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 |
JSA의 설정과 변화과정
JSA는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직후, 정전협정의 감독기구인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 및 본부시설들을 위치시키기 위해 설정된 곳이다. JSA는 글자 그대로 유엔군측과 공산군측이 공동으로 경비하는 구역이었다. 따라서 비무장지대 안에 위치하고 있지만 군사분계선 표식도 없었다. 즉, 직경 약1km 타원형의 공동경비구역 북측지역에 유엔군 초소가, 남측지역에 공산군 초소가 위치했고, 자유롭게 남과 북을 오갈 수 있었다. 아울러 경비인원의 무장은 단발소총으로 제한을 두었다.
그러나 1976년 8월18일 북한군이 미군장교 두 명을 살해하는 도끼만행사건이 발생한 직후, JSA내 군사분계선 표식이 만들어지고, 명칭은 JSA라 불리면서도 남측지역은 유엔군이 북측지역은 공산군이 경비하는 형태, 즉, 각자 경비구역으로 바뀐 것이었다.
현재 공동경비구역(JSA)의 모습. 우리 군과 북측 경비병들이 군사분계선 턱 하나를 두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
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갈수도 없었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경비초소에는 중화기들이 반입됐다. 비무장지대 내 군사분계선을 마주보고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양측의 병력들이 긴장된 가운데 대치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지난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JSA내 군사분계선에서 만났다. 문 대통령이 이 선을 잠시나마 넘나들었던 모습이 바로 JSA의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JSA 비무장화’ 의미는
첫째, 군사합의가 실제 이행되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0월 1일부터 20일 안에 JSA내 지뢰가 제거되고, 남북한과 유엔사 3자 협의기구가 구성돼 회의가 열려 지뢰제거 상황을 검증하고, 향후 운영방안 등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였다.
둘째, 당사자들이 정전협정을 존중하고 준수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즉, 정전협정에서 합의한 대로 JSA를 공동경비구역으로 만드는 조치라는 점이다. 합의대로라면 군사분계선이 없어지고, 남측에 북한군 초소가, 북측에 유엔군 초소가 설치되며 왕래도 자유롭게 된다.
셋째, 가장 첨예하게 대치하고 긴장이 고조됐던 JSA를 평화의 공간으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쌍방 초소인원과 화력장비를 전부 철수하고 비무장인원으로 근무하게 된다. 이로써 유사시 충돌이나 확전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어떤 변화들이 예상되는가?
우선, JSA 입구에서 우리 군인들과 북한 군인들이 나란히 경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기존의 초소들을 철수하고, 남측에서 JSA로 들어가는 입구에 북측 초소를 설치하게 된다. 그리고 ‘72시간 다리’에서 북측 지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도 유엔군초소를 설치토록 돼 있다.
아울러 상대측 지역에 대한 자유로운 참관이 허용된다. 지금까지는 JSA 안에서 북한 땅을 밟아볼 수 있는 곳은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T-2) 내에서만 가능했다. 회의실 탁자 중간선이 바로 군사분계선이었기에, 회의실 안에서는 남북한을 오갈 수 있었다.
군사합의에는 관광객들의 자유왕래를 허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이나 관광객들이 군사분계선 북측지역에 있는 판문각이나 통일각도 자유롭게 갈 수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북측 인원들도 남측의 자유의 집이나 평화의 집도 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북측 지역 방문 시 북한군이 안내하고 설명하는 장면도 볼 수 있을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 부디 군사합의서 내용들이 잘 이행돼 평화로운 JSA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