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중년, 그루밍족, 갑질, 힐링하다’
우리는 위 단어들을 자주 접한다. 그만큼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우리 생활과 맥이 닿아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신어를 쓰면서 “과연 이게 맞는 표현일까? 표준어가 아니어도 활용할 수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으로는 그런 부담을 상당 부분 덜 수 있을 전망이다.
10월 5일에 개통된 개방형 국어사전 ‘우리말샘’. 국민 누구나 단어를 추가하고 뜻을 추가할 수 있다.(출처=우리말샘 누리집) |
국립국어원은 한글날 직전인 10월 5일부터 개방형 국어사전인 ‘우리말샘’ 누리집(http://opendict.korean.go.kr/)을 개통한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한국어기초사전’과 ‘국립국어원 한국어-외국어 학습사전’ 누리집도 함께 공개했다. 함께 만들고 모두 누리는 우리말샘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현실을 반영한 사전’ 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말샘은 국립국어원의 대표 사전인 ‘표준국어대사전’ 누리집과 비교할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교과서, 언론 등 어문규범이 엄격히 필요한 공적 현장에서 사용될 규범 기준으로 보면 되고 우리말샘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담기 어려운 요즘 신어나 생활어를 수록한 신개념 사전으로 보면 된다. 즉,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전이 하나 더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힐링하다, 갑질’과 같은 말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해 표준어로 인정되는 데 걸림돌이 많았다. 국민들이 흔히 쓰는 말이지만 나름의 어문규범 잣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말샘에서 이러한 신어들을 찾아 한국어를 생생하게 접하고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출처도 당당히 밝힐 수 있으니 표준국어대사전과 쌍벽을 이루는 국어의 보고(寶庫)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말샘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먼저, 우리말샘은 ‘참여형 사전’이다. 국민 누구나 새로운 어휘를 직접 등록할 수 있고, 사전의 뜻풀이도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참여자의 제안 정보는 전문가가 내용을 다듬어 그 뜻이 정해지고 사람들에게 공유된다.
우리말샘은 ‘실생활어 사전’ 이기도 하다. 신어와 생활용어를 포함한 일상어, 지역어, 전문용어 등 실생활 언어 정보가 무려 100만 항목 이상으로 제공된다. 표준국어대사전의 50만 어휘에 새로 구축된 50여 만 어휘가 추가되는 것이다.
우리말샘에서 ‘아버지’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역사 정보 및 수어(수화) 정보.(출처=우리말샘 누리집) |
우리말샘은 ‘한국어 지식 사전’이다. 해당 언어의 역사정보와 규범정보, 음성/사진/영상자료뿐만 아니라 수어정보, 어휘지도도 새롭게 살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말샘은 ‘진화하는 사전’이다. 우리말샘은 시류가 반영된 단어들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감지하여 사전 정보가 고인 물이 아닌 흐르는 물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말샘의 100만 목록은 시작점에 불과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국민들의 참여로 그동안 수록되지 못한 다양한 단어들이 올라올 것이고 참여자와 국어 전문가의 손을 거쳐 끊임없이 등록될 것이다.
우리말샘의 메인 화면. 왼쪽 하단부의 새로 오른 말과 가운데의 많이 찾은 말이 눈에 띈다.(출처=우리말샘 누리집) |
필자는 우리말샘 누리집이 어떻게 구성돼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먼저, 누구나 쉽게 검색할 수 있는 직관적인 인터페이스가 마음에 들었다. 메인화면 왼쪽 하단부에는 ‘새로 오른 말’ 이라고 해서 국민들이 등록한 단어가 노출되고 있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방성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필자가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등재돼있지 않은 ‘그루밍족’을 검색했더니 단어가 어떤 형태로 조합됐는지, 품사와 분야 및 자세한 뜻이 바로 나타났다. 한편, 로그인을 하면 오른쪽에 ‘내가 살펴본 단어’가 차례대로 노출되니 단어장 등으로 잘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같은 방법으로 ‘갑질, 힐링하다, 캥거루족, 헬리콥터족’ 등도 검색했더니 모두 뜻풀이가 자세히 되어 있었다. 사전에는 검색되지 않을 법한 신어들이 이렇게 체계적으로 정리됐다고 생각하니 무척 신기했다.
