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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명이 동시에…‘스마트폰 받아쓰기’ 진풍경

15일, 세종대왕 탄신일 기념 행사 2천 명 몰려…속도의 시대 한글 가치 되새겨

2013.05.21 정책기자 최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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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문제 드리겠습니다. ‘철수가 웬일로 결석을 했을까?’를 정확한 띄어쓰기와 함께 써주세요.”

푹 숙인 고개, 스마트폰을 향해 고정된 시선, 빠른 속도로 막힘없이 스마트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풍경이 지난 15일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그것도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시에 한 자리에 모여 이 같은 진풍경을 연출해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세종대왕 탄신일을 맞아 한글문화연대와 함께 진행한 ‘우리말 받아쓰기 대회’ 현장이다.

한글문화연대 관계자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5월 15일이 무슨 날이냐고 물으면 아마도 90% 이상은 스승의 날이라고 답할 것”이라며 “사실 이 날은 세종대왕이 나신 날이다. 이 날을 기념해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의 문화유산 한글과 최첨단 IT기술을 결합해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재현한 새로운 형태의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했던 받아쓰기 대회 현장.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펼쳐졌다.
5월 15일 세종대왕 나신 날을 기념해 문화체육관광부가 개최한 스마트폰 받아쓰기 대회에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해 진풍경을 연출했다.

본격적인 대회는 저녁 7시부터 시작됐다. 대회가 진행된 광화문 광장은 사전 신청한 사람들과 현장에서 즉석으로 참가한 시민 약 2,000여명이 몰리며 인산인해를 이뤘다. 조선시대의 과거 현장을 그대로 재현한 듯, 감독관 복장을 갖춘 사람들이 대회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심험감독으로 나서 사뭇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대회는 사회자가 문장을 말하면 참가자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문장을 작성한 뒤 문자메시지로 전송해, 자동 채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회 참가자들은 참가 동기도 연령대도 모두 천차만별이었지만, 각자 평소 쌓아둔 내공을 발휘해가며 IT강국 국민으로서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참가자들은 평소 스마트폰 활용 실력을 자랑이라도 하듯 문제를 듣자마자 빠른 속도로 한글을 써내려갔다. 받아쓰는 내용도 흥미를 자아냈다. ‘박지성 선수의 흥사위가 멋집니다.’, ‘물은 세포가 아니라, 스스로’, ‘과부 할미는 미투리코투리 별것을 다 묻는다.’, ‘싱싱하고 때깔 좋은 무 몇 덩이가 굴러나왔다.’와 같이 재미있으면서도 평소 틀리기 쉬운 문장들이 참가자들의 애를 태웠다.
 
과거에 만든 문자와 현대 IT기술이 만나서 세계 최초로 시도된 스마트폰 받아쓰기 대회의 열기는 뜨거웠다.
과거에 만든 우리 문자와 최첨단 IT기술을 결합해 세계 최초로 시도한 이벤트 ‘스마트폰 받아쓰기 대회’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색적인 볼거리였다.

한국어 교육을 전공한다는 공두환 학생은 “한국어 교육을 전공 중이라서 평소 공부도 많이 하고, 이 분야에 관심도 많았는데 막상 대회에 참가해 문제를 풀어보니 쉽지 않았다.”며 “동기들과 함께 단체로 참가했는데 앞으로도 우리말을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딸과 함께 참가했다는 주부 유아라 씨는 “조선시대 과거시험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조선시대 복장을 한 분들이 실제로 감독을 해서 더욱 긴장이 됐다.”며 “늘 쓰던 우리말도 막상 시험문제로 접하니 헷갈리더라. 스마트폰을 쓰면서 주로 줄임말을 쓰다보니 진짜 우리말을 잊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자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중학생 김동현 군은 “평소 카카오톡을 통해 친구들과 대화하다보니 단답형이나 줄임말을 자주 썼는데 대회에 참가해 긴 문장을 맞춤법까지 맞춰 쓰려니 오히려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며 “미투리코투리나 흥사위 같은 단어들은 처음 듣는다. 우리말에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5월 15일은
이 날 행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자 세종대왕이 나신 날이라는 사실을 알고 돌아갔다.

한편, 대회가 열린 광화문 광장 한편에서는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록해놓은 부스도 찾아볼 수 있었다. 세종대왕의 가장 큰 업적인 훈민정음 창제는 여기서도 빛을 발했다. 1443년 창제해 1446년 반포한 훈민정음은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 우리만의 독창적인 고유 문자다.

특히 알파벳, 한자, 아라비아 문자 등 세계 각국의 문자들은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모르는 자연발생적인 문자인 데 반해, 한글은 제작자와 제작년도, 제작과정 등을 상세하게 알 수 있는 유일한 문자이기도 하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의 훈민정음은 동양의 전통사상인 음양오행 사상을 비롯해 천지인, 삼조화 사상이 담겨있는 우주 자연의 문자이자 발음기관을 반영해 만든 과학적인 문자로 사람의 말소리를 가장 잘 적을 수 있는 생태문자이기도 하다. 이처럼 과학적으로 창제된 문자이면서도 세계 역사상 유일하게 일상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문자는 오직 한글밖에 없다.

행사 시작 전 세종대왕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 사람들의 모습
광장 한편에 마련된 이벤트 코너 ‘세종대왕님께 드리는 고마운 편지’.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 담긴 한글은 대한민국에 길이 남을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한글 창제만으로도 엄청난 업적이라 할진대, 세종대왕의 업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세종대왕의 업적이 담긴 게시판을 둘러보는 동안 그동안 세종대왕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필자 역시 몰랐던 사실들에 내심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에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돌 근대적인 시각이 반영된 업적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관청에서 일하는 여성 노비의 출산휴가를 100일로 늘리고, 그 남편에게까지 출산휴가를 주는 등 현대의 복지정책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일들이 그 시절에 이미 시행됐다. 

또 궁궐에 천문관측소 간의대를 설치하고 종합과학연구소격의 ‘흠경각’을 지어 조선의 과학 수준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점도 평가할 만하다. 뿐만 아니라 인쇄출판술에 대한 관심, 잘못된 역사 바로잡기, 집현전을 통한 인재 양성, 책을 통한 교화, 정간보를 통한 음악 보급, 의서 편찬, 지리서 완성 등 그 업적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광화문 광장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광화문 광장을 지나던 사람들이 발길을 멈춘 채 세종대왕의 업적을 둘러본 뒤 자신의 소감을 포스트잇에 적어 붙이고 있다.

대학생 박채영 양은 “5월 15일이 스승의 날로만 알았는데 세종대왕이 나신 날이라는 말을 듣고는 발길을 멈추고 게시물을 하나하나 읽어봤다.”며 “세종대왕하면 한글 창제밖에 떠오르지 않았는데 업적을 하나씩 읽어내려가다보니 놀라울 정도이다. 이렇게 훌륭한 분을 선조로 두었다는 것에 새삼 자랑스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스마트폰과 SNS의 사용으로 ‘좀더 빠르고, 좀더 편리하게’만을 추구하며 한글 맞춤법 정도는 가볍게 무시해왔던 사람들이 이 날만큼은 한글의 소중함과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으리라 믿는다. 필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사대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비밀 연구를 통해 탄생한 훈민정음, 그 안에 담긴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동안 사용했던 자신의 언어 습관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반성해보는 건 어떨까?

정책기자 최주현(대학생) juhyeonchoi@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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