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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한국어 랩을 아시나요?

[한국힙합의 결정적 노래들①] 홍서범의 ‘김삿갓’(1989년)

2018.10.05 김봉현 힙합저널리스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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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한 적이 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배철수 씨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한국힙합의 시초가 정말 홍서범 맞습니까?”

설마 정말로 그렇겠냐는 표정이었다. 나는 대답했다. “맞습니다. 전 홍서범 씨의 ‘김삿갓’이 최초의 한국어 랩곡이라고 봐요” 배철수 씨가 흠칫하며 말했다. “그래요? 홍서범이 맨날 자기가 한국힙합의 아버지라고 하고 다녀서요. (녹음실 창문을 가리키며) 저기 지금도 지나가네요. 아, 이거 참…”

홍서범은 1958년 12월 7일, 서울에서 2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탤런트 강남길과 중학교 동창이라고 한다. 쓸데없는 것 같아도 일단 외워두자. 처음에 그는 록 밴드 ‘옥슨 80’ 멤버로 활동했다. 그러다 1989년 <나는 당신께 사랑을 원하지 않았어요>라는 앨범을 발표하며 솔로로 데뷔한다. 바로 이 앨범에 ‘김삿갓’이 수록되어 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놀라운 사실이 있다. ‘김삿갓’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보다 3년이나 빨랐다.

2008년 MKMF(Mnet Km Music Festival)에서 시상자로 나선 가수 길(왼쪽)과 홍서범.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08년 MKMF(Mnet Km Music Festival)에서 시상자로 나선 가수 길(왼쪽)과 홍서범.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랩은 리듬을 근간으로 한 발화양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랩은 멜로디와 화성이 있는 ‘보컬’과는 뚜렷하게 대비된다. 몇 년 전, 런던의 한 연구팀은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으로 ‘랩의 등장’을 꼽았다. 랩의 등장으로 화음 없는 팝송의 탄생이 가능해졌으므로 랩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혁명이라는 뜻이었다.

‘김삿갓’은 랩의 이런 특징, 즉 리듬을 근간으로 한 발화양식에 기초한 노래다. 멜로디가 첨가된 방송용 버전이 따로 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앨범 버전에는 멜로디가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다. 홍서범은 오직 리듬에 의지해서 가사를 내뱉고 있고 우리는 이런 것을 가리켜 보통 ‘랩 Rap’이라고 부른다.

물론 홍서범의 랩이 훌륭했다는 말은 아니다. 당연하다. 당시는 미국 랩도 세련된 체계가 자리 잡지 못한 1980년대 후반이었다. 또 ‘김삿갓’에는 랩의 필수요소인 ‘라임’도 별로 담겨있지 않다. 굳이 찾으라면 “이름도 버리고 / 가정도 버리고 / 욕심도 버리고” 같은 부분에서 볼 수 있는 동어반복을 꼽을 수 있긴 하다. 완전히 같은 단어를 그대로 반복할 뿐인 가장 초보적인 라임 형태 말이다.

그러나 ‘김삿갓’은 가사 모양새만큼은 랩의 모양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홍서범은 글자 수를 의식적으로 일정하게 조율해놓았다. 일종의 ‘음수율’이랄까. 예를 들어 “10살 전후에 사서 삼경 독파 / 이십 세 전에 장원 급제 했네” 같은 구절을 보자. 두 구절은 글자 수가 완전히 같을뿐더러 어절의 구분 역시 똑같다. 이것은 시조에서 엿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지만 랩 가사의 기본이기도 하다. 나와의 인터뷰에서 홍서범이 직접 했던 말 역시 중요하다.

“나이트클럽에서 일할 때 어떤 디제이가 음악을 틀었어요. 무슨 노래냐고 물어보니까 에어로스미스(Aerosmith)와 런디엠시(Run DMC)의 ‘Walk This Way’라는 거예요. 에어로스미스가 록밴드인 건 알았는데 런디엠시는 누구인 줄 몰라서 물어보니까 래퍼라는 거예요. 그 때 느낌이 왔죠. 아, 이거구나”

2014년 슈퍼볼 전야제에서 공연하는 Run DMC(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4년 슈퍼볼 전야제에서 공연하는 Run DMC. (사진=저작권자(c) AP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홍서범의 말은 랩과 닮아있는 ‘김삿갓’의 모양새가 우연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한다. 당시 홍서범은 미국힙합의 대표주자 런디엠시의 음악을 보고 듣고 재현하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완성도는 미진했다. 그러나 방향은 맞았다. 홍서범은 분명 랩을 바라보고 있었다.

게다가 랩 뿐 아니라 1980년대 올드스쿨 힙합 사운드도 ‘김삿갓’에 담아냈다. 이렇듯 그가 당시 유행하던 미국힙합을 ‘인지’한 후 ‘의도’를 가지고 ‘김삿갓’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그의 이름을 한국힙합 역사에 올리겠다는 나의 결정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어쩌면 누군가는 나와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 누군가는 ‘김삿갓’을 최초의 한국어 랩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김수철의 ‘무엇이 변했나’(1988년)는 랩이라고 부르기엔 퍼포먼스가 조악하고 분량도 너무 짧다. 그렇다고 김완선의 ‘그건 너’(1988년) 초반부를 랩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들어보면 안다).

한편 나미와 붐붐의 ‘인디언 인형처럼’의 ‘랩버전’은 랩 뿐 아니라 변칙적인 리믹스와 스크래치까지도 담아낸 수작이지만 아쉽게도 ‘김삿갓’보다 1년이 늦었다. ‘최초’가 아니면 의미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김삿갓’에 부여된 최초라는 타이틀은 이래저래 합당해 보인다.

‘김삿갓’이 1989년에 튼 한국힙합의 물꼬는 1990년대로 들어서며 현진영, 듀스,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난 알아요’를 발표했을 때, 홍서범은 조갑경과 결혼하며 한국 최초의 종합예술인으로 거듭날 준비를 하게 된다.

훗날 최초의 한국어 랩곡을 부른 인물이 되어있을 줄은 꿈에도 모른 채.

한복 사랑 나눔 패션쇼에서 모델로 선 홍서범 조갑경 부부.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한복 사랑 나눔 패션쇼에서 모델로 선 홍서범 조갑경 부부.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김봉현

◆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작가

대중음악, 특히 힙합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영화제를 만들고 가끔 방송에 나간다. 시인 및 래퍼,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 ‘포에틱저스티스’로도 활동하고 있다. 랩은 하지 않는다. 주요 저서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등이 있고, 역서로는 <힙합의 시학>,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스트리트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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