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글로 하는 여행, 여행은 발로 읽는 책이라고 했던가. 책장도 바람이 넘겨주는 가을, 문학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몸과 머리가 한 번에 충만해질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체험이다. 작가의 삶, 작품의 숨결, 고장의 넉넉함까지 아우르는 문학관 여행. 이보다 더 낭만적인 발걸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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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막과 수숫단이 옹기종기 자리한 소나기 광장에는 매시 정각 소나기가 내린다. |
때마침 자주, 소나기가 내리는 나날이었다. 더욱이 더디게 사그라지는 여름 더위 탓에 갑자기 내려 더욱 반가운 소나기는 갑자기 그쳐 아쉬움이 컸다.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모를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한번 읽어보았을 뿐인 소설 ‘소나기’가 그랬다. 내용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도 소설이 주는 뭔가 아쉬운, 어딘가 아릿한 느낌만은 또렷했다. 특히 소나기를 피해 소년과 소녀가 수숫단 속으로 숨어드는 장면, 불어난 냇가 위 징검다리를 건너는 장면은 영화 속 장면마냥 여전히 뇌리에 박혀 있다. 몸 밖에 이는 시원한 바람과 몸속에 스미는 서늘한 바람이 어디로든 떠나고 싶게 만드는 가을 녘, 발걸음은 ‘소나기마을’로 향했다.
소나기마을의 또 다른 이름은 ‘황순원문학촌’이다. 이름만 보아도 ‘소나기’가 작가 황순원(1915~2000)의 대표작임을 가늠케 한다. 경기 양평군 서종면에 위치한 소나기마을로 가다 거치는 곳이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하늘과 산과 강이 검푸른 빛으로 하나로 이어지는 풍광이 여행의 설렘을 한껏 고조시킨다. 강 따라 발을 굴리는 자전거 여행객들의 행렬도 차창 밖 한 폭의 그림이다. 소설 속 소년과 소녀가 이곳에서 뛰놀았더랬다.
초판본·원고·서재 등 황순원 작가 일대기 조명
‘독 짓는 늙은이’ 조형, ‘카인의 후예’ 영화 등 전시
누렇게 익어가는 벼와 진분홍색을 뽐내는 코스모스 사이로 난 시골길을 따라 올라가면 언덕배기에 소담한 소나기마을이 나온다. 푸른 잔디 위에는 원뿔형의 수숫단 몇 개와 원두막이 옹기종기 세워져 있다. 이곳 소나기광장에는 1시간마다(오후 12시~4시 매시 정각) 소나기가 내려 소설 속 소년과 소녀가 비를 피해 원두막에서 수숫단으로 옮겨가는 장면을 재현해볼 수 있다. 어릴 적 순수했던 그 시절의 소년과 소녀로 돌아가는 것은 이곳을 찾는 모든 이의 바람 아닐까.
정시가 되기 전 황순원문학촌 내에 자리한 황순원문학관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이곳 역시 수숫단을 형상화해 원뿔형으로 지어졌다. 내부에 들어서니 햇빛을 그대로 담을 수 있도록 머리를 연 천장 아래로 작가의 친필로 글귀를 새긴 대형 유리 조형물이 시선을 잡는다.
그 아래로는 작가의 생애와 대표작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다. 일생을 통해 시 104편, 단편소설 104편, 중편소설 1편, 장편소설 7편을 남겼다는 작가. 유리관 안에 진열된 작품의 초판본과 원고지들이 누렇게 빛이 바래는 동안에도 문학은 더욱 가치를 더해가는 듯했다.
작가는 일제강점기 말 불행한 상황 속에서도 시대와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간결한 문체와 시적 서정성으로 표현해냈다. 단편 ‘독 짓는 늙은이’ 속 옹기장이 송노인을 빚은 문학관 전시 작품에선 가정의 파탄과 병고 앞에서 일생을 바친 작업에 한계가 왔음을 깨닫는 한 인간의 쓸쓸함이 읽히고, ‘학’ 속의 단짝친구 성삼과 덕재를 형상화한 조형에선 매정한 이념과 그 속에서도 메마르지 않은 휴머니즘이 배어나온다.
