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18세기 서화 수장가인 김광국의 〈석농화원〉에 쓰여 있던 이 구절은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문에 실리면서 널리 알려졌다. 유 교수는 이를 줄여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말했고, 여행을 떠나기 전 그곳에 관해 사전 공부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해외여행보다 접근성이 좋은 국내여행이라 할지라도 일반인들이 각 지방마다 얽히고설킨 역사와 배경지식 등에 대해 자세히 익히고 떠나는 데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이러한 욕구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아는 만큼 보이는 특별한 답사여행 프로그램을 지난해부터 한 달에 한 번 진행해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인문학 강의와 답사 여행을 결합한 ‘인문열차’ 프로그램이 그것. 단순히 책과 강의를 통해 정보를 익히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현장에 가서 견문을 넓힐 기회도 갖는다. 먼저 여행을 다녀온 참가자들이 누리집에 “남는 것이 많다”는 후기를 남기면서 가족 단위로 참가 신청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등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2015년 2월 처음 시작된 인문열차 프로그램은 모두 9회에 걸쳐 진행됐다. 지난해 강의와 여행 주제는 ‘가족의 거처 한옥을 체험하다(신병주 건국대 교수)’, ‘추억으로 달리는 맛열차(박찬일 요리연구가)’, ‘내 문학 속의 음식열차(정유정 소설가)’ 등 각양각색이었다. 강사들도 대학교수, 소설가, 신문기자, 요리연구가 등 다채로워 각각의 답사 여행이 저마다 특색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4월 ‘살아가는 일은 아름다워서 눈물겨워라’라는 주제로 서해금빛열차를 타고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으로 답사 여행을 떠나는 참가자들.(사진=국립중앙도서관) |
2016년 주제 ‘선비정신’, ‘예술을 만나다’
첫 인문열차는 최치원 따라 경주·부산·합천·함양 답사여행
인기가 높았던 답사 여행은 지난해 10월 소설 〈7년의 밤〉을 쓴 작가 정유정과 함께 전남 여수와 순천으로 떠난 인문열차 프로그램. 인기소설의 작가를 실제로 볼 수 있고, 소설 속 ‘세령호’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던 배경인 ‘주암호’을 작가와 함께 탐방하며 작가가 직접 소설 준비 과정에 대해 들려줘 만족도가 높았다는 후문이다.
올해도 ‘선비정신’과 ‘예술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2월부터 11월까지 사전 강연과 현장 탐방으로 구성해 총 9회의 인문열차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탐방에 앞서 진행되는 강연은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저명인사를 초대해 열린다. 강연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리며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데 보통 200명 정도가 참석한다. 강연과 연계되는 탐방은 오는 3월부터 11월까지 매월 둘째 주 토요일에 이어진다.
2월 24일 진행된 첫 강연에서는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가 ‘신선계로의 탈출 여행’을 주제로 신라 말 뛰어난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최치원(857~?)을 따라 경주, 부산, 합천, 함양으로 이어지는 답사 여행의 사전 배경지식을 설명했다. 강연 내용을 토대로 한 답사 여행은 3월 12~13일, 1박 2일 일정으로 안대회 교수와 국립중앙도서관 관계자의 인솔하에 진행된다.
이후 탐방 일정은 4월 ‘천리의 외로운 꿈을 꾸다’라는 주제로 매창, 신재효, 서정주 등을 따라 전북 고창, 부안을 9일 김준형 작가와 함께 찾고, 5월 ‘한려수도 따라 걷는 아트로드’라는 주제로 백석, 유치환, 박경리를 따라 경남 하동, 거제, 통영을 14~15일 1박 2일 일정으로 어수웅 조선일보 기자와 함께 방문한다. 6월에는 ‘붓으로 읽는 한탄강’이라는 주제로 허목, 정선을 따라 경기 연천, 철원을 11일 고윤희 서울대 교수와 함께 갈 예정이고, 7월에는 ‘우리 시대의 시인’이란 주제로 문태준 시인과 함께 그의 고향 경북 김천을 9일 찾는다. 8월 ‘국악의 향기에 젖어서’는 박연·정지용을 따라 충북 영동, 옥천을 13일 송지원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함께 방문하고, 9월 ‘선비들의 풍수 세계’는 이지함, 이산해, 김정희 등을 따라 10일 김두규 우석대 교수와 함께 충남 홍성, 예산, 보령을 둘러본다.
10월 ‘조선 여성의 예술 세계’는 신사임당, 허난설헌을 따라 강원 강릉을 8일 신병주 건국대 교수와 함께 찾고, 마지막 여행인 11월 ‘그림 속의 음식 이야기’는 윤두서, 정약용, 허백련 등을 따라 전남 해남, 강진, 진도를 12~13일 1박 2일 일정으로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와 함께 방문한다.
사전 강연 다음 날 온라인 신청
매번 오픈 2분 만에 마감되는 등 인기몰이
인문열차 프로그램은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답사 여행 보름 전 진행되는 사전 강연에 참석한 뒤 바로 다음 날 국립중앙도서관 누리집(www.nl.go.kr/tour/index.jsp)에서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된다. 한 회 참가인원은 40명으로, 지난해에는 매번 신청 접수 시작 2분 만에 마감되는 등 경쟁률이 높아 아쉬운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하는 이들이 많았다.
참가자들은 선착순으로 선정하고, 참가비는 성인과 청소년이 차등 적용된다. 당일 여행은 청소년 2만 원, 성인 3만 원 선이고 1박 2일의 경우 청소년 5만 원, 성인 7만 원 선이다. 자세한 내용은 국립중앙도서관 누리집의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문열차 프로그램을 기획한 국립중앙도서관 관계자는 “더 많은 국민이 인문학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하며 “올해도 인문학의 저변 확대와 품격 있는 독서 문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인문열차’ 프로그램을 차질 없이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