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광복 70년이자 6·25전쟁이 발발한 지 65년이 되는 올해 국민들이 호국 영웅들을 기리는 호국영웅 알리기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 정책브리핑은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호국영웅들의 활약을 소개하고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억해본다. (편집자 주)
맏아들 심일 대위는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대전차포중대 소대장으로서 춘천지구 옥산포 전투에서 자신을 포함한 5명의 특공대를 조직해 화염병과 수류탄을 들고 적의 자주포를 향해 돌진하는 육탄공격을 감행, 북한군 자주포 2대를 격파했다.
이후 1951년 1월 제7사단 수색중대장 임무 수행 중 영월전투에서 적의 총탄에 맞아 28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정부는 심일 대위의 위국헌신을 기리기 위해 1951년 10월 15일, 위관 장교로는 최초로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하고 소령으로 1계급 추서했다.육군에서는 2002년 ‘심일상’을 제정해 그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둘째 아들 심민은 경찰로 근무하며 6·25전쟁 중 치안 유지를 위해 노력했으나 32세이던 1960년 내무부 치안국 경무과 근무 중 업무 과로에 따른 심장마비로 순직했다.
셋째인 심익은 서울고 재학 중 전쟁이 일어나자, 만 17세의 나이에 학도병에 자원해 낙동강 방어전투에 참전했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1950년 8월 1사단에 지원한 학도병들의 모습. |
이들 3형제의 어머니인 조보배 여사는 평소 어려서부터 자식들에게 개인의 안위보다는 국가를 위해 먼저 희생할 수 있도록 가르쳤던 분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주저 없이 나가 싸울 수 있는 투철한 국가관이 확립되도록 교육했다. 아들을 잃은 슬픔, 그것도 세 아들을 모두 나라에 바쳐야 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그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러나 조보배 여사는 그 아픔마저 결연히 딛고 일어나 나라 위한 아들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평생을 봉사와 사회활동에 헌신했다.
직접 강원도 일대 수만 평의 임야를 개간해 무의무탁(無依無托)한 제대군인들에게 삶의 터전으로 제공했다. 제대군인과 상이국가유공자 정착촌 건립으로 그들의 삶의 터전이 마련되도록 애쓰는 한편, 개인의 땅을 현충탑 부지로 기증하기도 했다.
조보배 여사는 생전에 “국가가 있어야 자식도 있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일생을 조국에 헌신한 삶을 살았고 아직도 우리 사회의 모범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