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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의 꿈과 가족의 행복 지켜준 ‘스마트워크’

[공무원 근무혁신 수기 공모전] ① 최우수상: 박은순 식품의약품안전처 주무관

2016.10.14 박은순 식품의약품안전처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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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근무, 계획 초과근무제, 업무프로세스 개선 등 공직사회에 근무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로 인해 공무원의 삶에도 크고 작은 변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과 가정의 양립, 재충전 휴가 이후 업무생산성 향상, 삶의 만족도 개선 등 조직과 개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인사혁신처가 이러한 사례들을 수기 공모전을 통해 소개한다.(편집자 주)

나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의 질문에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큼 납득이 갈 만한 이유가 없었다. “왜! 왜?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제야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 거야?”라고 가족들과 친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위협하듯이 물었다. “사실~ 나 대학 다닐 때부터 식약청에서 일해보고 싶었어. 약사라면 말이야, 도대체 의약품이 어떻게 허가되는지 궁금하지 않아?”라고 되물었지만 냉담하고 서늘한 반응만 되돌아 왔다.  

다국적제약회사 부장에서 7급 약무직공무원으로

7급 약무직공무원으로 임용되던 해에 나는 다국적제약회사 부장이었다. 임상시험분야로 경력을 쌓아 업계에서만 13년 가까이 일했다. 다국적 제약회사에서만 근무해서 1년에 수차례씩 해외 출장을 다녔다. 나와 같은 직급에 있는 사람들은 ‘본부장’ 혹은 ‘이사’로 승진하기 위해 하루하루 싸워나갔다. 자기자신과 그리고 경쟁자들과.

식약처와는 소위 민원인 자격으로 계속 일을 해왔기에 본부가 오송에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제약회사의 크고 작은 민원신청이나 상담건으로 식약처 공무원 30분 상담을 위해 거의 하루를 투자해 오송에 다녀오곤 했다. 그나마 지금은 KTX가 개통이 돼 빨라졌지만 이주 초기에는 조치원까지 무궁화호를 타고 가서 택시를 타고 가거나 고속버스인지 시외버스인지 구분이 잘 안갈만큼 쾌적하지 않은 버스를 타고 가야했다.

식약처에서 약무직 공무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제약업계 인터넷 신문을 통해 접했다. 업계에 입문하고 그 인터넷 신문은 거의 매일 모니터링 하고 있었는데 구인구직란에 식약처 공무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사실 호기심이었고 신기했다. 학교 다닐 때 막연하게 동경했던 식약처라는 곳은 어떤 곳일까? 늦었지만, 나도 일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작은 설레임도 함께 했다. 

지원서를 훑어보니 우리집과 지하철로 2정거장 떨어진 서울지방식약청도 근무희망지로 표시할 수 있었다. 보통 많은 회사들이 강남에 있어 영등포인 우리집에서 가려면 지옥철에 1시간 이상 시달리거나 운전을 해서 다닌다 해도 1시간 이상을 주차장 같은 도로를 뚫어야 했다.

남편과 아이들을 봐주던 친정부모님에게도 가까운 곳에서 근무할 수도 있다고, 지금 회사보다 훨씬 더 빨리 퇴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그리고 오송에 있는 본부에는 나 같이 나이든 아줌마 말고 젊고 스마트한 사람들이 많이 지원할테니 걱정말라며 큰소리를 쳤다. 

드디어 최종합격! 주변에 축하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내 스스로는 뭔가 마음속 깊이 꾸깆꾸깆 접어서 넣어둔 꿈에 한 발짝 가까이 간 것 같았다. 바로 이어진 2주간의 교육. 시작 전에 다니던 회사는 깔끔히 정리했다. 아직 정식발령은 안났지만 여러분은 이미 공무원입니다. 이런 알쏭달쏭한 안내 메시지를 들으며 경력증명서를 인사부에 요청하고, 퇴직금 들어오는 일자를 확인해 두고 미련없이 회사를 떠났다.

서울식약청이 아니라 오송 본부라구요?

아주 오랜만에 다시 학생이 된 듯한 착각 속에서 강의도 듣고 조별로 아이디어 회의를 하기도 하며 즐겁게 교육을 마쳤다. 비극은 교육 마지막날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에서 시작됐다. 경쾌한 수신음을 듣고 열어본 휴대폰 메시지에는 다음주 월요일부터 내가 출근해야 할 곳은 지하철 2정거장 떨어진 서울식약청이 아니라 가는데만 2시간이 걸리는 오송 본부였다.

