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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문화잔재 바로알고 바로잡기

일제 찬양 미술가들 해방후엔 위인 동상-영정 도맡아

많은 위인들 모습에서 감동적 이미지를 왜 못느낄까?

[기고] 조은정 한남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

2005.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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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전에 청주 3.1공원의 ‘정춘수 동상’이 시민단체에 의해 높은 대좌에서 끌어 내려졌고, 최근에는 논개사당의 ‘논개영정’이 시민단체에 의해 폐출됐다. 친일한 인물의 동상이었고 친일미술인이 제작한 영정인 때문이었다. 전통적으로 사표가 되는 위인을 기리는 방식에는 선정비나 기념비 등 건조물을 세우는 방식 이외에 전각을 지어 영정을 봉안하는 법도 있다. 동상제작은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일본에서 배워온 서구식으로 이미 교육이나 문화사업에 일조를 한 이들의 동상이 우후죽순으로 제작됐다.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진영은 대개 역사적인 인물이었던 반면 동상은 대개가 당시 일제가 인정할 수 있는 생존한 인사들이었다. 따라서 친일문제는 영정의 경우는 제작자, 동상은 재현 대상과 제작자의 문제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근대기 최초의 동상은 휘문학교 민영휘 동상과 선린상고의 오쿠라남작 동상이었다. 학교 설립과 후원에 기여한 바가 큰 인물들의 상인 동시에 친일인사이자 일본의 한일합방에 공이 큰 일본인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동상들은 태평양전쟁의 동공출로 모두 파괴되어 현재 주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동상은 광복 이후의 것들이다.

총독아들 동상 만든 윤효중이 이순신 동상도 제작

김경승 등이 충무공의 동상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모습.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국난극복의 의지를 다지기 위하여 이순신장군 동상이 제작됐다. 1952년 진해에는 윤효중이, 1953년 충무와 1955년 부산에는 김경승이 제작한 동상이 봉안되었다. 윤효중은 1945년에 태평양전쟁 당시 사망한 조선총독의 아들이자 가미가제였던 아베의 상을 스스로 만들어 총독부에 헌정한 충성을 보였다. 그는 이미 1943년의 조선미술전람회에 전쟁에 나서기 앞서 천번의 바늘땀을 꿴 천을 소지하면 목숨이 무사하다는 일본 군국주의를 부추기는 내용의 ‘천인침’을 출품해 창덕궁상을, 1944년에는 “시국의 진전에 따라 조선의 여성들이 각 방면에서 발랄한 활동을 하고 있으므로 그 자태를 그리고 아울러 조선의복의 미를 표현하려고 힘쓴” 작품인 ‘현명’을 출품하여 특선했다. 김경승은 1942년에 ‘여명’으로 추가로 무감사특선을 했고 다시 조선총독상을 수상했는데 “일본인의 의기와 진념을 표현하는 데 새 생명을 개척하는 대동아전쟁 하에 조각계의 새 길을 개척하는 것일 것”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이 작품은 전쟁물자를 대기 위한 노동하는 인물의 모습이었고, 마지막 조선미전인 23회(1944년)에 출품한 ‘제4반’ 또한 전쟁물자를 대기 위하여 편성된 여성 노동대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었다.

제1공화국은 이승만 독재로 인해 정통성이 의심받자 애국선열을 숭상하는 전통에 의탁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해갔다. 이 시기 수많은 동상이 제작됐는데 윤효중과 김경승이 집중적으로 제작했고 이후 1980년대까지도 김경승은 수많은 애국선열동상을 제작했다.

1956년에는 독립협회 시절의 이승만에게 도움을 주었던 민영환 동상을 안국동 로타리에 세웠는데 윤효중이 제작한 것이다. 같은 시기에 세운 아시아 굴지 규모의 이승만 동상은 1960년 4.19혁명 때 철거됐다. 종자개량으로 식량증산에 도움을 준 우장춘 박사 흉상부조, 동학혁명의 주역 최제우동상도 윤효중이 건립한 것이다.

