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전자정부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뉴스

콘텐츠 영역

일제문화잔재 바로알고 바로잡기

방송에 남아있는 일제잔재

[기고] 정호식(PD연합회장)

2005.06.27 문화관광부
글자크기 설정
목록


정호식(PD연합회장)
물론 지금은 다 옛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80년대 중반까지는 방송사의 봄가을 정기 프로그램 개편 철이 다가오면 방송사 편성관계자들은 부산 해운대 부근의 호텔이나 여관으로 모여들었다. 개편회의가 명분이지만 실제는 일본 프로그램을 시청하기 위해서다. 당시 부산, 특히 해운대에서는 일본 TV가 양호하게 수신이 됐기에 일본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얻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심한 경우에는 일본 TV프로그램의 포맷이나 무대 디자인, 출연진의 구성까지도 그대로 베끼기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방송은 분명 문화이다. 문화란 그 공동체의 구성원이 역사성을 토대로 창조해내고 또 향유하는 정신적 생산물이다. 따라서 문화에서 그 공동체의 독창성과 정체성이 빠진다면 그것은 문화가 아니라 독이요, 차라리 쓰레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80년대까지도 우리방송이 일본문화를 그대로 베껴 와서는 우리 대중들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왜색문화에 젖어들게 만드는 첨병 노릇을 했던 셈이다. 이것은 과거의 일이라고해서 그냥 슬쩍 넘어가기엔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들이 80년대까지 자행됐을까? 이유는 우리방송이 일제강점기에 탄생했다는 태생적인 한계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1925년, 조선총독부 체신부 구내에서 출력50W로 무선 실험을 했고 그 이듬해 경성방송국이 설립되면서 이 땅의 방송역사가 시작됐다.

아직도 쓰이는 '입봉·데모찌·구다리…'
일제가 시작한 방송, 그 목적이 조선인으로 하여금 시대적 보편가치를 공유하게 만들어서 근대적 시민으로 깨어나는 걸 돕는 것이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방송을 식민지 지배도구로 삼아 내선일체, 대동아공영이라는 제국주의의 악령으로 조선 땅을 뒤덮을 작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방송은 그 출발부터가 잘못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어찌 보면 이런 사정은 유독 방송계의 사정만은 아닐 것이다. 자발적인 근대화 기회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서 박탈당했던 우리 근대사의 공통적인 아픔일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태생적 한계야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그 이후 방송에 남아있는 일제문화를 청산하려는 방송인들의 진지한 노력이 부족했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도 방송계에 남아있는 일제의 그림자 중, 특히 텔레비전 제작용어 부분이 심각하다. 테레비(텔레비전의 일본식 준말), 프로(프로그램의 일본식 준말), 입봉(첫 연출), 데모찌(어깨걸이 촬영), 다찌마리 혹은 다찌마와리(액션 장면), 구다리(씨퀀스, 씬), 삼마이(삼류), 야마(요지, 핵심주제) 등의 용어는 일본식이라는 것이 이제는 충분히 알려져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방송현장에서는 여전히 쓰이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처럼 일제문화의 잔재란 것이 널리 알려져 있고 또 대체할 다른 말이 있는데도 이 정도이니 다른 용어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필자가 조연출 시절, 그러니까 80년대 후반의 상황이다. 당시 나이가 한참 든 선배 카메라맨과 자주 일을 했었는데, 야외녹화를 나가면 그가 하는 말 중에는 내가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는 촬영용어는 정말 몇 개 안되었다. 돕뿌(TOP, 장면의 시작 부분), 압뿌(CLOSE UP), 쓰무(ZOOM), 데마이(카메라 가까이 있어서 전면에 크게 잡히는 물체, 혹은 카메라의 앵글 가까운 부분), 카트와리(컷을 나누는 것), 누끼(동일한 씨퀀스에서 같은 카메라 앵글의 컷들을 한번에 몰아서 촬영하는 기법), 시바이(등장인물들의 동선, 영어로는 블라킹), 혼방(OK 컷), 우께(반응, 리액션), 오사마리(끝, 마무리), 바라시(촬영 후 정리작업) 등..... 하여간 그 선배와는 일본식 용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촬영현장에서 의사소통이 어려웠을 정도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 땅에 최초로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된 해인 1956년은 일제 패망 10년이나 지난 시점이다. 그럼에도 이런 일본식 용어들이 TV 프로그램 촬영 현장에 뿌리박게 된 까닭이 어디 있을까?

