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미술관을 찾는 부모들이 많아지고 있다. 어릴 때부터 엄마아빠와 함께 놀이터 가듯 미술관을 다니면 성인이 돼서도 마음 편히 드나들 수 있게 된다. 모든 작품을 섭렵하겠다는 조급함은 미술관에 대한 거부감을 줄 수 있으니 부담 없이 자주, 짧게 놀러 가는 것이 좋다.
미술교육의 첫 단추를 꿰고 싶다면 ‘Happy Play 신기한 놀이터’展을 주목해보자. ‘Happy Play 신기한 놀이터’(고양문화재단 주최)는 놀이와 미술을 접목해 미술관이라는 낯선 공간을 신나는 놀이의 장으로 변화시킨 기획으로 6월 24일까지 경기 고양시 아람미술관에서 전시된다.
이번 전시는 조용히 감상하는 1차원적인 관람에서 벗어나 예술작품을 직접 체험하고 재창조할 수 있는 참여형 전시로 놀이의 개념을 확장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저마다의 스타일대로 놀이를 미술작품으로 재해석한 작가들은 다양한 미적 체험을 통해 아이들의 창의력을 극대화하기를 꾀했다.
거인 나라에 가서 피자를 굽는다면 어떨까? 창작 그룹 ‘아리송’의 작품 ‘거인피자’는 아이들이 거인에게 줄 피자를 직접 만든다는 설정이다. 제한된 시간 안에 폭 5m의 도우 위에 여러 토핑을 올려 피자를 완성해야 한다. 아이들은 패브릭으로 재현된 도우 위를 열심히 뛰어다닌다.
새우, 살라미, 베이컨, 양송이, 루콜라, 앤초비 등 다양한 토핑이 마련돼 있는데, 둘러보면 재료를 구현한 작가의 상상력에 슬며시 웃음이 난다. 방울토마토는 빨간 플라스틱 바가지를 엎어서 방울토마토의 광택과 색감을 그대로 재현했고, 잘게 자른 모차렐라 치즈는 대걸레로, 파인애플은 노란 오리발로 나타냈다.
‘아리송’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것들을 크게 확대하기도 하고, 직접 느끼고 만질 수 있도록 작업했다. 일상에서 흔히 먹는 피자라는 소재를 한 손에 잡히지 않는 거대한 크기로 확장한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일상적 물건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거인피자’는 윌리엄 스타이그의 <아빠랑 함께 피자 놀이를>이라는 동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관람객은 직접 참여해 원하는 위치에 토핑 오브제를 올려놓고 피자판 위를 걸어 다니며 완성시켜야 한다. 일련의 과정은 벽면의 스크린을 통해 공개되고, 완성된 피자는 프린터로 구워서 기념으로 가져갈 수도 있다. 참여를 통해 행위를 하고, 이 과정이 카메라를 통해 관찰되고, 관찰된 모습은 프린터를 통해 재확인된다. 이러한 과정은 수없이 반복되지만, 똑같은 피자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거인피자’는 관람객이 피자 판 안에서 탐험하고 즐기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산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작품이다.
이제 미술관으로 놀러 가자!
퍼포먼스와 함께하는 ‘거인피자’는 다양한 오브제를 통해 자신의 욕구를 마음껏 분출하고 협동심(5인 1팀으로 진행)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아이들은 거인의 피자를 굽는다는 상상만으로도 극한의 재미와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다. 활동성이 큰 아이에게는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소극적인 아이에게는 내면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체험 전시의 장점이기도 하다. 체험 전시의 또 다른 장점은 아이의 성격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고집스럽거나 내성적이라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는 아이들도 미술관의 여러 체험 활동을 통해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조금씩 변화할 수 있다.
‘Happy Play 신기한 놀이터’에 왔다면 그런 걱정은 잠시 내려놓아도 좋다. 산만한 아이들도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전시물로 가득하다. 관전 포인트는 ‘누가 더 신나게 노느냐’이다. 박승원 작가는 미술관 한가운데 트램펄린을 설치해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게 만들었다. 이름하여 ‘방방 레지스탕스’. 그는 관객이 기존의 질서를 뒤엎어버리려는 레지스탕스의 일원이 되기를 바란다.
살면서 규칙과 규범, 관습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이 친 벽을 트램펄린 위에서 부숴버린다. 아이들은 트램펄린 위를 뛰며 미술관은 조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신나게 날려버린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행위나 생각들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것이다. 어른들은 미술관은 조용해야 하고, 뛰어다녀서는 안 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가는 전시장 한가운데에 트램펄린을 설치하면서 미술관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복시켜버렸다. 트램펄린에서 뛰면서 내는 소리들은 천장의 마이크를 통해 미술관 전체에 울려 퍼진다. 이곳에서는 조용한 미술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틀에 갇혀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면 ‘방방 레지스탕스’에 참여해 우리가 어렸을 적 느꼈던 즐거움과 행복함을 마음껏 누려보는 것도 좋다.
‘프로젝트그룹 옆’의 ‘플레이 아트 게임은’이란 작품은 공간 전체를 하나의 보드게임 방으로 꾸며놓았다. 벽면에는 톰 소여가 모험을 떠날 듯한 오두막과 바다 항해를 시작하려는 배가 높이 솟아올라 있다. 관람객은 시작점에서 주사위를 굴려 말을 옮겨가며 모험을 떠나면 된다. 주사위를 던지는 순간 상상의 나라로 빠져들게 된다.
