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보면 귀여운 만화처럼 보였다. 하지만 등 뒤로 미사일을 감춘 채 유모차에서 떼쓰고 있는 아기 김정은을 바라보는 어른의 그림, ‘미제국주의 침략자들을 물리치자’는 포스터 앞에서 스마트폰에 관심을 보이는 북한 학생들의 현실을 풍자하는 그림들은 발길을 멈추게 했다. 심상치 않은 그림들이 있는 이곳은 서울 목동 대한예술인센터에서 ‘경계에 선 이방인들’이라는 주제로 진행되고 있는 탈북민 3인의 전시회장이다.
이 작품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그림은 양쪽 눈에 대한민국의 태극기와 북한의 인공기가 각각 그려진 젊은 청년의 자화상이었다. 두 나라 사이의 경계에 선 이방인, 탈북 작가 강춘혁(31) 씨의 자화상이다. 강 씨는 “그림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며 “사람들이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드로잉 기법으로 그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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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춘혁 작가는 “그림과 노래를 통해 북한의 실태를 고발하는 게 삶의 의미가 된다”고 밝혔다. |
경계에 선 이방인이 전하는 북한의 모습
무겁지 않게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강 씨가 탈북한 건 1998년, 그의 나이 열두 살 때였다. 탄광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먹고살기 위해 1년간 중국에 다녀왔는데, 그 사실이 들통나면서 아버지는 감옥 신세를 져야 했다. 어머니의 뇌물로 잠시 감옥을 빠져나온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여기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중국으로 가야 살 수 있다”며 은밀하게 중국행을 추진했다. 그리고 두만강의 얼음이 녹기 전에 건너자며 어느 날 새벽 동네 사람들과 함께 실행에 옮겼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강끝에 다다르는 순간 얼음이 깨지면서 강 씨는 물에 빠지고 말았다. 다행히 아버지가 뛰어들어 그를 끌어 올렸기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두렵고 무서운 현실이었다.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4년을 숨죽이며 산 강 씨 가족은 언제 잡힐지 모르는 중국에 남는 것보다 남한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부모님은 건강이 좋지 않아 사촌 형과 강 씨가 먼저 떠나기로 했다.
“세계지도 한 장 손에 들고 무작정 기차를 탔어요. 제3국의 한국대사관까지만 가면 우리를 보호해준다고 들었거든요. 하지만 라오스를 지나 캄보디아국경을 넘다가 군인들에게 잡히고 말았어요. 중국인인 척하면서 하루 종일 조사에 응하지 않았더니, 그들도 지쳤는지 가진 돈을 모두 내놓으라고 한 후 보내주더라고요.”
군인들은 강 씨 일행을 낯선 사람에게 인계해줬는데, 그와 함께 도착한 곳은 캄보디아의 한 교회였다. 알고 보니 그 낯선 사람은 캄보디아에서 탈북민을 도와주는 목사였다. 그의 도움으로 부모님과도 감격스러운 재회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2001년 강 씨 가족은 캄보디아의 한국대사관을 통해 대한민국으로 올 수 있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했는데 어안이 벙벙하더라고요. 남한의 첫인상은 무척 깨끗하다는 거였죠. 후문을 통해 나왔는데, 선글라스를 쓰고 양복 입은 남자분들이 다가와 ‘대한민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하더군요. 감격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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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춘혁 작가는 ‘자화상(왼쪽)’을 통해 ‘경계에 있는 이방인’의 고뇌를 표현하거나, 만화 같은 드로잉 기법으로 북한의 현실을 풍자하는 그림 등을 그린다. |
이달 말 정식 앨범 발매
‘마음속 자유’에 대한 갈망 노래
하나원에서 적응교육을 받은 강 씨 가족은 정부로부터 임대주택과 정착금 2100만 원을 지원받고 처음으로 안정된 생활의 기쁨을 누렸다. 강 씨는 “대한민국 정부가 정착금 등 지원을 많이 해줘 무척 감사했다”고 말했다. 이후 경남 밀양에 터전을 잡고 어머니는 식당 보조로, 아버지는 일용직 근로자로 일을 시작했다. 강 씨는 당시 열여섯 살이었지만 중학교 졸업을 못 했기 때문에 2학년으로 편입했다. 하지만 또래보다 나이가 많은 강 씨는 아이들과의 잦은 충돌로 결국 퇴학을 당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강 씨는 스물다섯 살이 될 때까지 방황을 계속했다. 건설 현장에서 노동일을 하고, 배달과 인테리어 잡부 등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원에서 만난 친구들이 “너 그림 잘 그리잖아. 그걸로 대학교 갈수 있지 않을까?”라고 조언을 해줬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중국에서는 한류 열풍에 맞춰 연예인들을 직접 그려 문구점에 내다 팔았는데 인기가 좋았어요. 그래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를 공부하고, 홍익대 미대에 입학원서를 제출했어요. 그런데 덜컥 합격 통지서가 나왔죠.”
2011년 홍익대 미대에 입학한 강 씨는 중학교 때와는 달리 산전수전 겪은 노련미로 나이보다 어린 동기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연필과 샤프펜슬로 그림을 그렸던 강 씨는 동기들에게 “캔버스가 뭐야?”, “나이프는 왜 필요한데?”라는 질문을 해가면서 친구들을 사귀었다. 다행히 좋아하는 그림 덕분에 4년간의 대학 생활을 잘해낼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대학 졸업 직전인 2014년 강 씨는 ‘쇼미더머니’라는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에 북한 실상을 담은 랩으로 참가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거기는 리설주가 조국의 어머니. But she is not my 어머니. 내 어머니가 아오지에서 얻은 건 결핵. 땅굴 판 돈 착취해서 만든 것은 핵… 난 두렵지 않아 공개 처형. 그래서 나왔다 공개 오디션. 그 더러운 돈 나한테 다가져와. Show me the money.’
방송이 나간 직후 ‘탈북 래퍼, 강춘혁’의 이름은 한동안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 1위를 기록할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묘한 슬픔과 충격을 줬다. 모두가 알고 있는 북한의 이야기를 북에서 살던 청년의 입으로 듣게 되니 더 가슴에 와 닿았던 것이다. 강 씨는 사람들이 그렇게 열렬히 반응해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전시는 좁은 공간에서 한정된 사람들만 볼수 있잖아요. 하지만 노래는 대중성이 강하니까 더많은 사람들에게 랩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출연하게 됐죠.”
강 씨는 이때 인연을 맺은 래퍼 양동근의 도움으로 이달 말 정식 앨범을 발매한다. 미국 할렘가에서 흑인들이 인권을 호소하면서 부른 음악 장르인 힙합. 강 씨의 음악에는 남한과 북한의 경계에 있는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마음 속 자유’에 대한 갈망이 녹아 있다. 그는 앞으로도 노래와 그림을 함께 병행하며 살 계획이다. 그것만이 그를 진정한 자유인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에게 저의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북한의 실상을 고발하는 것은 물론, 제 개인적인 이야기도 할 겁니다. 젊은 층에게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게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 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 삶에 이것만큼 의미 있는 일도 없지 않을까요?”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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