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에 여풍이 거세다. 각 직급별 공채에서 최종합격하는 여성의 비율이 해마다 갱신되고 있다. 올해 외교관후보자 최종합격자는 여성이 71%로 역대 최다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3명 중 1명도 여성으로 지방공무원도 20년새 여성의 수가 2배로 늘었다. 고위직 공무원으로 진출하는 여성의 비율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소위 유리천장을 깨는 사례들이 공직에서부터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1984년. 여자사무관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한 명도 없던 시절 외교부에 입부해 올해 3월 첫 실장급 간부가 된 백지아 외교부 기획조정실장. 백 실장의 공직생활은 그 자체로 유리천장을 극복한 과정이기도 했다.
“여성 직원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일을 하느냐, 행동하느냐가 후에 입부할 여성 후배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앞에서 조언해 주는 여성 선배의 부재가 힘들기도 했지만 그 만큼 후배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누군가가 먼저 걸었던 그 길이 뒤를 따르는 이들에게는 목표가 되기도 하고 큰 조언이 되기도 한다. 백지아 실장이 그동안의 소회를 밝히며 후배들을 위한 나름의 현실적인 조언도 들려줬다. 다음은 백 실장과의 일문일답.
백지아 외교부 기획조정실장. |
- 외교부 사상 실장급 간부로는 첫 여성입니다. 소회가 남다르죠?
제가 외교부에 입부할 당시에는 여성외교관이 매우 드물었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의 진출이 매우 저조했던 때였기 때문에 외교부에 입부한 후 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대부분의 문제를 스스로 고민해서 해결해야 했지요.
저의 실장급 간부 임명이 열심히 자기 길을 닦아 나가고 있는 외교부의 여성 후배들에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외교부의 10여명 실장급 간부 중에 여성이 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머지 않아 더 많은 여성간부가 배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공직에 입문해서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되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많을텐데요 회고해 보면 어떤 순간들이 기억에 남습니까?
30여년간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만 1991년 우리나라가 유엔에 가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주유엔대표부 서기관으로 근무하면서 정식 유엔회원국으로서의 우리 유엔 외교의 기틀을 마련하느라 밤낮없이 일했던 것이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인권사회과장으로 재임하면서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종욱 WHO(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을 배출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했던 것이 큰 보람이었죠.
국제기구국장 재임 중인 2012년에는 국제수로기구(IHO) 총회에 우리 정부대표단의 수석대표로 참석, 우리 바다 이름인 ‘동해’가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되는 이름임을 세계만방에 주장하고 왔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 국내 두 번째 여성 외시 합격자, 외교부 세 번째 국장급 간부 등 여성 공무원으로서 백 실장님께 붙은 수식어들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마냥 부담스럽지만은 않았어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주어진 일을 잘 해내고 한 단계 한 단계 차분히 전진해 나가는 모습을 여성 후배들에게 보여줘야겠구나 다짐할 수 있었지요. 그들에게 손에 잡히는 롤모델이 되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격려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 여성으로, 엄마로 가정과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으리라 짐작됩니다. 어려웠던 일들은 어떻게 극복했나요?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실장님의 노하우가 있다면요?
예전에는 지금처럼 육아휴직제도나 일·가정 양립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이 없었기 때문에 제 경우에는 무엇보다 가족들의 도움과 격려로 일·가정 양립이 가능했습니다. 남편을 비롯, 친정과 시댁의 모든 가족들이 저의 일·가정 양립을 위해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종종 일과 가정생활을 조화롭게 양립해 나갈 수 있는 ‘저만의 노하우’에 대해 질문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마다 ‘가장 작은 삼각형 만들기’에 대해 강조하곤 합니다. ‘가장 작은 삼각형 만들기’ 란 ‘집과 직장과 어린이집(학교) 사이의 거리가 가장 짧게 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 경우에도 유엔대표부 근무 시절, 집을 사무실과 가까운 곳에 얻었죠. 당시 만 3살이었던 아이의 어린이집은 사무실 건너편에 구했고요. 유엔의 오전 회의가 1시에 끝이 나면 오후 3시까지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었는데 이 때 아이가 잘 적응하고 있는지 어린이집에 가서 확인하는 등이 가능했답니다. 삼각형이 컸다면 어려웠을텐데 말이죠.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면 물리적 거리를 가깝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흔히 여성 인재들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장벽을 ‘유리천장’이라 일컫기도 합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백지아 기조실장은 “일과 가정의 병행으로 힘들어하는 여성 후배들이 이를 먼저 경험한 선배들을 보며 나도 해낼 수 있겠구나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유리천장’ 극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유리천장’의 존재를 용인하지 않는 ‘조직문화’가 정착이 돼야 합니다.
‘젠더(gender)’가 아니라 ‘능력’이 인선의 기준이 된다는 점에 대해 공감대가 있어야 하겠지요.
조직의 리더십 차원에서 능력있는 여성 인재들의 중용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출산·육아의 주된 책임을 여성이 맡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 ‘일·가정 양립’ 또한 중요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저출산 문제해결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고요.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으나 최근에는 다양한 경험들을 토대로 ‘일·가정 양립’과 관련한 제도적인 정책들이 제법 틀을 갖췄다고 보여집니다.
이러한 제반 정책과 방안들이 소기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사회와 직장의 구성원 전체가 일·가정 양립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함께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제도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야겠죠.
- 백 실장님 부임 후, 외교부에서 어느 때보다 여성 인재의 활용을 위한 다양한 제도가 추진 중이라 들었습니다.
외교부 직원들의 대부분은 인생의 절반을 해외에서 근무합니다. 보통 2-3년을 주기로 한국과 해외를 오가야 하니, 미혼·기혼을 막론하고 일과 가정생활을 조화롭게 양립해 나간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해외근무를 하는 동안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기는 경우도 많고 기혼 여성 직원의 경우에는 주말 부부마저도 부러운 ‘기러기 부부’가 되기 십상입니다. 타국에서 홀로 정착하랴, 아이 키우랴 ‘싱글맘’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더욱이 외교부는 지난 10년 동안 여성 직원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출산과 육아기에 있는 직원의 수 또한 많아졌기 때문에 일·가정 양립 정책에 대해 그 어느 때 보다도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외교부는 가정친화적인 업무문화 조성과 운영 체계화를 위해 ‘일·가정 양립 고충심의위원회’를 설립했습니다. 또 직원들과 상시적으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고충접수 전용창구’도 설치했고요.
또 임산부 전용 시설인 ‘다솜방’, 상담지원시설인 ‘마음쉼터’ 등 다양한 지원 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마음쉼터’는 직원 본인 뿐만 아니라 부모, 자녀, 배우자에 대해 다양한 상담 프로그램과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어 외교부만의 독자적이고 대표적인 일·가정 양립 지원시설로 평가받고 있답니다.
앞으로도 저는 기조실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직원들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여러 방안들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시행해 나갈 계획입니다. 고충창구를 통해 접수되는 고민 중 당장 조치가 가능한 부분은 바로 개선하는 등의 노력도 계속할 겁니다. 제가 여성으로 어려움을 직접 경험해 봤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개선된 업무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그 만큼 더 큽니다.
- 마지막으로 후배 여성 공무원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여성의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고 공직사회는 그 중에서도 여성의 진출이 두드러지는 분야인 만큼, 여성 공무원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몫을 훌륭히 해내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세대가 여성 후배들을 생각하며 작은 발자국이라도 새로이 내딛으려 애썼던 것처럼 후배 여성 공무원들도 그 뒤에 오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도록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기량을 닦아 나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