영화계 사람들이 방송으로 옮기며 사용

해답은 역시 사람의 문제이다. 당시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하면서 방송 영상을 담당하는 사람들 대부분을 영화계에서 뽑아왔다. 그들이 몸담고 있던 영화계는 이미 오랜 세월동안 일본식 용어를 관행처럼 쓰는 사정이라 그들이 방송으로 옮아오면서 그 용어들도 아무 저항 없이 그들과 함께 방송계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 카메라맨 선배는 충무로 영화 쪽에서 쭉 일해 오셨으니 그분으로서는 지극히 자연스런 용어들이었을 게다. 물론 이제 그 사용 빈도가 현저히 줄어들기는 했기는 했지만, 국민의 정신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대중문화의 생산자와 전달자로서의 방송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할 땐 이런 일제잔재가 베어있는 말은 단 단어라도 방송계에 남아있어서는 안된다.

우리 텔레비전 방송도 50년이 다 됐다. 그리고 이제는 디지털 시대이다. 방통융합으로 방송의 새로운 미래를 향한 도약의 시기이며, 동시에 위성DMB, 지상파DMB, IP-TV 등 미처 그 이름을 익히기도 전에 새로운 개념의 기술이 등장하는 그야말로 뉴미디어 시대이다. 이런 첨단을 걷는 뉴미디어 시대에까지 일제의 잔재가 따라다닌다는 것은 우리 방송인의 각성이 부족했고 청산노력이 모자랐다는 이유 외에 어떤 말도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대중문화의 정체성을 바로세우는 일은 바로 방송에 남아있는 일제 문화에 대한 완전한 청산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정호식: 1959년생.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장(PD연합회장)/MBC시사교양국 부장.
1986년 MBC 프로듀서로 입사해서 지금껏 시사교양PD로 일하고 있다. 4년 6개월의 조연출 시절을 거쳤으며, 이후‘인간시대’, ‘신인간시대’, ‘그사람 그후’, ‘김한길과 사람들’, ‘다큐스페셜’,‘와! 이 멋진 세상’, ‘MBC스페셜’ 등과 여러 특집다큐멘터리를 연출해 왔으며, 특히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내면을 기록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이전다음기사

다음기사고증을 통한 일제 잔재청산

히단 배너 영역

추천 뉴스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정부정책 사실은 이렇습니다

많이 본, 최신, 오늘의 영상 , 오늘의 사진

정책브리핑 게시물 운영원칙에 따라 다음과 같은 게시물은 삭제 또는 계정이 차단 될 수 있습니다.

  • 1. 타인의 메일주소,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등의 개인정보 또는 해당 정보를 게재하는 경우
  • 2. 확인되지 않은 내용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경우
  • 3.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시키는 경우
  • 4. 욕설 및 비속어의 사용 및 특정 인종, 성별, 지역 또는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용어를 게시하는 경우
  • 5. 불법복제, 바이러스, 해킹 등을 조장하는 내용인 경우
  • 6.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광고 또는 특정 개인(단체)의 홍보성 글인 경우
  • 7. 타인의 저작물(기사, 사진 등 링크)을 무단으로 게시하여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 글
  • 8. 범죄와 관련있거나 범죄를 유도하는 행위 및 관련 내용을 게시한 경우
  • 9. 공인이나 특정이슈와 관련된 당사자 및 당사자의 주변인, 지인 등을 가장 또는 사칭하여 글을 게시하는 경우
  • 10. 해당 기사나 게시글의 내용과 관련없는 특정 의견, 주장, 정보 등을 게시하는 경우
  • 11. 동일한 제목, 내용의 글 또는 일부분만 변경해서 글을 반복 게재하는 경우
  • 12. 기타 관계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
  • 13. 수사기관 등의 공식적인 요청이 있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