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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문화잔재 바로알고 바로잡기

조선문화 콤플렉스가 야만적 수탈행위로 표출

[기고] 윤종일 서일대학 민족문화과 교수

2005.06.15 문화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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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일 교수
세계사상 유례없이 가혹했던 일제의 식민통치는 우리의 문화유산에도 원상회복이 힘들만큼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먼저 직접적이고 조직적으로 행해진 문화재 약탈을 들 수 있다.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경멸하면서도 오랜 기간 형성되어온 조선에 대한 문화적 콤플렉스는 감출 수가 없었다. 이들의 조선문화에 대한 경외에 가까운 숭배는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배경으로 야만적 수탈행위로 변질되어 나타났다. 문화재에 대한 약탈, 도굴, 파괴, 일본으로의 반출 등은 질량에 있어 대략적인 추정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전방위로 이뤄졌다.

문화재 수탈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진행됐다. 도자기·서화 등 소품에서부터 불상·동종·탑파·고서적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형의 문화재가 망라됐다. 그런데 이러한 약탈행위를 식민통치기구의 권력자들이 앞장서 자행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다. 고분 도굴의 공공연한 조장자인 동시에 가장 유명한 고려청자 장물아비였던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시작으로 역대 총독들은 예외 없이 무소불위의 힘을 앞세워 조직적으로 범죄행위를 지원했다. 총독 각자가 약탈의 수괴였으며 총독부는 충실한 수행기관이었다.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국보 제101호):강원도 원주시 법천사지에 있었던 고려시대 승탑으로 1912년 일본인에 의해 오오사카에 무단 반출되었다가 1915년 반송되어 경복궁에 복원되었으며 한국전쟁 때도 수난을 당한 바 있다.
총독부 직원들이 개입하여 실록을 포함한 오대산 사고의 소장본을 밀반출하였으며, 최대의 문화재 약탈범이었던 오쿠라는 총독부의 지원 아래 경복궁 자선당을 통째로 옮겨가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이 소중한 문화유산들은 화재로 불타버려 영원히 멸실되고 말았다.

극심한 도굴로 우리민족에 심한 상처 남겨

이렇게 일본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조선을 문화적인 야욕을 채우는 장소로 삼아 철저히 유린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도굴행위는 전통윤리상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범죄로 우리 민족에게 깊은 정신적 상처와 자괴감을 남겨주었다. 송산리 고분 등 수많은 고분들이 연구라는 미명아래 공공연히 도굴됐으며, 그 외 한탕을 노린 도굴은 규모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나아가 일본인들은 '굴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방비 상태에 있는 산골짜기의 절터라든지, 한 두 명의 승려들이 거주하는 몰락한 명찰(名刹), 그 밖에 교통이 불편하고 외진 유적지에서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문화재를 빼내고, 그것을 팔아 큰 돈을 챙기는 불법행위를 감행했다.

대대적인 불법적 문화재 약탈이 있었건만 해방 후 우리 정부의 대응은 미흡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1965년 굴욕적인 한일협정 당시 한국정부는 조선총독부가 반출한 고분 출토품과 일본인 개인이 약탈한 문화재 4479점의 반환을 요구했으나 일본은 개인 소유를 제외하고 국공유 1432점만 반환하는데 그쳤다. 현재 일본 내의 우리 문화재는 공개된 목록만으로도 3만4000여 점에 이르고 있으며 개인이 은닉하고 있는 것들을 포함하면 실제 숫자는 수십 배에 달할 것으로 짐작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문화재를 둘러싼 과거사 청산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미해결 과제인 것이다.

충주 탑평리7층석탑(국보 제6호):일명 중앙탑.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중 최대 규모. 1917년 일제가 해체 복원하면서 기단부의 탱주를 없애고 면석만 나란히 맞춰 복원하는 등 원형을 크게 훼손했다.


