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를 입힌 가전제품, 전통 자수를 덧댄 블루투스 스피커 등 예술을 입은 각양각색의 제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산업제품과 예술을 융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프로젝트, 일명 ‘아트콜라보레이션(art collaboration)’의 향연이다.
아트콜라보 작품으로 변신한 롤스로이스가 전시장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사진=C영상미디어) |
지난 12월 5~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2017 글로벌 아트콜라보 엑스포’가 열렸다. 아트콜라보는 문화 마케팅 전략 중 하나로 제품에 예술 디자인을 입히는 방식이다. 이 단어가 익숙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국내 한 제약사는 감기약 포장지 디자인에 네덜란드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의 색채를 적용했다. 소비자에게 보다 친숙한 느낌을 전달함으로써 기업과 제품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다만 국내에서 아트콜라보는 대기업 중심으로 추진돼왔다. 중소·중견기업과 예술가의 네트워크 부재가 그 원인으로 꼽힌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이 같은 점을 고려해 아트콜라보 대규모 전시회를 마련했다. 아트콜라보 제품의 수출 확대와 아티스트 일자리 창출,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목표다. 산업부 관계자는 “아트콜라보 엑스포는 우리 중소기업이 대기업, 선진국처럼 프리미엄 마케팅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이라며 “소비재의 프리미엄화, 수출 확대를 위해 예술가와 기업의 협업 생태계 조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수백 개의 국내 기업과 해외 바이어 참석에도 단연 눈에 띈 것은 예술인 참가자 100명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5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1년 동안 예술인들이 자신의 작품을 발표한 횟수는 3~5회가 26.2%로 가장 많았다. 21.0%를 차지한 1~2회가 뒤를 이었고, 6~10회(17.9%), 0회(15.0%), 16회 이상(13.9%), 11~15회(4.4%) 순서로 나타났다. 예술인들의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왼쪽)한 아티스트가 대형 보드카 병에 라이브 페인팅 작업을 하고 있다. (오른쪽)관람객이 디자이너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
예술인 작품 소개의 장이자 기회
그래서인지 예술인 참가자들은 이번 전시회에서 작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물론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우리나라 전통 자수와 생활소품을 접목해온 이경희 작가는 “(아트콜라보 엑스포는)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전통 자수를 다양한 소품에 활용할 수 있음을 알리는 새로운 장이면서 작가의 활동 폭을 넓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그는 터치 조명과 블루투스 스피커 외관을 자수로 장식했다. 전통 문양과 ICT 기기와의 조합이 다소 이질적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외국인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품목을 선택한 그만의 전략이다.
또 다른 자수 콜라보 제품을 선보인 강지혜 디자이너는 “다양한 분야에서 협업을 꾸준히 해오면서도 더 새로운 콜라보 제품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이번 전시회가 그 통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 디자이너는 도자 공방, 슈즈 브랜드 등과 힘을 모아 자수를 입힌 신발, 티셔츠, 접시 등을 전시했다.
(왼쪽)이자연 디자이너의 그림을 접목한 스카프. (오른쪽)전통자수로 장식된 조명기기. |
아트콜라보의 형태는 꽤나 다양했다. 이자연 디자이너는 직접 그린 그림을 스카프에 펼쳐 보였다. 이 디자이너의 그림은 ‘자유로움’을 담고 있다.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의 심리를 날개를 펼쳐 날아다니는 새들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뜻을 담은 작품을 정적인 분위기의 갤러리에만 두고 싶지 않았다. 실생활에서 자신의 그림 전체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스카프라고 판단했다. 그는 스카프 외에도 지갑, 가방, 와인 패키지 등에 자신의 스토리가 있는 그림을 입히고 있다. 그는 “국내외 바이어를 대상으로 작품과 콘셉트에 대해 공식적으로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며 “신진 활동가에게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강현실(AR)과 그림을 접목한 AR 컬러링북도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스트레스 해소 방법으로 유명한 컬러링북의 변신이다. 컬러링북 위에 스마트폰을 대고 애플리케이션을 작동시키면 그림이 움직이며 음성과 음악이 나오는 형태다. 어린이 교육용 제품의 경우, 그림 속 콜로세움을 비추면 타요 캐릭터가 “이탈리어로 콜로세움은 거대하다는 뜻이야”라고 설명한다.
컬러링 북 위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작동시키자 음악이 흘러나온다. |
셔츠, 신발 등 다양한 제품에 자수를 입힌 아트콜라보 제품. |
아트콜라보 전시회는 작가와 작품의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일 뿐 아니라 꾸준한 창작활동을 지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일러스트·회화·공예 분야 예술인 180명이 모인 아티스트관이 조성됐는데, 이곳에서 15개 해외 기업과 65개 국내 기업, 아티스트 간의 콜라보레이션 상담이 진행됐다. 예술 경력 단절을 경험한 예술가 절반 이상이 ‘예술 활동 수입 부족’을 단절의 원인으로 꼽은 점을 감안하면, 아트콜라보가 프리랜서 예술가들의 일자리 창출의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전시 부스를 찾는 바이어의 발걸음도 현장 분위기를 더했다. 한 디자이너는 “개막한 지 두 시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미팅을 제안한 바이어가 네 팀에 달했다”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전통 자수를 생활 소품에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전시물. |
예술경영지원센터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광주디자인센터 등 유관 기관이 참가해 기존 아트콜라보의 성과와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아트콜라보 제품 수출 사례를 보면 비누 제조 중소기업 ‘향원’은 이영수 작가가 서각한 디자인에 힘입어 일본 수출이 1년간 3배가량 늘었다. 반 고흐, 몬드라인의 작품과 콜라보를 이룬 ‘코리아티엠티’의 안경케이스는 해외 유명 미술관에서 높은 수요를 자랑하며 올해 120만 달러의 수출 성과를 이뤄냈다. 생들기름 수출업체 ‘코메가’는 대표상품에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이미지를 입혀 러시아와 일본에서 20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올렸다. 생들깨기름이 생소해 판매가 쉽지 않았던 유럽인들에게 회화를 접목하는 방식으로 상품 이해도를 높인 것이 판매의 발판이 됐다는 평가다.
[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