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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황금에 ‘검은 손’있나

2008.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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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투기꾼이 인위적으로 식품과 원유 값을 부풀려 수백만의 사람과 수백만의 기업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거래량의 71%가 투기 목적이다. 연기금과 헤지펀드 등 금융자금의 원자재시장 참여를 제한해야 한다.”

미국 의원들이 한 말이다. 이처럼 고유가의 원인으로 투기를 지목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공교롭게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OPEC의 차킵 켈릴 의장은 “달러가 약세를 띠자 투기자본이 달러 자산을 팔고 원유를 사들이면서 유가를 올리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에 따라 미국 하원이 원자재 선물거래 감독을 담당하는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를 감사(監査)하기로 했다. 이번 감사는 CFTC가 현재 투기세력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그렇게 하도록 하려면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현재의 고유가는 투기세력이 부추긴 결과라고 주장하는 데 앞장선 인물은 자산운용사를 운영하는 마이클 마스터스. 마스터스는 지난 6월 하순 열린 미 하원 청문회에서 “에너지 선물시장의 투기를 규제하는 법안이 통과되면 현재 배럴당 135달러인 원유 값이 65~75달러로 빠른 속도로 하락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한 분석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지수 선물에 투자하는 펀드의 규모가 지난 5년 새 130억 달러에서 2600억 달러로 급증했고, 원자재 중 원유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투기 막으면 유가 반으로 하락”
국내에서도 투기세력이 농간을 부린 탓에 유가가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4월 낸 ‘원자재 가격의 급등 요인과 전망’ 자료에서 “고유가에는 투기적 요인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가운데 지정학적 리스크, 달러화 약세, 수요와 공급 순서로 기여했다”고 진단했다. 이어 “최근 원자재 가격 급등은 버블적 성격이 있어 일시적으로 가격이 급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이 연구소의 글로벌 경영연구실장 김경원 전무는 지난 4월 강연에서 마스터스와 같은 진단과 전망을 제시했다.

과연 투기세력이 원유 값을 끌어올렸나?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 대학 교수는 이에 대해 강하게 아니라고 반박한다. 이는 단순히 이론적인 공방에 그치지 않는다. 이 공방은 앞으로 유가의 방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유가가 투기 때문이라면 유가는 조만간 큰 폭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유가는 수요가 공급과 균형을 이룰 정도로 줄어들 때까지는 높게 유지되다가 서서히 하향 안정세를 보일 것이다.

이제 거품은 없다는 이들의 주장을 살펴보자. 이들은 선물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데도 적어도 원유만큼 값이 뛴 품목이 여럿 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철광석은 선물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품목이라서 투기의 대상이 될 수 없는데도 원유만큼 값이 급등했다. 희귀 금속인 카드뮴은 2001년 이래 가격 상승폭이 유가의 두 배 이상이었다. 반면 지난 한 해 동안 니켈 선물에 대한 투자 규모는 계속 늘었지만 니켈 값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반대 사례를 찾아낸 것일 뿐이라는 비판에 취약하다. 예컨대 ‘철광석은 선물 투기 대상이 되지 않았지만 공급 대비 수요가 큰 폭 증가해서 값이 급등했고, 니켈은 선물 투자가 몰렸어도 공급이 증가하는 바람에 가격이 급락했다’고 할 수 있다.

의문부호가 꼬리를 문다. 미국의 거품론자들은 투기세력이 원유 선물에 돈을 쏟아부으면서 원유 값이 올라갔다고 주장한다. 그럼 원유 현물시장에는 투기세력이 끼어들 수 없나?

또한 선물시장에는 시장참여자들의 기대가 반영된다. 앞으로 유가가 더 오른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면 선물시장에서 원유 가격지수가 높게 형성된다. 이처럼 선물시장을 끌어올린 기대는 현물시장에서도 가격을 올리는 영향을 주지 않을까? 예를 들어 주식시장에서는 선물지수 가격이 현물지수보다 높을 때엔, 선물지수를 매도하고 지수에 편입된 종목을 매입해 차익을 노리는 ‘프로그램 매수’가 일어나면서 현물 주식 가격을 끌어올린다. 선물시장이 현물시장을 움직이는 이런 현상을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격’이라고 해서 ‘왝 더 독(wag the dog)’이라고 부른다. 원유 선물시장과 현물시장에도 이런 연결고리가 있지 않을까?






선물시장의 영향력은 단기적
첫째 의문과 관련해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이문배 석유시장분석실장은 “원유 현물시장에서는 투기적인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실장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원유 현물시장에서 많이 거래되는 게 한 달 뒤 인도분이다. 계약한 뒤 원유가 인도되기까지, 그리고 인도받아 선박으로 수송해 오기까지 여러 달이 걸린다. 중간에 값이 오르면 넘겨받기 이전에 팔아치울 수 있고, 인도된 원유를 수송하는 중간에도 매도가 가능하다. 하지만 실수요자가 아니면서 가격 상승을 예상해 현물시장에 뛰어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원유 현물시장에서 투기적인 거래가 드문 것은, 원유는 정유사와 같은 실수요자가 아니라면 부동산이나 주식과 달리 보유할 방법이 마땅찮고, 있다고 하더라도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현물시장에서는 재고를 더 비축해 두는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원유시장에서는 선물가격이 현물가격보다 높을 때 ‘현물은 매수하고 선물은 매도하는’ 차익거래가 일어날 수 없는 것일까? 차익거래로 현물을 산 매수자는 현물을 보유해야 한다. 따라서 현물을 어떤 경우엔 인도일 이후까지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물리적인 제약에 놓인다. 한편 크루그먼은 “원유 가격이 급등한 기간은 선물가격이 현물가격보다 약간 낮았다”고 지적한다.

몇 발 양보해 원유 선물가격이 현물보다 큰 폭 높아 차익거래가 활발히 일어나면서 현물가격이 오른다고 하자. 선물 만기가 되면 차익거래로 사 두었던 원유가 한꺼번에 매물로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원유 현물시장은 선물 만기 때 종종 아래로 출렁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한국은 주식 선물시장 거래 규모가 세계 1위이고, 증시에서 선물이 현물을 좌지우지하는 현상이 선물 만기일엔 종종 나타난다. 그러나 지속적인 주가 약세나 강세를 선물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증시 전문가는 없다. 선물과 현물의 연결고리가 분명한 주식시장에서도 이럴진대, 하물며 연결고리가 거의 없는 원유시장에서 선물이 어떻게 현물을 움직인다는 것인가.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이달석 선임연구위원은 “선물가격의 현물가격에 대한 영향력은 단기에 그친다”며 “현물가격은 결국 수요와 공급에 좌우된다”고 말한다.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았을 때 곧잘 등장하는 것이 음모론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투기꾼들이 잇속을 챙기는 바람에 유가가 급등했다는 음모론으로는 고유가의 험난한 파도를 헤쳐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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