토지개혁이 시행될 무렵의 북한을 배경으로 한 ‘카인의 후예’는 영화로 만들어져 고통스러운 역사의 격동에 맞선 인간애를 담은 필름을 작은 스크린에 돌리고 있었다. 짙은 갈색 나무로 만든 책장과 책상이 우두커니 자리한, 트렌치코트와 두루마기가 나란히 걸려 있는 작가의 서재를 보고 있자면 결국 작품에 드러난 올곧은 정신과 따듯한 인간애가 작가 그 자신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품게 한다.
이 밖에도 문학관 안에는 연극 등으로 제작된 작가의 작품이 끊임없이 상영되고, ‘소나기’ 속 소년과 소녀가 공부했던 옛날 교실도 꾸며져 있다. 이쯤 되면 가슴속에건 머릿속에건 아름다운 문장 하나 떠오를 법하다.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써 우체통에 넣었다. 아득한 첫사랑 대신 지금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는 이곳에서 보내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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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경기 양평군 두물머리에는 소나기마을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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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을 이야 기한 소설 ‘소나기’는 영화와 뮤지컬 등으로 만들어졌다. |
매시 정각 소나기… 수숫단 속에서 빗소리 감상
‘너와 나만의 길’ 도랑 걷고 ‘고백의 길’서 알밤 줍고
‘우르르 쾅’ 하고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소리가 난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정각이다. 광장에 있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원두막으로, 수숫단 안으로 몸을 숨긴다. ‘쏴-’ 하는 소리와 함께 네 개의 물대포에서 번갈아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쏴-솨-솨-솨-. 몸집이 커진 소녀는 수숫단에는 못 가고 원두막 우산 아래 있어야 했지만, 잔잔한 음악과 함께 흩뿌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만은 소녀가 된 듯 설레었다. 어린아이들은 외려 비를 맞겠다고 비명을 지르며 잔디 위를 신나게 뛰어다니는데 소설 속 고요하고 애잔한 풍경은 아닐지라도 이 또한 정겹고 가슴이 벅차다.
소란한 수숫잎 소리가 그치고 광장의 하늘이 푸르름을 더할 때면 소나기마을의 뒷길을 산책하기에 제격이다. ‘소나기’ 등 황순원 선생의 작품 속 장면을 주제로 산책로가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소년이 소녀를 등에 업고 물이 불어 있는 도랑을 건너던 장소를 재현한 ‘너와 나만의 길’, 소년과 소녀가 꽃을 꺾으며 가까워지기 시작한 장소를 꾸민 ‘들꽃마을’ 등.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벅이 된다. 모두가 하나의 큰 꽃묶음 같다.’
산책로 곳곳에 쓰인 소설 속 문장 하나하나에 마음이 가 박힌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었다면 문장이 먼저 와 닿았겠지만 발걸음 옮기며 읽는 책 여행에선 내가 먼저 문장 속으로 들어간다.
‘고백의 길’에서는 소녀가 건넨 대추와 소년이 따던 호두와 밤을 직접 딸 수 있다. 소설에서는 집안 사정이 나빠져 이사를 가게 된 소녀가 소년에게 집에서 딴 대추를 내어준다. 산책로도 여기에서 끝이 난다. 바닥에는 누군가 알밤을 채가고 남은 밤송이들이 굴러다녔다. 뒤에 올 이들을 위해 나무에서 따는 대신 주머니 속에 있던 밤을 꺼내 먹었다. 산책하며 만난 아주머니께서 직접 밤나무를 심어 딴 것이라며 쥐여주신 밤이었다. 집에서 직접 쪄온 알밤은 부드럽고 고소했다.
소설 속 소녀는 양평읍으로 이사를 가기 전 이야기한다. ‘왜 그런지 난 이사 가는 게 싫어졌다’고. 어느새 소녀가 된 소설 밖 그녀도 생각했다. 왜 그런지 양평에 더 머물고 싶어졌다고. 여행은 소설보다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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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소나기마을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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