우리말샘에서 ‘그루밍족’을 검색한 화면. 오른쪽 하단부의 ‘내가 살펴본 단어’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출처=우리말샘 누리집) |
다만,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의 줄임말), 버카충(버스 카드 충전의 줄임말), 킹왕짱(정말 좋다는 의미)’ 등과 같은 신어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해봤지만 등장하지 않았다. 국립국어원에서도 사용되는 한국어를 가능한 한 모두 싣고자 하나, 최소한의 제약은 두기로 했다고 명시한 바 있다.
가령, 과도한 비속어, 욕설, 특정 개인/단체/집단을 비난하거나 찬양하는 말 등은 등록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젊은 세대들이 자주 사용하는 위의 줄임말들이 전 연령층이 두루 사용하는 말로 확대되고 사회 통념상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누군가에 의해 우리말샘에 등록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지금은 우리말샘 서비스가 초기 단계니만큼 신어의 축적과정 및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참여하는지 유심히 모니터링해 향후 서비스 방향을 면밀히 점검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의 우리말샘 어휘지도.(출처=우리말샘 누리집) |
우리말샘에서는 단어의 다양한 활용형태를 볼 수 있어 유익했다. ‘아버지’ 라는 단어를 검색했더니 세기별 용례, 설명 등의 역사 정보와 수어 정보, 어휘지도가 등장했다. 특히, 어휘지도는 마인드 맵처럼 반대말과 낮춤말, 상위어, 하위어, 참고 어휘, 비슷한 말 등 연관 어휘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어휘지도를 보며 필자는 우리말샘에 수많은 국어학자들의 정성과 노력이 깃들어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한국어기초사전의 메인 화면. 외국인 학습자를 위해 하단부에 10개 언어로도 서비스되고 있다.(출처=한국어기초사전 누리집) |
뿐만 아니라 국립국어원에서는 ‘한국어기초사전’과 ‘국립국어원 한국어-외국어 학습사전’을 동시에 구축해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 학습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했다.
한국어기초사전은 한국어 학습에 기본이 되는 5만 어휘를 수록해 뜻풀이를 쉽게 하고, 다양한 실례를 제시했다. 국립국어원 한국어-외국어 학습사전은 한국어기초사전을 10개 언어로 번역해 학습자의 모어와 비교하여 보다 효율적인 학습이 가능하도록 구성했다.
해당 언어의 키보드로 필요한 어휘 검색이 가능하다.(출처=국립국어원 한국어-외국어 학습사전 누리집) |
베트남어 상세검색 창. 해당 언어 학습자들에 대한 배려가 돋보인다.(출처=국립국어원 한국어-외국어 학습사전 누리집) |
필자가 이 두 사전 누리집을 살펴보니 뜻을 최대한 쉽게 풀어쓰려는 노력, 해당 언어권 학습자의 시각에서 누리집을 구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당 언어의 키보드라던지 한국어와 해당 언어가 함께 쓰인 상세검색항목 등이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이 두 사전 누리집이 한국어 학습자들에게 적절하게 홍보된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국립국어원은 2010년부터 쉽고 살아있는 사전 누리집을 구성하기 위해 위의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출처=2016.9.28. 국립국어원 보도자료) |
송철의 국립국어원장은 “국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우리말샘이 민간에서 다양하게 활용되어 다시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보물창고가 되길 바라고, 정부 3.0 의 개방 가치에 따라 우리 사회의 소통과 문화 축적의 기제로 작용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필자는 우리말샘과 다른 두 사전 누리집을 살펴보며 국립국어원이 보다 실제적이고 실질적인 국어를 반영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우리말샘이 잠재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선행돼야 한다.
국립국어원 측은 “그간 살아 움직이는 국어를 제 모습대로 파악, 기록하기 어려웠고 소수의 사전 편찬가들만으로는 시시각각 변화하고 발전하는 국어의 참모습을 반영할 수 없었다.”고 밝히며, “발달된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하여 대중과 함께 언어현상을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는 우리말샘을 개통하게 됐다.”고 언급했듯이 우리말샘 활용자 수가 점진적으로 늘어나 사전의 가치를 더욱 빛내줬으면 좋겠다.
10월 12일까지 우리말샘 개통 이벤트도 진행되니 참고하기 바란다.(출처=우리말샘 누리집) |
오늘은 제 570돌 한글날이다. 아무쪼록 우리말샘 사전 누리집과 외국인을 위한 사전 누리집이 적극 홍보되고 잘 운영돼 국민 모두가 잠시 목을 축이고 갈 수 있는 쉼터이자 ‘샘’으로 자리매김하게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