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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교황, 한국과의 인연 살펴보니

1962년 요한 23세 때 한국교회 정식교구 자격

1984년 방한 요한 바오로 2세 “순교자의 땅…”

2014.08.12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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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5월 역대 교황 중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한국민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강변에 있는 절두산 성지를 찾은 교황과 김수환 추기경.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5월 역대 교황 중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한국민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강변에 있는 절두산 성지를 찾은 교황과 김수환 추기경.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8월 14~18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 3월 제266대 교황으로 취임한 프란치스코의 아시아 지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며, 한국 방문은 1984년과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25년 만이다.

교황의 방한은 이번이 세번째이지만 한국과의 인연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됐다. 교황의 존재가 우리에게 처음 알려진 것은 400년 전(1614)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수광(1563~1628)은 저서 <지봉유설>에서 마테오 리치가 쓴 <천주실의>를 소개하면서 “그 풍속이 군(群)을 교화황(敎化皇)이라 하고 혼인하지 않은 독신으로 세습해 계승하지 않으며 현자(賢者)를 가려 세운다”고 설명했다.

비유럽권에서 교황이 선출된 것은 시리아 출신이었던 그레고리오 3세(731) 이후 1282년 만에 프란치스코가 처음이며, 미주대륙 출신으로는 가톨릭교회 2천년 역사상 최초다.

비유럽권 교황의 탄생은 가톨릭 신도의 인구 지형변화와도 연관이 있다. 1910년 전 세계 가톨릭 신자 중 70퍼센트가 유럽인이었으나 2010년에는 23퍼센트로 급감했다. 반면 라틴아메리카의 신자는 전체의 4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교황을 배출한 아르헨티나는 전체 인구 4천만명 중 가톨릭 신자가 70퍼센트를 넘는다.

본명이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인 교황은 지난해 즉위명(名)으로 프란치스코를 선택했다. 청빈을 실천했던 13세기 이탈리아의 성인 프란치스코의 삶을 실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교황 최초로 우리 민족 접한 알렉산드르 7세 우리 민족의 소식을 처음 접한 교황은 알렉산드르 7세(재위 1655~1667)다. 제사 금지를 완화하고 중국 복음화에 관심이 많았던 알렉산드르 7세는 예수회 선교사들의 요청에 따라 1660년 조선을 ‘난징교구’에 예속시켜 선교를 권장했다.

제사 금지한 클레멘스 11세 교황 클레멘스 11세(재위 1700~1721)는 1702년 조선 재치권(裁治權)을 난징에서 ‘베이징교구’로 이양했다. 그는 1715년 제사 등 선교지역 관습을 받아들이는 것을 금지하는 칙서를 반포했다. 이는 청나라와 조선왕조가 가톨릭을 박해하는 결정적 빌미가 됐다.

선교자금 내놓은 비오 6세 재임기간 중 프랑스혁명을 겪은 교황 비오 6세(재위 1775~1799)는 조선교회가 창설된 이듬해인 1785년 베이징교구장 구베아 주교에게 선교사 도움 없이 탄생한 조선교회의 소식을 전해 듣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비오 6세는 구베아 주교에게 조선교회를 돌보고 보고할 임무를 위임하는 한편 조선에 선교사를 파견할 것을 지시했다. 비오 6세는 은화 500냥을 선교자금으로 내놓았다.

편지 써 보낸 비오 7세 교황 비오 7세(재위 1800~1823)는 1801년 신유박해로 초토화된 조선교회 재건을 위해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고 한다. 그는 1814년 8월 조선교회 신자들이 보낸 서한을 전달받았다. 신자들은 “목자를 잃은 이 나라의 양들을 불쌍히 여겨 빨리 선교사를 보내 달라”고 호소했다.

프랑스 혁명군에 의해 파리 인근 퐁텐블로에 구금돼 있던 비오 7세는 서한을 읽은 뒤 베이징 주교에게 “빨리 조선에 선교사를 파견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 보냈다. 구금된 상태에서 그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선교사 파견은 이뤄지지 못했다.

한국 순교자 처음으로 대우한 비오 9세 교황 비오 9세(재위 1846~1878)는 페레올 주교가 프랑스어로 작성하고 최양업 신부가 라틴어로 옮긴 <기해박해 순교자록>을 처음으로 접한 직후인 1857년 9월 24일 조선 순교자 82명을 ‘가경자(하느님의 종)’로 선포했다. 이로써 그는 한국교회 순교자들을 처음으로 대우한 교황으로 기록됐다.

‘교계제도’ 설정한 요한 23세 교황 요한 23세(재위 1958~1963)는 1962년 3월 10일 한국교회 교계제도를 설정했다. 이로써 한국교회는 지난 130년 동안의 선교지 교구에서 벗어나 정식 교구의 자격을 갖추게 됐다.

김수환 대주교를 추기경에 서임한 바오로 6세 교황 바오로 6세(재위 1963~1978)는 1968년 10월 6일 한국 순교자 24위를 복자로 선포했다. 이어 1969년에는 김수환 대주교를 추기경에 서임, 한국교회의 위상을 높였다.

두 차례 한국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는 1984년 5월 한국 가톨릭 200주년을 기념해 사상 처음으로 한국땅을 밟았다. 그는 5년 뒤인 1989년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 때 다시 방한하는 등 한국에 각별한 사랑을 보였다. 그는 김포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땅에 입을 맞추며 “순교자의 땅, 순교자의 땅”이라고 읊조렸다.

1984년 첫 방한 때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땅에 입을 맞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984년 첫 방한 때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땅에 입을 맞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한반도 평화 위해 노력한 베네딕토 16세 교황 베네딕토 16세(재위 2005~2013)는 재위 중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이산가족과 북한의 인도주의적 지원문제 등에 큰 관심을 보였다. 2007년 9월 30일 삼종기도 후 “지금 한반도에서 남북대화의 중요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며 전 세계 신자들에게 남북평화를 위한 기도를 당부했다. 그는 김수환 추기경 선종(善終),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는 한국민을 위로하기도 했다.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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