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중간한 계절 해빙기다. 회색빛 도시생활에 인상은 찌푸려지고 칙칙한 겨울옷도 무겁고 거추장스럽다. ‘봄’을 애써 기다리지 않으련다. 봄 맞으러 가면 된다. 남녘의 따사로운 햇살은 일찌감치 봄 향연의 날개를 펼쳤다. 전남 광양의 섬진강변엔 매화꽃이 만개했다. 붉디붉은 동백꽃은 꽃봉오리를 땅에 뚝뚝 떨어뜨린다. 밭둑, 논둑에 쑥쑥 자라난 ‘애쑥’을 캐려는 아낙들이 ‘나물 칼’ 들고 나왔다. 매화꽃과 향긋한 쑥 향이 유영하는 봄 여행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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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매실 농원의 봄. |
올해도 어김없이 섬진강가에 매화꽃이 피면서 봄을 알린다. 길거리에도, 집 뒤뜰에도, 강변 옆으로도 꽃 천지다. 매화마을로 알려진 섬진강변 주변으로 하얀 꽃구름이 골짜기에 내려앉았다.
매화꽃은 ‘구제역’으로 사라진 올해 축제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방팔방 앞 다퉈 꽃망울을 터트린다. 허허로운 산야에 핀 꽃보다는 군락지를 이뤄야 제멋이다. 매화나무가 언덕 위에 군락을 이룬 청매실 농원이 아름답지만 인파로 북적대는 그곳은 금방 싫증난다.
베테랑 여행자들은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가는 강변 드라이브가 제격. 진월에서 월길리, 신구리, 신아리 등 낯선 이름의 마을들을 지나친다. 섬진강변의 낚시꾼들 사이로 얼굴을 드리운 무더기 매화꽃이 화사하다. 산 능선이 밭갈이에 여념 없는 농부 옆으로 환하게 미소 지으며 꽃을 피워낸 매화 한 그루도 사랑스럽다. 열어놓은 차창으로 진한 꽃 향이 코끝을 감싸온다. 이 봄의 햇살과 바람, 향기는 내년에는 또 다른 느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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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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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분양하는 모습. |
섬진강 물줄기가 바닷물과 조우하는 ‘망덕포구’에 멈춘다. 배알도라는 자그마한 섬 앞으로 띄엄띄엄 배들이 정박해 있고 횟집이 길게 이어진다. 섬진강 끝자락에 남은 포구라는 것 빼고는 딱히 볼거리 없는 곳에서 윤동주(1917~1945) 시인의 흔적을 찾는다. 시인의 유고를 보관했던 정병욱 가옥(근대문화유산 제341호)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1925년에 지은 양조장 가옥 한 채. 윤동주 시인과 정병욱(1922~1982) 선생의 연희전문 시절의 흑백 사진첩이 해맑은 미소로 반긴다. 열려진 마루 한켠에 ‘원고가 숨겨져 있던 곳’이라는 안내 글자가 쓰여 있다.
시인은 일본 유학을 떠나기 전, 세 부의 원고를 만들었다. 한 부는 본인이, 남은 두 부는 은사 이양하 교수와 학교 후배이자 하숙생활을 같이 했던 정병욱에게 맡겼다. 정병욱은 학병으로 징용 당하자 광양의 어머니에게 원고를 맡겼고 어머니는 일제의 수색을 피해 집 마룻바닥 밑에 원고를 숨기고 보관해왔다. 1948년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발간이 이루어진 연유다.
영화 ‘동주’(2015)를 떠올리면서 횟집에 자리를 튼다. 이 계절(1~4월)에만 맛볼 수 있는 ‘벚굴’을 먹을 참이다. 일반 굴에 비해 보통 10배 정도나 큰 벚굴은 서너 개만 먹어도 배부르다. 벚굴은 강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곳에서 자라는 굴이다. 28세의 삶을 살다간 시인은 정작 이곳을 와보지도 못했다. 시인만 생각하면 명치끝이 아프고 가슴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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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덕포구의 배와 배알도. |
광양 시내에서 구한말의 순국지사 매천 황현 선생의 생가를 찾는다. ‘매천’ 하면 구례가 떠오르지만 선생이 태어난 곳은 광양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매천헌’이라는 현판이 걸린 안채, 사랑채, 우물이 있고 특이점을 굳이 찾으라면 안채 뒤켠에 ‘매천정’이 있다는 정도다. 마루 안쪽 벽면에 선생의 영정이 걸려 있다. 선비 모습이 그대로 그려지는, 강직해 보이는 초상화다.
