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0일 국내 첫 환자가 발생하며 시작된 메르스(중동호흡기질환) 사태가 종식을 향해 가고 있다. 메르스의 여파는 예상보다 컸다. 그러나 이제는 그 상처와 충격을 딛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이에 정책브리핑은 건강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대한예방의학회’와 공동으로 ‘함께 만들어요, 건강 한국’을 연재한다. 이를 통해 국내 메르스 사태가 가져다 준 교훈들을 살펴보고 건강 한국으로 가는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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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관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사회의학교실 교수 |
2015년 한국 메르스 유행의 특성
2015년 한국 메르스 유행은 감염된 환자의 해외 유입에 의한 이차 감염으로 촉발된 유행으로 원내 감염에 의한 몇 개의 대규모 병원유행이 중심이 되며 지역사회감염은 감지되지 않았다.
임상적으로는 최종적인 치명률은 20%에 근접했는데 기저질환이 없는 환자에서 치명률은 낮으나 일단 폐렴이 발생할 경우 비가역적 병변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고 다발성 장기 손상을 동반하는 전신감염질환이란 측면에서 신종인플루엔자 등 기존 호흡기감염과 비교할 때 중증질환으로 볼 수 있다.
주요한 역학지표는 중동에서 유행한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병원감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면에서도 유사했으나 전파를 위한 제반 조건이 모두 맞아 떨어진 일부 병원에서는 대규모 유행을 촉발했다. 전체 유행이 몇 개의 super-spreading event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개별 super-spreading event가 초래된 생물학적, 역학적 특성은 향후 규명이 필요하다.
이 유행의 주된 전파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밀접접촉을 통한 직접전파로 이루어졌으나 MERS-CoV 바이러스의 생물학적 특성과 숙주의 상태에 따라 전파경로가 달라질 수 있다. 일부 병원의 원내 감염에서는 다양한 경로를 거쳐 감염이 성립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메르스 유행에 대한 대응책은 백신과 항바이러스 제재 등 효과적인 치료 및 관리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조기격리를 통한 수동적인 방어수단에만 의존해야 하므로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드는 반면 효율은 떨어지는 작업이며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의 인권을 제한하고 경제 사회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질병의 중증도로 인한 두려움,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없는 문제, 대형병원을 매개로 전파되는 성격 등에 기인해 대중의 공황반응이 유발됐는데 이는 유행의 진행과정에서 효과적인 위험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함으로 인해 악화되었다.
이로 인해 일부지역의 대량 휴교사태 및 의료인·격리자 자녀들에 대한 따돌림과 차별, 병의원 이용 감소로 인한 부수적 건강피해, 여행 등 경제, 레저활동의 저하 등 부수적인 피해로 이어졌다.
메르스가 비춰준 한국 보건의료의 명암과 시사점
현대사회에 있어 감염병의 대규모 유행은 보건의료의 영역을 넘어서서 국가사회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이번 유행을 통해 이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중국이 2003년 사스 유행의 결과로 60조원에 가까운 경제적 피해를 입었음을 상기할 때 놀라운 일이 아니다.
국제교류와 상호방문이 활발하고 상품과 사람의 이동이 자유로운 현대사회에 있어 감염병 유행의 위험은 상존하며 따라서 유행의 예방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중요한 안보 및 경제적 과제로 보아야 함을 드러내 준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번 유행은 감염병 유행의 사회경제적 파급효과를 과소평가하고 평소 투자와 대비에 소홀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이번 메르스 유행은 한국의 보건의료체계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으로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분야별 취약성을 철저히 분석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우선 감염병 관리의 거버넌스를 재정비해야 하는데 감염병 유행의 효과적 관리를 위해서는 유사시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질병관리본부의 위상과 조직의 대폭 개편과 보완이 필요할 것이다.
감염병에 대한 상비군 역할을 수행하는 역학조사관을 비롯한 감염병감시체계의 강화는 매우 시급하다. 지역단위로 역학조사관을 상주시키고 이들을 훈련시키며 평상시 업무를 감염관리를 넘어 다양한 공중보건 활동을 포괄하도록 해 공중보건 황동의 강화를 기할 수 있다.
해외감염병 유입을 현지에서 직접 감시할 수 있도록 조직의 확장도 필요하다. 대규모 재난시 정규요원 이외의 예비전문인력을 사전 확보하고 평상시 민관협력체계를 통해 이들 인력의 교육훈련과 비상시 즉각 투입이 가능한 체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의 관리를 위해 환자, 접촉자 관리를 위한 다국어 지원체계와 국제협력을 원활히 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또 이번 유행이 병원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전파되어 나갔음을 감안할 때 기존 보건의료체계의 감염취약성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병원감염관리를 위한 인프라 확충 및 이를 위한 재원 마련이 필요하며 병원 감염관리를 위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질병의 중증도나 지리적 인접성과 무관하게 환자의 이동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보건의료전달체계의 정비, 감염원으로 작용할 수 있는 병원공간에 대한 출입 제한 등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아울러 향후 신종감염병 유행의 예방을 위해 검역체계 강화 및 해외 모니터링 사이트의 확충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의료인에 대한 신종전염병 교육훈련 강화, 의학교육에서 감염병 및 재난대비 의료인의 역할 교육의 강화 등이 필요하다.
이번 유행은 감염병 관리에 있어 공공의료의 중요성이 재확인되는 계기가 되었다. 공공의료기관의 확충과 더불어 지방보건의료체계와 중앙간의 유기적 연계 및 역할 분담도 필요하다.
이번 유행을 통해 한국은 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수로 세계에서 두 번째를 기록하는 불명예를 지게 되었지만 한편으로 후반기로 오면서 환자관리와 합병증예방을 통한 치명률 저하, 효과적인 격리를 통한 확산방지 등에 있어 중동국가들과 크게 비교가 되는 결과를 보였다.
또한 신장질환 환자의 효과적인 전파예방 사례는 향후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전범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사례를 통한 국내의 경험이 세계적으로 중요한 지적 자산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연구와 보고로 남겨지는 것이 이 유행으로 인한 많은 희생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