뭔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혹시 동명이인이 있는 건 아닌지, 정말 내가 맞는지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는 깔끔히 퇴사처리를 했고 나의 후임자를 내손으로 추천하고 온 상황이어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렇다고 일을 아예 그만 둘 수 있는 경제적 상황도 아니었다. 이제 곧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막내가 제일 먼저 생각났다. 이제 뭘 어찌해야 할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에서야 다른 직장을 찾아보기에는 여유시간이 없었다.

업계에서도 갑자기 식약처 공무원이 되겠다고 부장자리를 박차고 나온 내가 큰 이슈가 되었나보다. 그래놓고 이제와서 시작도 안 해보고 그만둔다고 이야기 하면 13년간 쌓은 나의 경력에 흠집이 나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KTX로 출퇴근을 한다고 들었다. 먼저 철도회원 가입부터 했다. 그래 남들 다하는데 나라고 못할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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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5시 30분에 일어나 간단한 아침식사를 준비해 주고, 자고 있는 아이들의 머리를 한번씩 쓰다듬어 주고는 집을 나섰다. 퇴근은 아무리 정시퇴근을 한다해도 집에 들어서면 8시가 넘었다. 야근이 있는 날에는 밤 12시가 다 되어 어둠을 뚫고 집으로 향했다. 무엇보다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집에서는 잠만 자고 나오고 밤늦게 갔다가 새벽에 나오니 머리감을 시간도 없었다. 정말 이러다 기차에서 쓰러져 죽을 것만 같았다. 

평일에는 오송 오피스텔…금요일 밤 서울로

친정부모님을 찾아가 사정했다. 이왕 공무원이 되었으니 1년이라도 버티고 싶다. 그런데 출퇴근 하기가 너무 힘드니 1년만 아이들을 봐주십사 부탁했다. 나는 오송에 오피스텔을 한 채 얻어 평일에는 열심히 일하고, 금요일 밤에 올라오겠다고 했다.

친정부모님은 딸의 꿈을 응원했다. 사실 손주보다는 딸의 건강이 먼저였기에 하루 왕복 4시간이 걸리는 출퇴근 보다는 내려가서 마음 편이 일하라고 해주셨다. 그러나 문제는 나의 평생 파트너 남편이었다. 남편은 이런 상황을 극도로 싫어했다. 멀쩡하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월급도 반토막이 난 상황에 이제는 아이들을 두고 혼자 1년 동안 떨어져 지내겠다니.

사실 내가 입장바꿔 남편이 이렇게 나왔다면 팔짝팔짝 뛰면서 말렸을 것이다. 아니면 스스로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라고, 오피스텔 얻어 혼자 있는 것은 절대 안된다고 했을 것 같다. 남편에게도 1년이라는 정해진 기한만큼만 이해해 달라고 애걸복걸했다. 앞으로 1년동안 서울 발령을 꾀해보거나 정말 안된다면 공무원을 포기하는 것까지도 다짐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된 나의 공무원 생활. 모든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온나라에서 공문을 쓰는 것도, 다른 부처들과 협업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첫 번째로 맡은 큰 프로젝트는 국제행사를 치러내는 것이었다. 외국 규제기관 당국자에게도 email로 초청장을 보내기도 하고, 외교부에 협조 요청을 하기도 하고, 뭔가 내가 우리나라 국가 대표선수가 된 듯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고 1년이 지났다. 공무원으로서 일하는 것이 나 스스로에게는 매우 즐거운 일이었지만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공무원 사회의 분위기는 좀처럼 적응하기 힘들었다. 거기다 기본적으로 20년씩 일해오고 있는 분들이 계신데 아무리 사회에서 쌓은 경력이 있다고는 하나, 들어온 지 이제 막 1년이 되가는 솜털 보송보송 병아리 공무원이 할수 있는 일은 ‘지시사항’을 따르는 것 뿐이었다.

남편·아이들·부모님…모두의 불만과 스트레스는 쌓여가고

더군다나 나보다 더 오랜 시간을 KTX로 출퇴근 하는 분들도 있고 다들 저마다의 사연으로 가족과 떨어져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가족들이 있는 서울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몇 번 떼도 써봤지만 그냥 그게 다였다. 