다음으로 일제는 조선 국가의 전통과 문화적 자부심을 말살하기 위해 집요하게 유무형 문화유산에 대한 훼손에 착수했다. 그 대표적인 희생물이 경복궁을 비롯한 궁궐들이었다. 이미 1910년부터 소네 통감 아들의 지휘하에 경복궁의 공원화 작업이 시작됐으며 1915년에는 조선 지배 5주년을 기념하여 조선물산공진회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경복궁까지 훼철, 공원화로 민족 자존심 짓밟아

총독부는 공진회를 핑계로 경복궁을 마구 훼철시켜 민족의 자존심을 아예 짓밟으려 획책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 도처의 문화재를 이전하여 공진회장에 전시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원주에서 옮겨온 철불 등이다. 원주는 예로부터 철불의 고장으로 알려진 곳이다. 조선 고적조사를 담당한 세키노의 조수인 야츠이 세이치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경천사10층석탑(국보 제86호): 경기도 개풍군 경천사지에 있었던 고려시대 대리석탑. 1909년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 미쓰아키가 불법 반출하였으나 사회적 물의가 일자 1918년에 반환하였다. 경복궁에서 새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 복원 중이다.
"원주군에서는 제법 수확이 있었답니다. 원주읍 부근에는 신라 말의 철불, 석불, 석탑이 흔해 빠지게 널려 있는 것이 경주도 놀라 맨발로 도망을 갈 정도입니다. 철불은 좌상으로 5구가 있고, 석불도 좌상의 것이 7구 가량 있는데 ……"
여기에 나타난 철불·석불·석탑 등 대부분을 공진회장으로 싹쓸이 해가는 바람에 철불의 고장인 원주에는 더 이상 철불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원주 철불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전국 각지의 문화재가 이러 저러한 사유로 인해 현재 그 위치를 떠나있고, 그 이후의 소재지가 확인되지 않는 것도 부지기수다. 공진회 이후 경복궁은 각종 박람회 전람회 등의 단골 행사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외에도 창경궁은 유원지화하였으며 창덕궁도 도로공사 등에 의해 훼손됐다. 유서 깊은 성곽이 파괴되는 등 수많은 문화재가 근대화의 미명아래 수난을 당했다. 또 남산의 국사당을 철거하고 신궁을 세웠듯이 전국에 걸쳐 명당을 골라 신사를 조영했다. 이는 능욕에 가까운 정신적 침해라 할 수 있었다.

일본의 발악적인 문화재 파괴는 태평양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1943년 조선총독부가 각도 경찰부장에게 내린 ‘유림의 숙정 및 반시국적 고적의 철거에 관한 건’ 지시는 반달리즘적인 폭거였다. 항일사상과 투쟁의식을 유발시키는 민족적인 사적들을 모조리 파괴하려고 한 것이다. 조선총독부가 철거대상으로 지정한 왜적 격멸 기념비는 ‘명량대첩비’·‘좌수영대첩비’·‘행주전승비’·‘타루비’·‘사명대사석장비’·‘황산대첩비’·‘정발전망유지비’·‘김시민전성각적비’ 등 20여기에 이르렀는데 이 중 일부는 실제 폭파되거나 명문이 훼손되는 일대 수난을 겪게 됐다.

경복궁 자선당: 경복궁의 비극을 상징하는 동궁전의 중심 건물. 1915년 오쿠라 기하치로에 의해 일본으로 반출 1923년 관동 대지진 때 소실되고 기단석만 오쿠라호텔 경내에 방치됐다가 1996년 반환됐다.(사진은 복원된 자선당)
극히 일부 사례를 예시했지만 일제강점기의 문화재 수난사는 민족문화 나아가 민족 말살정책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그 전모에 대한 연구 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광복60주년이라는 전기를 맞아 일제에 의해 반출되거나 파괴되고 변형되어버린 문화재를 치밀하게 조사하고 자료로 남기는 한편, 그 역사적 사실을 후대에 명명백백하게 알리는 일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중요한 의무라 할 것이다.

끝으로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무관심을 지적해두고자 한다. 지금 유형문화재에 대한 복원사업은 많은 예산을 지속적으로 투입하여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더불어 일제에 의해 오염된 무형 문화유산에 대한 점검도 놓쳐서는 아니 된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종묘제례악무와 같은 무형문화재나 민속 등에도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훼손되고 변형된 부분이 없는지 철저히 조사하여야 한다. 세계에 자랑하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에 일제잔재가 남아있다면 문화입국을 표방하는 나라의 자존심에 관계되는 문제일 것이다.

⊙윤종일 교수: 경희대학교 사학과 졸, 동대학원 졸(문학박사).
광복60년 문화사업 ‘일제문화잔재 지도 만들기’ 고증심의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서일대학 민족문화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와 향토문화사 연구가 주 관심분야임. 저서로는 ‘1920년대 민족협동전선연구’ ‘동구릉’ ‘구리.남양주 문화유산기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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