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사람을 우리는 장인이라고 부른다. 분야를 특정하지 않지만 흔히 예술과 관련한 장인이 귀에 익다. 때문에 최고의 기술로 작물을 길러내는 농업인에게 장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조금 어색할 수 있겠지만, 그들 역시 장인이다. 전문 농업경영인, 일명 ‘농업마이스터’의 이야기다.
지난 11월 22일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는 33명의 농업마이스터를 선정하고 지정서를 수여했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은 농업마이스터 지정시험에서 최종 합격한 전문농업경영인들이다. 농식품부는 재배품목에 대한 전문기술 및 지식과 소양 등을 갖추고 농업경영, 기술교육, 컨설팅이 가능한 자질을 갖춘 농업인을 발굴하고 있다. 지역농업 발전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할 인재, 농업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현장실습형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서다. 농업마이스터는 향후 현장실습 교수 요원, 영농기술 자문 및 평가위원, 학습 조력자 등을 맡게 된다.
농업마이스터 문정호 대표.(사진=C영상미디어) |
농업마이스터 지정시험은 3단계로 진행된다. 1차 필기시험은 생산·경영·교육 등 세 영역 및 다섯 과목에서 80문항이 출제된다.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면 전문성·장인정신·문제 인식 및 해결·교수 능력·의사소통 역량을 평가받는다. 각 항목에서 ‘보통’ 이상의 성적을 거둬야 3차 현장 심사가 이뤄진다. 농장경영관리·환경관리·출하 및 판매관리·품위 및 자질·생산재배 기술 등에 대한 평가다.
올해 총 응시자는 778명. 최종 합격률은 4.2%로 1회(10.0%)와 2회(5.2%)보다 낮은 수준이다. 품위 및 자질, 농장경영관리 등에 대한 심사가 강화된 결과라고 농식품부 측은 풀이했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50대 응시자 309명 중 13명이 농업마이스터로 선정돼 가장 높은 합격률을 보였다.
특기할 만한 점은 청년농업인의 등장이다. 30대 지원자 106명 가운데 3명이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환경제어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한 온습도 관리로 안정적인 토마토 생산량을 확보한 문정호 대표가 그중 한 명이다. 문 대표는 농업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경남 창녕군에서 토마토를 재배하는 2대 승계농이다. 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지만 남들과 다른 도전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눈을 돌린 곳이 농업이었다. 토마토를 재배한 지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겼다.
눈에 띄는 청년농업인 약진
토마토는 서늘한 날씨에서 가장 잘 자란다. 햇빛 투과량도 재배환경의 주요 요소이기 때문에 비닐온실보다 유리온실이 적합하다. 온습도 관리 또한 빠질 수 없는 재배 요건이다. 문 대표가 환경제어 프로그램을 토마토 재배 과정에 적용한 이유다.
“작물을 기를 때 중요한 건 환경의 연속성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환경제어 프로그램이 그려내는 온습도 그래프로 그 연속성을 확인할 수 있어요. 어떤 문제가 발생한 시점만을 콕 집어 개선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안정적인 재배환경을 마련할 수 있게 됩니다. 다만 프로그램은 일반적인 재배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농장관리자의 설정 방식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어요.”
문 대표는 여타 농업인들과 마찬가지로 보다 적합한 재배환경을 마련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왔다. 농업마이스터 제도를 알게 되면서 그의 활동은 조금 달라졌다. 공식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 이론 학습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필기시험 대비 특강을 누구보다 열심히 수강했고 다른 수험생들과 틈틈이 정보를 교류했다. 덕분에 학업을 시작하면 본업에 소홀해지지 않을까 했던 우려는 말끔히 사라졌다. 대외활동에서 얻어가는 지식은 농업에 또 다른 즐거움을 가져왔으니 말이다.
문정호 대표는 환경제어 프로그램으로 재배 환경을 조정, 안정적인 생산량을 확보했다.(사진=C영상미디어) |
대학 때 배운 알고리즘학도 학습 방법에 영향을 미쳤다. 알고리즘은 주어진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부터 결론까지 명확하게 떨어지는 데 반해 농업인들이 현장에서 사용하는 표현 방법은 애매했다. 대개 ‘물을 많이 줘야 한다’, ‘비료를 적게 줘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문 대표는 물을 얼마나 투입해야 하며 왜 그래야 하는 것인지, 이후 결과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등의 방식으로 학습했다. 그는 “작물 품목이 다르더라도 재배 방식 기본 틀은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전문가들과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장이자 기회였다”고 말했다. 2차·3차 평가에서 문 대표가 자신 있게 펼쳐 보인 건 함수율 관리 역량이었다. 그는 환경제어 프로그램 그래프로 정리한 물 공급 시점 및 용량, 방법 등을 정리해 발표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알고 있는 지인과 함께 함수율 관리 측정 장비를 개발했어요. 이 장비를 실제 재배환경에 사용했고 어떠한 효과와 결과를 얻게 됐는지 보여드렸습니다. 차후 보완책에 대한 질문을 받기도 했고요. 다방면에 걸쳐 종합적인 역량을 평가받았어요.”
문 대표는 농업마이스터가 됐다고 해서 당장 지도자의 역할을 맡고 싶지는 않다. 지역 농업 정보 교류에 힘을 보태고 싶다는 목표는 분명하지만 아직 젊은 나이에 따른 부정적인 시선이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우선 본업인 토마토 재배에 충실하면서 주변에서 도움을 요청할 때 적극적으로 응답할 계획이다.
버섯 품목의 조해석 대표도 젊은 농업마이스터다. 조 대표는 세계 최초로 병 재배 자동화시스템을 도입, 시간당 6000병을 생산함으로써 노동력과 원가를 절감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번 농업마이스터 중 유일한 여성인 김영남 대표의 흑염소 비육 방식도 주목받았다. 비타민 A를 급여해 지방 축적을 최소화하고 거세 시기 조절로 웅취(불쾌한 냄새 또는 맛) 문제를 해결했다. 또 건초 종류를 다르게 급여하는 방법으로 생후 1년 만에 출하해 평균 생체중 60kg, 지육률 65% 이상을 기록하는 성과를 거뒀다.
[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