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열정으로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문화예술계의 거장 표재순(79). 그가 문화융성을 위해 남은여생을 ‘올인’했다. 그는 지난해 12월부터 2기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 직을 맡아 국민들의 문화향유를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고 있다.
2기 문화융성 ‘문화를 찾고 섞어 행복을 나누자’
표재순 문화융성위원장. |
그를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 위치한 문화융성위원회 집무실에서 만났다. 백발이 성성한 노장은 여전히 기개가 넘쳤다. 연출가로 활동했을 당시 추억을 더듬을 때면 천진난만한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스무살을 갓 넘긴 청년처럼 그의 이야기는 활기찼고 문화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뜨거웠다.
“‘잘 먹고, 잘 살게 되면’이란 전제를 바탕으로 한 부수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았던 문화가 주도적인 역할로 강조되고 있죠. 바야흐로 문화의 힘이 국력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문화는 민족의 뿌리입니다. 국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문화로 행복해질 수 있도록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죠.”
표 위원장은 문화융성의 확산과 국민 체감을 새로운 화두로 2기 문화융성위원회의 비전을 ‘문화를 찾고, 섞어 행복을 나누자’로 제시했다. 2기 융성위의 활동과 토의를 거쳐 발굴한 핵심 정책과제 ‘마을을 문화로 다시 살리기’, ‘타 부처 사업에 문화의 옷 입히기’ ‘세대별 문화 향유 확산하기’ 등 문화융성을 확산하고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전략을 발표했다.
“문화향유와 참여를 위해 지역과 마을 곳곳에 숨어있는 자원들을 발굴하고 새롭게 만드는 일 또한 중요하죠. 예전에는 마을마다 절기에 따른 세시풍속이나 마을잔치, 축제로 인해 자연스럽게 공동체와 함께 문화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으나 급속한 사회변화로 사라진 전통을 되살리고 새롭게 발전시켜 나가면 우리 삶에 문화는 더욱 가까이 다가올 것입니다.”
지난 2014년 1월 29일 첫 시행된 ‘문화가 있는 날’은 시행 3년차를 맞아 올해도 전국으로 국민들을 찾아간다. |
문화융성위원회는 사회적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문화를 통해 삶의 가치를 찾아 국민행복을 실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다. 그 중 문화융성을 위한 실천과 방향이 잘 드러난 것이 2014년 1월에 출발한 ‘문화가 있는 날’이다. 문화융성위원회가 문화융성의 확산을 널리 알리게 된 주요 사업이다.
“문화는 모든 국민이 정서적 풍요로움을 누리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요소로 국민 행복과 창조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무한한 성장 동력이죠. 어린이에게는 창의력과 감수성을, 청소년에게는 꿈을, 청년에게는 희망과 비전을, 실버세대에게는 행복과 즐거움을 주는 세대별 맞춤형 문화향유 콘텐츠를 확대하겠습니다.”
30여년 연출인생…“스토리의 기본은 ‘인물’”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 직을 맡기 전까지 그는 대표적인 무대 연출가로 명성을 떨쳐왔다. 지금까지 연출한 연극만 100편이 넘는다. 표 위원장은 1963년 극단 산하에서 ‘잉여인간’이라는 작품으로 연출을 시작했다. 1967년 JTBC의 전신이었던 동양TV에서 방송연출을 맡다가 2년 뒤인 1969년 MBC 드라마 제작국으로 옮겨 ‘대원군’ ‘집념’ ‘조선왕조 오백년’ 등 최고의 프로그램을 기획·연출하며 연출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20여년간 몸담은 MBC를 떠나 서울방송 개국 때 SBS로 옮겼다. SBS 프로덕션까지 합치면 방송국 경력은 30년이다.
또한 표 위원장은 1988년 서울 올림픽과 1993년 대전 엑스포 개·폐회식, 2002년 한일 월드컵 전야제, 하이 서울 페스티벌 등 국가적 주요 행사를 다수 연출해온 국가 주요행사의 단골 총연출가로서 자리를 굳혔다.
그는 2000년대 들어 연극 ‘대한국인 안중근’으로 다시 무대에 복귀해 근대사 주요 인물 일대기를 그린 ‘민족혼 부활 프로젝트’ 연출에 매진했다.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 예술총감독을 맡아 우리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렸다.
표재순 문화융성위원장. |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했어요. 대학 때는 학문을 탐구하는 배움보다는 세상을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죠. 대학 졸업 후 서울 중앙시장에서 7년간 고추장, 된장 등 식품장사를 했어요. 장사를 접고 TV연출 쪽으로 진출하게 됐죠. 드라마 연출을 꽤 오래 했어요. 스토리의 원형은 인물이잖아요. 신재효, 김정호, 허준 등 전통사극의 인물을 개척해 드라마를 제작·기획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죠.”
그는 MBC에서 허준의 일대기를 그린 최초의 드라마인 ‘집념’을 1975년 연출했다.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 환자를 살리겠다는 집념 하나로 어의 자리에 오르는 허준이란 인물의 일대기를 그려내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허준의 이야기는 ‘집념’이후 지금까지 드라마와 영화로 숱하게 만들어지며 흥행 보증수표로 자리매김한 소재다.
“하나의 인물을 탐구하고 만들어가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최근에는 잘 만든 ‘웰메이드’ 드라마들이 많죠. 종편채널도 많이 생겼고 그로인한 다양한 콘텐츠들이 쏟아지지만 당시만 해도 드라마 한편 제작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제작 여건도 열악했고요. 말 그대로 역사적 인물에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어 안방극장을 사로잡았죠.”
표 위원장에게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재조명되고 있는 한류의 흐름에 대해 물어봤다.
“태양의 후예는 ‘사전 제작’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높게 평가하고 싶어요. 스토리도 굉장히 잘 짜여져 있고요. 1990년대 당시 MBC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에 수출될 때만 하더라도 한류는 상상도 못했었던 일이죠. 하지만 지금 K팝, K푸드, K뷰티 등이 그 흐름을 이어가고 있어요. 지나치게 상업성이나 시청률을 쫓기보다는 전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고 고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편의 드라마처럼 살아온 표재순 위원장. 그가 추구하는 문화는 ‘찾고, 섞어 행복을 나누자’라고 말했다. |
“문화로 국민 모두 행복한 삶 누리게 해야”
드라마와 연극, 뮤지컬 등 문화예술계에서 받은 사랑을 이제 국민들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표 위원장은 문화의 가치가 사회 전반에 확산돼 국민 모두가 문화를 통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힘닿는 데 까지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동네 주민과 나눠먹는 ‘시루 떡’처럼 문화를 함께 공감하며 나누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시루솥 주위를 맴돌며 떡이 익기를 기다리던 설렘, 그리고 따뜻하게 익은 떡을 마을 주민이 도란도란 나눠먹으며 행복을 더하는 것. 그것이 문화라는 게 그의 소신이다.
“문화가 전국 각지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죠. 더 많은 국민들이 생활 속에서 문화를 즐기고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는 것이 진정한 문화융성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