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 아이들도 뮤지컬을 배울 수 있나요?”
1996년 초 경기 안산시의 한 대안학교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정창옥(55) 씨는 앞뒤 생각하지도 않고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 학교는 상가 건물 3층 옥상에 있었다. 제도권 학교에선 감당할 수 없는 문제아들이 모여 있던 터라 싸움은 물론 음주와 흡연, 왕따 같은 사건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아이들은 뮤지컬이 뭔지 잘 몰랐다. 노래와 춤, 연기 세 가지 행위로 이야기를 선보이는 공연이라고 했더니 그제야 반응을 보였다. 학생 40여 명이 뮤지컬을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교실 뒤편에 책걸상을 몰아놓고 아이들과 교실 바닥에 삥 둘러앉았다. 정 씨가 아이들에게 한 명씩 나와 노래와 춤, 연기를 보여달라며 ‘판’을 깔아줬더니 정작 한 명도 나서지 않았다.
“그날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진 아이들의 눈빛을 봤습니다. 마음이 텅 비어버린 껍데기의 모습을….” 정씨는 그때 처음 위기청소년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약이 뮤지컬이라고 확신했다.
“뮤지컬은 자존감을 높여줍니다. 문제아 소리 듣던 아이가 행동하고 도전해 성취감을 느끼도록 하죠. 가정폭력, 학교폭력, 성폭력으로 몸과 마음이 아픈 아이들은 분노와 충동을 조절하지 못합니다. 우울증도 앓아요. 틱(Tic)장애와 과잉행동장애(ADHD)도 보입니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서 청소년 열대여섯 명이 활동하는 작은 뮤지컬 극단 ‘긍정의 힘’은 비영리법인 청소년단체 위드프렌즈에 소속돼 있다.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뮤지컬을 가르치는 정 씨는 1996년 위기청소년들을 처음 만났다. 정 씨는 안산 지역 위기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희망을 선사하는 ‘아빠’라 불린다. 11월 29일 그를 만나러 갔다.
![]() |
10년째 위기청소년들에게 뮤지컬을 가르치는 정창옥 씨. 그의 지도법은 “아이들의 개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
허리 부상으로 뮤지컬배우 포기…우연히 학생들과 공연
뮤지컬로 정신장애 앓는 위기청소년들 치료 다짐
‘긍정의 힘’ 뮤지컬 연습실 겸 아이들의 숙소 한쪽에서 그는 오래전 뮤지컬배우로 활동하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방황했던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위기청소년이 남의 일일 수만은 없는 건 그 또한 아팠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뮤지컬계 기대주였던 정 씨는 1989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 오디션에 참가했다. 공중에서 두 바퀴를 도는 발레 동작 ‘투랑네’를 선보였다. 착지가 불완전했고, 척추를 크게 다쳤다. 그 때문에 더는 뮤지컬 배우로 활동할 수 없었다.
“퇴원 후 집으로 갔는데 도저히 서울에서 살 수 없겠더라고요. 눈만 돌리면 연습실이 보이고 공연장이 있으니까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오래전에 안산에 집을 사뒀던 터라 곧바로 서울을 떠났습니다.”
그는 1995년 말 우연히 연극하는 사람을 만났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안산벌’이라는 극단을 만들었다. 정 씨가 재정적으로 후원하며 극단의 사무를 도맡았다. 돈벌이가 궁했던 단원 3명이 포장마차를 하겠다고 해 자신의 명의로 된 트럭을 내줬다. 그런데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났다. 한 명은 목숨을 건졌지만 다른 한 명은 목숨을 잃었고 또 다른 한 명은 반신불수가 됐다. 그는 경찰 조사부터 보상금까지 모든 일을 직접 처리했다. 그나마 있던 돈도 다 날리면서 모든 게 망가졌다. 1996년 한강에서 뛰어내리려는데 대안학교 교장이 어찌 알고 전화를 해와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뮤지컬을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어요. 꿈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창작 뮤지컬을 만들어 아이들과 6개월 동안 연습했습니다. 공연이 끝나니까 아이들 눈빛이 달라져 있더라고요. 성취감을 맛보더니 입에서 ‘도전하겠다’, ‘꿈이 생겼다’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또다시 예기치 않은 사고가 터졌다. 극단에서 일어난 불상사로 책임자인 정 씨가 구속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1997년 재판 과정에서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이미 그의 삶은 엉망이 돼버렸다. 아내와 어린 아들은 보증금 50만 원, 월세 5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지내고 있었다.
불행한 사고 이후 그는 지인이 운영하는 부동산 사무실에서 일했다. 당장 먹고살아야 했기에 뮤지컬은 잠시 접어뒀다. 10년이 금세 지나갔다. 그사이 신문에선 위기청소년 문제를 다룬 기사가 쏟아졌다. 정 씨는 “뮤지컬을 그만둔 내내 끙끙 앓았다. 뮤지컬이 전부였던 나에겐 삶의 가치, 존재의 의미가 필요했다”고 했다.
그러다 2006년 우연히 청소년 선도 활동을 해오던 지역 인사와 인연이 닿았다. 정 씨는 위기청소년들이 거주하는 쉼터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야간 당직을 섰다. 그는 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뮤지컬 공연을 기획했다.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지원을 받고 자신의 전셋집을 절반으로 줄인 돈으로 뮤지컬 연습실 100여 평을 마련했다.
어느 날 정 씨는 중학교에서 전학을 1년에 다섯 번이나 한 아이를 만났다. 부모의 이혼,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심리가 매우 불안한 상황이었다. 방치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연습실로 데려와 밥을 먹이고 재웠다. 이곳에서 생활하던 그 아이는 지난해 집으로 돌아갔다. 내년이면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이후 하나둘씩 식구가 늘었다.