1년 동안 막내는 엄마없이 초등학교 신입생 생활을 했다. 준비물을 못 챙겨가기 일쑤였고 학부모 상담이나 운동회 등에도 할머니가 대신 ‘참석’만 하셨다. 요즘은 학부모들이 온라인 상에서 모임을 만들어 정보도 공유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직접 만나서 아이들끼리 놀게 해준다.

나 어렸을 적에 집앞 골목에서 고무줄 놀이 하면서 알아서 놀던 시절은 지나고 키즈카페, 공원, 놀이터 등에 미리 약속을 한 엄마들과 그 자녀들이 함께 논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같이 놀 친구들도 없다. 막내는 처음에 엄마가 공무원이 된다고 했을 때, ‘승무원’이랑 비슷한 거냐고 물었다. 막내입장에서는 앞글자만 달라지니 우리엄마가 이제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다니나 보다 했단다.

그런데 엄마를 평일에는 만날 수도 없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항상 ‘우리엄마가 지방에 있어서’라는 설명을 해야 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나 보다. 주말만 되면 내 옆에 갓난쟁이처럼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학교 공부도 많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선생님이 특별히 상담을 요청할 정도였다.

첫째는 슬슬 사춘기에 접어드는 6학년 남자아이다. “내가 알아서 할게”와 “엄마는 신경 쓸 필요없어”를 입에 달고 살고 이제는 영화관에 엄마와 가는 것보다 친구들과 가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렇게 몸 뿐만 아니라 정신도 커가고 있을 때 엄마는 옆에 없고, 아빠도 밤 10시가 넘어 퇴근하니 정말 스스로 알아서 했다. 제멋대로 말이다.

PC방이 우리집 안방 이름처럼 되어버렸고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온 동네를 친구들과 돌아다닌다. 할머니가 해주시는 된장찌개보다 편의점에서 친구들과 사먹는 삼각 김밥과 컵라면 세트가 더 맛있다고 한다. 주말에 잠깐씩 얼굴보는 엄마의 질문에는 공부든 학교생활이든 적당히 얼버무리고 핑계를 대서 넘어 가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거짓말이 일상이 되었다.

간다고 하고 안가고, 했다고 하지만 결국 하지 않았다. 그냥 넘어가면 좋은거고 재수없이 걸리면 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아이의 생각이 굳어지고 있었다. 남편은 운전을 하다가 신호위반한 상대편차가 정면으로 들이받아 교통사고가 났다. 다행히 부러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알 수 없는 후유증으로 계속 무릎이 아파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퇴근해도 부인의 온기는 느낄 수 없었고 나중에서야 우울증 약을 복용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친정아버지는 여태껏 건강하셨는데 메르스가 창궐하던 그 여름, 갑자기 샤워하다 쓰러지셨다. 그때 나는 한창 국제행사 보고자료를 만들고 있어 바로 가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업무보고가 모두 끝나고 밤11시가 돼서야 서울행 KTX를 예매했지만 새벽에 도착해 병원 면회도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냥 포기했다. 아버지가 정말 많이 서운해 하셨다. 하나밖에 없는 딸래미가 가장 필요한 시기에 일 때문에 못온다고 하고, 오려고 해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답답한 노릇이였다. 

이런 여러가족들 속에 친정어머니는 버티어 내고 계셨지만 고질적인 관절염으로 지팡이가 없으면 외출도 못하도록 악화됐다. 엉망진창이었다. 학창시절 꿈꾸었던 것을 이뤄보겠다고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어쩌면 희생을 강요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서울발령을 요청했지만, 자리도 없었고 규정에 따라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만두겠다고 결심…그때 나온 과장님의 놀라운 제안

결국은 모든 것을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만두고, 나의 가족들이 있는 곳에서 다시 직장을 찾기로 하고 과장님께 결심을 말씀드렸다. 과장님께서는 아주 놀라운 제안을 해주셨다. 지금 그만두려는 이유가 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하려는 것이라면, 일주일에 1번만 오송에서 근무하고 나머지는 서울 스마트워크센터를 이용해서 근무하라는 말씀이었다.

