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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기종목의 희망가…‘태양을 향해 달려라!’

[김한석 기자의 스포츠 공감] ‘그늘 종목’을 밝히는 아시아드의 햇살 도전들

2014.09.18 김한석 스포츠Q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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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그들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이 고단한 삶 속에 IMF 외환 위기를 헤쳐나가고 있던 1998년 12월.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 남자 럭비는 감동 신화를 썼다.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첫 대회에서 기적같이 아시아 최강 일본을 연달아 꺾고 7인제, 15인제 두 개 종목을 모두 석권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럭비 대표팀은 국민에게 용기를 준 사례로 꼽혀 위와 같은 카피의 공익광고에 출연해 국민들과 여운을 함께 누렸다. 그 덕분에 그늘 종목이었던 럭비도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제17회 인천 하계 아시안게임이 19일 팡파르를 울리고 16일간의 열전에 돌입한다. 대한민국은 역대 최대규모인 1068명의 선수단이 36개 전 종목에 빠짐없이 출전해 5회 연속 종합 2위에 도전한다.

남자 454명, 여자 377명의 태극전사들 중에는 프로 종목의 스타들도,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을 제패한 월드클래스의 스타들도 있다.

그러나 4년마다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아시안게임을 기다리며 묵묵히 구슬땀을 흘려온 대다수 비인기 그늘 종목의 선수들은 그 절실함이 남다르다.

올림픽, 세계무대까지는 눈높이를 끌어올리지 못하지만 자신들이 쏟은 땀이 희망과 행복의 눈물로 소박하게나마 보상받기를 기원하며 길고 긴 시간 준비해왔기에 그렇다.

비인기 종목, 즉 비활성화 종목에서 저마다 1승, 메달, 우승이라는 목표를 세운 그들은 개인적인 영광만큼이나 열정을 쏟아온 종목이 더욱 널리 알려지고 저변 확대, 팀 창단 등도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2012런던올림픽 복싱 라이트급 준결승전에서 한국의 한순철이 승리를 자축하는 모습. 2010년 광저우대회 복싱 노 금메달에 그쳤던 한국은 한순철의 재도전으로 금빛 사냥에 다시 나선다. (사진=저작권자 (c)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2런던올림픽 복싱 라이트급 준결승전에서 한국의 한순철이 승리를 자축하는 모습. 2010년 광저우대회 복싱 노 금메달에 그쳤던 한국은 한순철의 재도전으로 금빛 사냥에 다시 나선다. (사진=저작권자 (c)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간절한 1승. 여자 럭비(7인제)의 목표다.

남자 럭비는 2002년 2관왕 2연패를 달성한 뒤 메달권을 유지해왔지만 여자 럭비는 정식종목이 된 2010년 광저우 대회에 데뷔했다. 그러나 기자, PD, 대학생 등 초보자들로 급조된 탓에 6전 전패를 맛봐야 했다. 15득점에 무려 239실점.

1998년 감동 신화의 주역 용환명 감독이 희망살리기에 나섰다. 태권도, 육상, 핸드볼 등의 선수 출신에 모델 출신까지 다시 외인부대로 뭉쳐 희망가를 부른다.

정식종목이 된 2016년 리우 올림픽 출전을 위해 ‘마수걸이’ 승리 달성이 중요한 것이다. 럭비가 좋아 홍콩클럽에 가서 석 달간 활동한 최민정의 열정에서 강인한 도전정신을 읽을 수 있다.

국내에는 낯선 종목인 카바디와 크리켓은 첫 메달에 도전한다.

럭비처럼 태클도 하고 술래잡기, 피구처럼 코트를 돌아다니는 카바디는 4년 전 데뷔전에 나섰으나 남녀 모두 첫 승 사냥에 실패했다. 여자가 부전승을 거둔 터라 이번에 실질적인 동반 첫 승 도전에 나서는데 내심 은메달까지 겨냥하고 있다.

이번 대회 리허설격인 지난해 인천무도 아시안게임에서 남녀 동반 동메달을 따내 자신감이 높다. 특히 남자의 경우 지난 7월 출범한 종주국 인도 프로리그에서 뛰고 있는 엄태덕 이장군 등 8명이 주축을 이뤄 이변을 노린다.

‘야구의 원조’격인 크리켓은 처음 채택된 2010년 대회에서 한국의 유일한 불참 종목이었다. 남자는 영국인 코치를 영입해 야구 선수 출신들로 1년반 동안 호흡을 맞춰왔고 강호 인도, 파키스탄이 자국 리그를 이유로 불참해 메달권 진입까지도 노린다.

여자는 지난 3월 소프트볼, 근대5종, 합기도 등의 선수 출신들로 뒤늦게 팀을 꾸렸지만 파키스탄 출신 감독의 지휘 아래 네팔 전지훈련까지 다녀오면서 전력을 빠르게 다져왔다. 1승이 1차 목표다.

여자 야구와는 다른 ‘야구 사촌’ 소프트볼은 1990년 채택 원년부터 줄곧 메달을 노려왔으나 번번이 좌절했기에 시상대에 서는 게 숙원.

