 4월 13일),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선봉대는 부산포에 상륙, 압도적인 화력과 병력으로 부산포를 함락한 왜군은 곧바로 동래성으로 진격했다.
음력 4월 28일, 일본군은 1만 5천명의 병력을 동원해 동래성을 포위했다.
왜군의 기세를 일찌감치 파악한 병마사 이각(李珏)은 성 밖으로 도망치고 수비군은 흩어졌다.
왜병들은 성문 밖에 목패(木牌)를 세워 동래성의 항복을 유인했다.
'戰則戰矣 不戰則假道(전즉전의 부전즉가도)'
즉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싸우고 싶지 않으면 길을 빌려 달라!"
송상현은 이각 같은 졸렬한 장수가 아니었다.
그 역사 목패에 글을 써서 응수했다.
'戰死易 假道難(전사이 가도난)' "싸워서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
부사 송상현과 성안의 사람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항전했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조복(朝服)을 갑옷 위에 입고 임금이 계시는 북쪽을 향해 절한 송상현은 부모에게 남기는 시를 부채에 썼다.
"외로운 성에 달무리지고, 주변의 진(부대)들은 베개를 높여 잠들었습니다.
임금과 신하의 의리가 무거우니 부모께 자식의 은혜는 가볍습니다"
왜적은 송상현이 항복하지 않을 것을 알고 그를 죽였다.
송상현의 충정에 감복한 적군 장수는 송상현을 죽인 자기 부하를 잡아 죽이고 송상현을 따라 순절한 첩 금섬까지도 동문밖에 장사 지내주었다고 한다.
이후 왜군은 부산포에 닿은 지 20일 만에 한성까지 한달음에 도달한다.
송상현이 목숨 바쳐 지키려 한 못난 임금 선조는 졸렬한 장수 이각과 똑같이 궁과 백성을 버리고 탈주한다.
훗날 충렬(忠烈)이라는 시호를 받은 부사 송상현. 그가 목숨을 바쳐 지키려한 이곳 동래읍성엔 초개같은 백성들도 그와 뜻을 같이했다.
동래읍성에 대한 갖은 자료가 잘 갖춰진 동래읍성역사관까지 다 둘러보고 동래파전집을 찾았다.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영남 사람들에게 가장 큰 사치는 동래에서 온천을 즐기고 파전에 막걸리 한 사발 걸치는 것이었다.
왜 동래파전인가,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부산 강서구 '대저토마토'에 이어 가장 유명한 특산물 '기장쪽파'의 영향으로 보는 게 설득력 있다.
1930년대 동해남부선 개통 이후 기장 지역 여성들이 기차를 타고 동래역전으로 이동해 기장쪽파를 팔기 시작하면서 동래파전은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맵싸하면서도 달큼한 기장쪽파는 동래파전의 주재료. 지금 몇 대째 동래파전을 파는 식당도 지금껏 기장쪽파를 사용한다고 귀띔한다.
시금치 중에서도 바닷바람 맞은 키 작은 섬초가 더 맛있고, 섬에서 자란 방풍나물의 향취가 더 좋다. 땅끝 해남의 고구마와 배추가 당도 높은 것도 당연지사, 기장쪽파도 마찬가지다.
키는 조금 덜 자라도 옹골찬 기장쪽파와 부산의 풍성해 해산물이 교통편리한 대도시 동래에서 만나 동래파전이라는 작품을 만든 것이다.
찾아간 유명한 동래파전집은 2025년 2월 2일부로 영업을 종료한다고 했다.
노구한 몸으로 더 이상 장사를 운영하기 힘들어 보였다. 분명 누군가가 잇겠다고 나섰을 텐데, 자기들이 아니면 이 어려운 작업을 물려줄 마음이 없는 듯 결연해 보였다.
동래파전은 다른 부침개들과 달리 기름의 맛으로 먹는 게 아니다.
반죽을 최대한 묽게 해서 젓가락 갖다 대면 쪽파 결대로 잘 찢어지도록 부드럽게 먹는 것이 특징이다.
식감을 중시하는 요즘에야 기름기 가득한 겉바속촉을 추구하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동래파전은 100년 전 '옛날' 음식이다.
그래서 모양도 쪽파를 줄지은 대로 묽은 반죽을 끼얹고 각종 해산물을 얹은 네모난 형태다. 부산의 산과 바다를 한데 모은 맛이랄까? 녹진하고 꼬시고(부산 사투리로 '고소하다'는 뜻) 맛있다.
동래파전 한 점에, 금정산성에서 빚은 막걸리 한잔 걸치니, 한두 시간 동래읍성과 역사관에서의 시간이 다시 머리와 가슴에 휘돈다.
혹자는 동래파전이 동래성을 지키던 송상현과 백성들이 즐겼다고 하는데, 많은 학자들이 패한 전쟁에서 그럴 여유는 없었을 것이라고 일축한다.
어쩌면 그러했기를 바라는 후대 사람들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내 마음 한켠에서 동래 부사 송상현과 어린 백성, 그 갸륵한 이들이 떠오른다. 이들에게 동래파전과 막걸리 한 잔 건넨다.
◆ 동래읍성지
ㅇ 주소 |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ㅇ 문의 | 051-550-4084
ㅇ 누리집 | https://www.visitbusan.net/kr/index.do
◆ 동래읍성역사관
ㅇ 주소 |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역사관길 18(복천동)
ㅇ 이용시간 | 화~일 10:00~19:00 (휴일 매주 월요일)
ㅇ 문의 | 051-550-6634
◆ 이윤희 방송작가, 로컬문화 전문가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KBS '한식연대기', 넷플릭스 '삼겹살 랩소디', 스카이트래블 '한식기행 - 종부의 손맛' 등 우리 식문화를 소재 삼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집필했다. 방송작가 22년 차지만 언제나 현역~! 지역마다의 고유한 맛과 멋을 알리는 맛깔난 글을 쓰고 싶다.
문의처 :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포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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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삭제 <2011. 6. 30.>
6. 삭제 <2011.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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