매천은 철종 6년(1855), 이 마을(당시 서석촌)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한양에서 조부를 모시고 이곳에 터전을 잡았다. 마을 땅 대부분이 이 집의 소유였을 정도였다지만 생가는 빈약하다. 넓지 않은 마당에 크지 않은 초가집이다. 생가 근처에 매천역사공원과 묘역도 함께 있다. ‘우국’으로 스스로의 삶을 결정했던 선생의 인생을 단 몇 글자로 논하지 않을 것이다. 단 그날, 재실에 피어난 아름다운 홍매화를 보면서 스스로를 많이 부끄러워했다.
읍내에는 장도박물관이 있다. 장도란 칼집이 있는 작은 칼(장신구)을 일컫는데 고려시대부터 사대부가의 성인이면 허리띠나 주머니에 호신용으로 매달고 다녔다. 장도는 서울을 중심으로 울산, 영주, 남원 등에서 많이 만들었으나 그중에서 광양의 장도를 최상으로 쳐주었단다. 60여 년 이상을 오직 장도 제작에만 몰두해 온 장인, 박용기(중요무형문화재 제60호, 1931~2014) 옹의 200여 점의 작품과 대를 잇는 아들 박종군 씨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판매도 하는데 꽤 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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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헌. |
이 봄에 백계산(505m) 자락의 옥룡사지(사적 제407호)의 동백 군락지(도지정 기념물 12호)는 가봐야 한다.
옥룡사 터를 에둘러 감싸 안고 있는 대규모 동백군락지(약 6942㎡)는 신라 경문왕 4년(864), 도선(827~898)국사가 옥룡사를 창건하고 풍수지리설에 따라 보호수를 심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내화수(耐火樹)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 동백군락지는 ‘아름다운 숲’으로 우수상을 받았다. 찾는 이 많지 않은 동백 숲에 폭 빠져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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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룡사지 부도밭. |
조선 후기에 화재로 폐사된 이후 긴 세월 빈 터로 남아 있는 옥룡사지는 현재 발굴 중이다. 절터 우측 언덕을 넘으면 도선국사비와 부도탑이 있다. 인근에는 동양 최대의 청동약사여래불이 있는 운암사와 중흥사가 있다. 중흥사에는 중흥산성 3층석탑(보물 112호)과 석조지장보살반가상(전남도 유형문화재 142호)을 볼 수 있다. 근처 도선마을도 재미있다. 물맛이 좋아 원님 전용 식수로 애용되었다는 사또약수터가 있다. 이 약수로 손두부를 만드는 농가가 있다. 또 고로쇠 수액을 먹을 수 있는 계절. 해마다 경칩 즈음에 백운산(동곡리)에서 고로쇠 약수제(3월 3일)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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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동주 시를 보관했던곳. 2) 고로쇠 수액마시기. |
찾아가는 길 서울 출발 → 호남고속도로 → 익산JC → 완주JC에서 순천 광양 간 고속도로 이용 → 광양IC / 청매실농원에서 여행을 시작하려면 호남고속도로 이용해 구례를 거쳐 들어오는 것이 편하다.
별미집 광양 읍내 불고기 특화 거리의 매실한우(061-762-9178), 3대광양불고기(061-762-9250) 조선옥숯불갈비(061-792-8559), 금목서(061-761-3300) 등을 꼽는다. 봉강면의 지곡산장(061-761-3335, 닭숯불구이)은 꼭 기억할 맛집이다.
고로쇠 수액은 미리 예약하면 음용이 가능하다. 백운산 자락의 어치계곡 등 고로쇠 채취하는 지역이 많다. 도선마을의 매화랑매실이랑(061-762-1330)은 ‘농가 맛집’으로 인정된 곳으로 예약(10인 이상)에 한한다. 음식 체험도 가능하다.
숙박 정보 백운산 자연휴양림(061-763-8615)은 울울창창하고 하늘 향해 쭉 뻗어 올라간 소나무 숲이 가히 장관이다. 한식 맛집인 매화랑매실이랑(061-762-1330)에도 구들방 숙소가 있다. 읍내 덕계리(순천, 보성 방면)는 모텔촌이다.
글 · 이신화 여행작가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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