정말 가능한 것일까. 가끔 서울역이나 국회센터 스마트워크센터에 가서 이메일 학인을 해본적은 있지만 정식으로 근무하는 것이 가능할 지 의문스러웠다. 선배 공무원들은 회의적이었다. 그런 케이스는 여태까지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주1일만 내려오라고 해 놓고는 매일 이런저런 핑계를 대서 내려오라고 할 것이라는 사람도 있었고 혼자서 서울 스마트워크센터에서 근무한다면 미움을 살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분도 있었다. 게다가 내가 처리해야 할 일들을 누군가 본부에서 대신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길것이니, 동료들도 싫어할 것이고 욕만 먹게 될거라고 했다.

이전에 제약회사를 다닐 때에는 10시~4시 집중근무시간에만 사무실에서 확실히 근무하면 출퇴근 시간은 자율적으로 정했다. 사정이 있으면 재택근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만 그렇게 근무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그런 근무형태를 취하니 서로서로 이해하고, 일하는 스타일도 거기에 맞춰져 갔다.

그래, 선배들의 말을 듣자. 안 그래도 보수적인 편인 공무원 조직에서 나 혼자 특이하게 행동하면 불이익을 당할 것만 같았다. 과장님께 다시 말씀을 드렸다. 제안해주신 것은 너무나 감사하지만 위의 경우와 같은 일들이 생길 것 같아서 안 되겠다고, 그냥 그만두겠다고 말이다. 과장님은 전화와 이메일, 그리고 온나라 메신저와 같은 다양한 도구들이 있는데 스마트워크센터에서 근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힘을 실어주셨다.

사실 나도 어려운 결정을 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지만 현실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휴직도 생각해 보았지만 경제적으로 남편을 도와야 하는 상황이라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도 미소 가득한 얼굴로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염치불구하고 과장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했다. 서울에서 근무한다면 아이들에게 아침을 차려줄 수도 있고 저녁에 숙제를 봐줄 수도 있다. 몸이 불편하신 친정부모님의 건강도 옆에서 챙겨드릴 수 있었다. 우리과의 연구관님과 동료들에게 사실 가장 미안했다. 아무래도 옆에 없어서 당장 불편한건 함께 일하는 실무자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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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만 휙 돌려서 물어봐도 되는 것을 일일이 전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보내서 물어봐야 하니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릴 것이고 번거로울 것이다. 연구관님은 내가 초안한 보고서를 수정사항만 표시해 다시 사진찍어서 보내주셔야 했다. 혹은 이메일로 일일이 수정사항을 적어 주어야 하니 얼마나 불편하고 귀찮은 상황이었을까.

하지만 정말 나는 인복이 많은 것이 틀림없었다. 이런 획기적인 제안을 해주신 과장님도 감사하지만 우리과의 동료들과 연구관님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서울 생활을 응원해주셨다.

이제 주 3~4일 스마트워크센터 근무생활을 한 지 6개월이 넘었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계란후라이와 된장국이라도 따뜻하게 아침상을 준비하니 가족들 모두 좋아했고 생활습관도 조금씩 변화돼 갔다. 스스로도 아침을 챙겨먹기 시작하니 건강도 좋아지고 있었다. 

전화 수화기를 붙들고 울면서 “엄마 언제와?”만 반복하던 막내는 이제 심리적으로 안정을 되찾았고, 그러면서 학습 능력도 많이 좋아져서 반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은 아이가 되었다. 내가 없는 1년 동안 교통사고를 겪고 우울함이 극에 달했던 남편도 요즘은 싱글벙글이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저녁시간에는 재미있는 게임도 하고 그 날 있었던 일들도 이야기하며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외동딸의 꿈이 이뤄지기를 응원해주시는 부모님도 꾸준한 관리로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시고 있다.

중학생이 된 아들이 자율학기제 수업을 들으며 ‘꿈찾기’ 프로젝트를 하고 오더니 내게 묻는다.
“엄마는 꿈이 뭐였어?”
“응, 종민이랑 서현이 엄마되는 게 꿈이었어”
“에이~ 그게 뭐야~!”
아들의 핀잔에 돌아서서 소리없이 미소를 지었다. 

유연근무라는 제도 덕분에 학창시절부터 꿈꾸었던 식약처 공무원의 꿈을 가족의 행복과 함께 지킬 수 있었다. 좋은 제도와 함께 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과장님과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응원해 준 우리 과원분들이 있었기에 오늘도 미소 가득한 얼굴로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퇴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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