민족적 위인들 동상 대부분 친일 미술인들이 만들어

윤효중 사후인 1960년대 중반 이후 김경승은 이순신장군 동상 이외에도 이충무공승첩기념탑, 맥아더장군동상, 군인충혼탑, 국립경찰충혼탑, 안중근의사 동상, 4.19기념탑, 세종대왕, 김구(민복진 공동작업), 김유신, 정몽주, 안창호, 이상재, 전봉준 등 동상과 학교 설립자 동상과 대학 총장의 동상들을 도맡아 제작했다. 친일미술인으로 분류되어 있던 이들이 국가의 공공 조형물을 제작하고 있는 것은 많은 수의 조소예술가가 월북한 탓도 있었지만, 한국전쟁기 반공전선에 적극 협조한 때문이었다. 민족정기를 일깨우기 위하여 국가적인 규모로 조성된 위인의 동상이 국가와 민족에 대한 반역행위를 한 친일미술인의 손에 의해 제작됐다는 사실은 결코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국가에서 지정한 표준영정이나 진영 또한 친일미술인이 제작했고 아직까지 통용되거나 신앙의 대상으로 모셔진 것이 많다. 동상과 마찬가지로 한국전쟁기 이순신 장군 진영을 새로 조성하였는데, 일제강점기에 이상범이 그린 것을 1953년에 장우성이 그린 것으로 교체해 현충사에 봉안했다. 동양화가 장우성은 1941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푸른전복’으로 총독상을 받았고 1942년에는 ‘청춘일기’로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했는데 수상식에서 장우성은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총후 국민예술 건설에 심혼을 경주해 매진할 것을 굳게 맹세”하는 답사를 했다. 장우성은 유관순 열사, 김유신 장군, 권율장군, 정약용 선생, 강감찬 장군, 정몽주 선생, 윤봉길 의사, 장보고 등 위인들의 진영을 그렸다.

김은호는 국민총력조선연맹 경성미술가협회에서 출발한 조선미술가협회 평의원, 동양화분과 역원을 지냈으며 1942년의 ‘반도총후미술전’ 위원작가였다. 1937년 ‘금채봉납도’ 1942년 ‘방공훈련’을 제작했던 그는 이순신 장군 진영, 신사임당 초상을 비롯해 어용화사였던 점을 인정받아 역대 조선왕들의 진영을 제작했고 논개, 춘향, 아랑의 진영을 그렸다.

일제때 많은 상 탄 김기창화백도 숱한 위인들 영정 그려

김기창은 반도총후미술전 초대작가로 ‘폐품회수반’을 제작했다. 매일신보 1943년 8월7일자에 ‘님의 부르심을 받고서’를 게재했으며 12월8일자에는 ‘천마’를 실었다. 1944년 결전미술전람회에 <적진육박>을 출품하여 조선군보도부장상을 수상했고, 그해 4월 중순에는 총력연맹 증산 제일선인 목포조선에 소설가 이태준과 함께 파견되기도 했다. 1만원권 지폐의 세종대왕 초상을 제작한 이외에도 고산자 김정호, 의병장 조헌, 을지문덕 장군, 신숭겸, 태종무열왕, 문무대왕 등의 영정을 제작했다.

친일미술인에 대한 비판 앞에 일각에서는 당시 실력있는 미술가는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친일할 수밖에 없었다고 논박하기도 한다. 하지만 혈죽이 돋아날 정도의 기개를 가지고 자결한 민영환 선생 동상의 섬약하기 그지없는 얼굴, 금방이라도 주저앉아버릴 것같이 힘이 없어 보이는 이상재 선생 동상, 꽃다운 나이에 만세를 부르다 살해된 유관순의 심술궂은 얼굴, 거의 판박이인 논개·춘향·아랑의 모습 앞에서 과연 ‘실력있다’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의문이 든다.

자고로 진영이란 핍진해야 한다고 했다. 묘사하는 인물의 털끝 하나라도 같지 않으면 그 인물이 아니라 한 것은 대상의 정신을 담아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가 경의를 표할 위인의 동상과 진영에서 감동적인 이미지를 확인할 수 없는 이유는 이들이 역사의식 없는 친일미술가의 손에서 탄생된 때문이다. 창작자의 마음을 속이지 못하는 미술작품의 진실성이 놀라울 따름이다.

◎조은정(43세):현재 한남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동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박사과정 수료. 제2회 조각평론상 수상,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주간. 저서로 '한국조각미의 발견' '권진규'. 공저로 '비평으로 본 한국미술' '김복진의 예술세계' 등 여러 권이 있다.
주요논문으로 '한국전쟁기 남한미술인의 전쟁체험에 대한 연구' '1950년대 전반 한국미술에서 타자읽기' ' 한국근현대 아카데미즘 조소예술에 대한 연구' '수묵채색의 친일미술인' '조선미술전람회와 친일미술인' '이승만동상 연구' 등이 있다. 현재 '대한민국제1공화국의 국가권력과 미술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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