![]() |
뮤지컬 극단 ‘긍정의 힘’은 2013년부터 매주 금요일 저녁 서울과 경기 일대에서 길거리 뮤지컬 공연 ‘힐링 콘서트’를 진행한다. |
![]() |
올해 여름 뮤지컬 극단 ‘긍정의 힘’ 단원들이 길거리 공연을 하는 모습. (사진=긍정의 힘) |
매주 금요일 저녁 길거리 뮤지컬 공연 열어
“나눔·기부 거창한 게 아냐…아이들과 함께할 뿐”
‘긍정의 힘’은 이제 위기청소년들의 생활 공동체로 변신했다. 그런 아이들을 품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도 그는 “누구도 받아주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나마저 외면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 종로구 명륜동과 안산시 고잔동에 마련된 숙소에서 위기청소년 50여 명이 지내고 있다. 이들 중 15명이 뮤지컬 연습에 참여한다. ‘긍정의 힘’은2013년부터 매주 금요일 저녁 서울, 경기 지역에서 길거리 뮤지컬 공연 ‘힐링 콘서트’를 진행해오고 있다.
혹자는 말한다. “꼭 이렇게까지 해서 나눔을 해야 하느냐”고.
“제가 오디션 보다가 허리를 다치지 않았더라면, 불행한 사고에 연루되지 않았더라면 뮤지컬배우가 돼 재능을 기부하면서 ‘적당히’ 살았을 거예요. 하지만 전 죽으려 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런 저를 살린 게 이 아이들이었고요. 어찌 보면 자석처럼 아이들에게 빨려들어간 게 당연하죠. 운명이고 필연이라 생각합니다.”
그에게 나눔과 기부는 거창한 게 아니다. 그저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일 뿐이다.
“간혹 사람들이 언제까지 이 일을 할 거냐고 물어요. 이제 아이들은 제 삶이나 마찬가지인데, 언제까지가 어디 있겠어요. 그저 식구가 좀 많을 뿐이죠.”
[위클리공감]
- 공공누리 출처표시 및 변경을 금하는 조건으로 비상업적 이용이 가능합니다. (텍스트)
- 단, 사진, 이미지, 일러스트, 동영상 등의 일부 자료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저작권 전부를 보유하고 있지 아니하므로, 반드시 해당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으셔야 합니다.
문의처 :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포털과
뉴스 |
|
---|---|
멀티미디어 |
|
브리핑룸 |
|
정책자료 |
|
정부기관 SNS |
|
※ 브리핑룸 보도자료는 각 부·처·기관으로부터 연계로 자동유입되는 자료로 보도자료에 포함된 연락처로 문의
※ 전문자료와 전자책의 이용은 각 자료를 발간한 해당 부처로 문의
- 제37조(출처의 명시)
- ① 이 관에 따라 저작물을 이용하는 자는 그 출처를 명시하여야 한다. 다만, 제26조, 제29조부터 제32조까지,
제34조 및 제35조의2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 2011. 12. 2.> - ② 출처의 명시는 저작물의 이용 상황에 따라 합리적이라고 인정되는 방법으로 하여야 하며, 저작자의 실명
또는 이명이 표시된 저작물인 경우에는 그 실명 또는 이명을 명시하여야 한다.
- 제138조(벌칙)
-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2011. 12. 2.>
- 1. 제35조제4항을 위반한 자
- 2. 제37조(제87조 및 제94조에 따라 준용되는 경우를 포함한다)를 위반하여 출처를 명시하지 아니한 자
- 3. 제58조제3항(제63조의2, 제88조 및 제96조에 따라 준용되는 경우를 포함한다)을 위반하여 저작재산권자의 표지를 하지 아니한 자
- 4. 제58조의2제2항(제63조의2, 제88조 및 제96조에 따라 준용되는 경우를 포함한다)을 위반하여 저작자에게 알리지 아니한 자
- 5. 제105조제1항에 따른 신고를 하지 아니하고 저작권대리중개업을 하거나, 제109조제2항에 따른 영업의 폐쇄명령을 받고 계속 그 영업을 한 자 [제목개정 2011. 12. 2.]
이전다음기사
다음기사“따뜻한 밥 한 끼, 제가 오히려 위로받아요”정책브리핑 게시물 운영원칙에 따라 다음과 같은 게시물은 삭제 또는 계정이 차단 될 수 있습니다.
- 1. 타인의 메일주소,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등의 개인정보 또는 해당 정보를 게재하는 경우
- 2. 확인되지 않은 내용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경우
- 3.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시키는 경우
- 4. 욕설 및 비속어의 사용 및 특정 인종, 성별, 지역 또는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용어를 게시하는 경우
- 5. 불법복제, 바이러스, 해킹 등을 조장하는 내용인 경우
- 6.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광고 또는 특정 개인(단체)의 홍보성 글인 경우
- 7. 타인의 저작물(기사, 사진 등 링크)을 무단으로 게시하여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 글
- 8. 범죄와 관련있거나 범죄를 유도하는 행위 및 관련 내용을 게시한 경우
- 9. 공인이나 특정이슈와 관련된 당사자 및 당사자의 주변인, 지인 등을 가장 또는 사칭하여 글을 게시하는 경우
- 10. 해당 기사나 게시글의 내용과 관련없는 특정 의견, 주장, 정보 등을 게시하는 경우
- 11. 동일한 제목, 내용의 글 또는 일부분만 변경해서 글을 반복 게재하는 경우
- 12. 기타 관계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
- 13. 수사기관 등의 공식적인 요청이 있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