재일동포로서 국적을 회복한 자매가 전력 향상을 이끌고 있어 첫 메달 도전에 자신감이 높다. 언니 배내혜는 일본 1부리그에서 147승을 거둔 투수지만 일본 대표 경력이 있어 트레이너로 도우미를 자처했고 일본 1,2부리그에서 139승을 쌓은 동생 배유향이 마운드를 책임진다.

그동안 금메달이 없었던 스쿼시, 가라데(공수도), 트라이애슬론(철인3종)은 종목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첫 금 수확이 절실하다.

서른 일곱의 박은옥. 처음 채택된 1998년부터 5회 연속 개근 출전하는 국내 스쿼시의 산증인이다. 2002년 개인전 동메달에 이어 2010년 일본과 5시간 혈투 끝에 단체전 동메달을 따내 한국이 거둔 메달을 도맡았기에 마지막이 될 이번 도전에서 책임감이 더욱 크다.

전국체전 정식종목으로도 채택이 안 돼 있는 가라데는 역대 동메달 4개에 그쳤다. 4년전 동메달을 따낸 뒤 2011, 2012년 아시아선수권을 2연패한 이지환이 간판주자다.

4년전 광저우에서 사상 첫 메달(동)을 수확한 트라이애슬론에서는 선발전에서 성인대표를 누른 중학생 정혜림-고교생 김규리가 남자 간판 허민호, 김지환과 호흡을 맞춰 신설된 혼성릴레이에서 금빛 승부에 도전한다.

가족의 힘으로 뭉쳐 종목의 명예와 가문의 영광까지 노리는 ‘2인3각’의 도전도 주목할만하다.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20년만에 노메달에 그친 남자 하키 선수들은 “우리가 남이가, 우리는 가족이다”는 구호를 외친다.

팀워크를 중시하는 것인데 엔트리 16명중 형제가 4명이나 된다. 강문규-문권 쌍둥이 형제, 이승일-승훈 형제는 이번에야 처음으로 동반 출전하는 만큼 의지가 남다르다.

아직 금메달이 없는 수구에서는 송근호-원호 형제가 4년 전 3,4위전에서 일본에 패해 입상에 실패했지만 다시 어깨동무 출전해 메달 도전에 힘을 보탠다. 우슈에서는 이용현-용문 형제가 종목 통산 2호 금메달을 겨냥한다.

5연속 우승 가도를 달리다 4년전 동메달에 그친 여자 핸드볼에서는 김온아-선화 자매가 우승 도전을 이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첫 경기에서 무릎을 다쳐 두 번의 수술 끝에 재기해 에이스로 돌아온 김온아는 처음으로 메이저대회에서 동생과 의기투합하게 됐다.

여자 배구에서는 여고생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가 20년만의 금메달 도전에 젊은 파워를 보탠다. 육상 국가대표 출신 이주형 익산시청 감독과 1988 서울올림픽 배구 국가대표 출신 김경희씨의 운동DNA를 물려받아 언니 재영은 김연경의 대를 이을 차세대 주포로, 동생은 백업 세터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사격에서는 국내 최초의 부부 총잡이가 동반 출격한다. 무기고 앞에서 만나 7년 열애 끝에 2010년 결혼한 황정수-나윤경 부부는 각각 남자 스키트와 여자 50m 소총복사에 출전해 첫 ‘부창부수’ 금메달에 도전한다.

종목의 명예 회복을 위해 돌아온 노장의 투혼에도 시선이 쏠린다. 2012 런던 올림픽 은메달을 따낸 뒤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떠났던 한순철은 12년만의 복싱 금메달을 위해 다시 글러브를 꼈고 이번에 출전하는 쌍둥이 복서 임현철의 동생 임현석을 선발전에서 누르고 출격한다.

2010년 자신을 포함해 두 명만이 동메달을 따내는데 그친 복싱의 명운을 걸었다. 한국이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따낸 618개 금메달 중 56개로 최다 금메달을 기록한 효자종목이 천길나락으로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햇살타를 터뜨려야 하는 사명감을 되새기는 한순철이다.

선구자들의 도전은 양궁에서 시작된다. 처음 채택된 컴파운드에서 금메달까지 노린다. 활끝에 도르레를 달고 케이블로 연결해 기계의 힘으로 화살을 쏘는 종목으로 사람의 힘으로 시위를 당기는 리커브와 구분된다.

이번 컴파운드 대표들은 리커브에서 전향한 선수들이다. 특히 남자 민리홍은 통풍으로, 여자 최보민은 어깨 수술에도 시위를 당길 수 없어 전국체전 정식종목도 아니고 실업팀도 없는 불모지에서 제2의 양궁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세계최강 한국 리커브의 빛에 가려진 그늘 속의 개척자들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냉대와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도전에 나선 숨겨진 영웅들이 얼마나 따사로운 햇살을 받을 수 있을까.

주목받지 않은 그들의 아시아드 해바라기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들도 당당한 태극전사들의 자부심으로 아시아드에 뛰어들었다.

“나는 국가대표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다.”

김한석

◆ 김한석 스포츠기자

스포츠서울에서 체육부 기자, 체육부장을 거쳐 편집국장을 지냈다. 스포츠Q 창간멤버로 스포츠저널 데스크를 맡고 있다. 전 대한체육회 홍보위원이었으며 FIFA-발롱도르 ‘올해의 선수’ 선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21회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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