공간 전체를 보드 게임방으로 만든 작품 ‘플레이 아트 게임은’. |
미술 영역에도 최첨단 기술이 접목되는 세상이다. ‘리즈닝미디어’가 만든 ‘컬러블록’은 4차 산업의 핵심으로 꼽히는 ‘딥러닝’ 기술이 구현된 작품이다. 딥러닝은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발견한 뒤 스스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답할 수 있게 만든 자가학습 기술이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와 네덜란드 과학자들은 딥러닝 기술로 AI 화가 ‘더 넥스트 렘브란트(The Next Rembrandt)’를 개발하기도 했다.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해 렘브란트의 작품 346점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렘브란트 특유의 화풍을 재현하는 것이다.
3D 스캐너를 이용해 물감이 만들어내는 요철까지 모두 데이터화해 표면 질감까지 나타낼 수 있을 정도다. 이 같은 미술과 과학기술의 콜라보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작품을 탄생시킨다. ‘Happy Play 신기한 놀이터’의 ‘컬러블록’은 신기술을 통해 아이들에게 색이 무엇인지 미디어를 통해 자연스럽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작품이다. 전시장 바닥에는 네 가지 색(빨강, 노랑, 파랑, 초록)의 다양한 모양의 블록들이 깔려 있는데, 관람객이 아무 블록이나 잡아서 움직이면 그 움직임을 따라 여러 색으로 그림이 그려진다. 이때 구현되는 색상은 어두운 빨간색도 있고, 밝은 분홍색도 있다.
빨강이라고 해도 비슷한 계열의 다양한 색으로 표현될 수 있음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딥러닝 기술에 의해 컴퓨터 스스로 어떠한 색이 빨강이고 노랑이고 파랑이고 초록인지, 끊임없이 학습해나가는 첨단기술이 사용됐다. 이런 과정을 통해 참여자는 색의 범위를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된다. 이처럼 놀이 형태의 미디어를 통해 아이들의 인식을 흥미롭게 변화시키고 있다.
그림자의 향연이 펼쳐지는 ‘비기자의 방’도 흥미롭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그림자 놀이를 한 기억이 있다. 어두운 방에서 손전등 하나로 토끼와 늑대를 만들며 놀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전시장으로 소환한다. 천장에 달려 있는 다양한 모양의 색색의 아크릴은 전시장의 흰 벽면을 알록달록하게 물들여놓고, 관람객이 만든 그림자는 조명이 잠시 꺼진 사이 형광물질에 의해 빛을 뿜어낸다. 조명이 다시 들어오면 실루엣은 사라지고 형형색색의 그림자들만 전시장 안을 가득 메우게 되는데, 마치 꿈속을 유영하는 듯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어린 관람객들은 미술 작품을 볼 때 스스로 사고하고 상상하고 직접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작품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말해보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 이런 과정을 계속 거치다 보면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고르고, 자신이 선택한 작품에 대해 자신만의 상상력을 보태가며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딥러닝 기술이 적용된 작품 ‘컬러블록’. |
관람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My small garden’. 전시장에 마련된 재료로 나만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사진=C영상미디어) |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미술 작품
미완의 작품은 변화의 여지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그런 이유에서 박혜린 작가의 ‘My small garden’은 매력적이다. 관람객의 참여로 작품이 점차 완성되어가기 때문이다. ‘My small garden’에는 다양한 크기의 책상과 전시대가 전시장에 즐비하다.
그 주변에는 아이들이 직접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재료들이 깔려 있다. 테이블 위에는 작가가 직접 만든 인형과 나무, 돌 같은 오브제들이 약간의 힌트처럼 올려져 있다. 아이들은 오브제들을 보고 자신만의 작품을 책상에서 만든다. 만들어진 작품은 테이블이나 전시대에 올려놓기도 하고, 일부는 벽에 붙여놓기도 한다. 이렇게 작품이 점점 늘어나면서 방의 모습이 달라지는데, 이것은 아이들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또 다른 세계가 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존재의 본질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람들은 보통 어른이 되어가면서 어렸을 때의 상상력을 잃고 획일화된 사고를 하게 된다. 작가는 이 공간에서 아이들만의 상상력을 발견하고 이를 그들만의 작품으로 만들도록 유도하고 있다. 정적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가장 역동적인 작품이다. 모두 함께 만드는 작품은 모험과도 닮아 있다.
조용하고 정적인 분위기의 미술관은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는 장소인지 모른다. 하지만 처음부터 진지하고 조용한 분위기에 압도되면 미술관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릴 수 있다. ‘Happy Play 신기한 놀이터’는 가장 즐거운 놀이터를 약속한다.
미술 작품도 호기심을 자극하고 탐색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느낄 수 있다. 외국에서는 아이들이 작품 앞에 눕거나 앉아서 미술품을 감상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아이들은 본능적인 감각으로 작품과 소통할 줄 알기 때문이다.
미술관을 처음 접할 때는 단순한 현장 체험의 장소로 여기지 말고 상상력과 창의력이 샘솟는 놀이터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어려서부터 미술관 체험을 많이 한 아이는 사물을 대하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남다른 발상과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싶다면 아이와 함께 미술관으로 달려가자.
[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