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4월 16~27일 칠레 등 중남미 4개국을 순방한다. 박 대통령이 이 멀고 낯선 땅에서 만나면 반가울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K-팝(Pop) 등 한국 문화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한류 팬들일 것이다.
중남미의 한류 팬들은 무턱대고 한류 콘텐츠를 즐기는 게 아니다. 한류 팬들은 K-팝과 K-드라마라는 문화 ‘상품’의 우수성을 알아본 ‘똑똑한 소비자’들이다. 이들은 한류가 일본 등 다른 아시아 문화와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콘텐츠의 질이 높고, 춤이나 연출력 등이 혁신적이어서 한국 드라마와 중남미 드라마는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고 얘기한다.
이제 한류는 문화 ‘현상’이 아니라 문화 ‘산업’이다. 자동차와 휴대전화 등 첨단 제품과 함께 한국을 성장시키고 끌어가는 하나의 축이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첨단 제품이 한국산이라는 데 놀라고, ‘단기간에 눈부신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룬 한국’을 부러워한다. 그 한국이 만든 최고의 문화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자부심도 대단하다.
이제 한류는 경제요, 국제 관계의 윤활유다. 한류야말로 한국의 소프트 파워다. 연구 결과들을 보자.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한류 열풍으로 한국 콘텐츠산업 매출액이 2014년 72조 원에서 2020년에는 95조 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한류의 자산 가치가 삼성전자(177조 원)의 절반을 넘고, 현대차와 포스코를 합친 것(83조 원)보다 많다”는 한류미래전략연구포럼의 분석도 있다.
한류 덕분에 한국을 찾는 젊은이들도 늘고 있다. 필자가 알고 있는 칠레 대학생 4명은 가수와 드라마가 좋아서 한국어를 배운 뒤 최근 한국에 40일 동안 머물면서 서울 홍대 앞, 전주 등 전국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이들은 한국의 배달 음식 서비스 문화와 거미줄처럼 깔린 지하철 등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데, 내년에는 그중 1명이 한국의 대학에서 석사과정에 진학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류에 대한 관심은 학문 영역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2007년 국내외의 한국학 진흥을 위해 발족된 한국학진흥사업단의 사업 예산은 그해 45억 원에서 올해 300여억 원으로 늘어났다. 이에 발맞춰 중남미에서는 ‘한국어문화학과’ 등으로 학과명을 개명하는 대학도 늘고 있다. 중남미의 명문 대학인 브라질 상파울루대에는 2013년 한국어문학과가 처음으로 개설됐고, 칠레에도 최근 3년간 한국어를 가르치는 기관이 여럿 생겼다. 칠레의 첫 한국학센터는 지난해 말 산티아고대에 설립된 상태다.
2012년 3월 9일(현지시간) 칠레 산티아고의 공연장 테아트로 콘포리칸 앞에서 남미 팬들이 JYJ의 콘서트가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다.(사진=동아DB) |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 어젠다인 ‘창조경제’의 대표적 모델로 가수 싸이를 꼽는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라는 노래가 뉴 미디어인 유튜브와 결합돼 전 세계 18억 인구에게 즐거움을 주며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했기 때문이다. 싸이가 국제적인 가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전 세계 한류 팬들이 큰 몫을 했다.
싸이 팬들이 그렇듯이 중남미의 한류 팬들은 한국 문화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이들은 한국과 칠레, 중남미를 잇는 문화 대사들이다. 배우 이민호의 칠레 팬클럽은 파타고니아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한 나무 심기 캠페인에 이민호의 이름으로 수백 그루를 심을 정도로 열성이다. 한류 팬클럽들은 지난해 11월 이곳 불우이웃돕기 행사 ‘케이톤(K-ton)’을 연 뒤 좋아하는 스타의 이름으로 성금을 냈다. 최근 발생한 칠레 북부 홍수 지역에서도 한류 스타의 이름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자원봉사를 했다. 가히 ‘창조문화 외교’라 할 만하다.
중남미는 비행기를 타고도 24시간 넘게 가야 하는 머나먼 땅이다. 그런 곳에서 한류는 한국에 대한 관심을 열어주는 문이자 성장을 이어주는 다리, 미래의 발전적 우호 관계를 향한 창이다. 박 대통령의 중남미 순방을 계기로 창조한류의 열기가 더욱 뜨거워지기를 기대한다.
글: 최진옥(칠레 산티아고대 한국학센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