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차분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셔야 할 시기에
나라 일로 국민 여러분을 걱정스럽게 해드려
마음이 무겁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전에 없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저는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로서
우리가 이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동안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일상에 한치 흔들림이 없도록
안정된 국정운영에 전력을 다하는 것을
제 마지막 소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
나라 전체의 미래를 위해
모든 사안을 판단할 방침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국민 여러분께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에 대하여
제가 가진 고민을 가감없이 말씀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이보다 큰 일이 닥쳐도 우리는 늘,
넘어서고 또 넘어섰습니다.
그것을 가능케 한 힘 중 하나가
바로 정치의 힘이었습니다.
이념 대립으로 많은 비극을 겪은 우리나라지만,
그래도 언제나 우리 곁에는
진영의 유불리를 넘어
나라 전체를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계셨습니다.
정치로 풀어야 할 일을 정치로 풀어주시는
큰 어른들이 계셨기에
우리가 이만큼 왔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많은 갈등을 겪고 있지만,
우원식 국회의장님,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지명자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님을 포함한 여야 정치인들이
반드시 그런 리더십을 보여주실 것이고,
또한 보여주셔야 한다고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불행한 일이지만 우리나라는 벌써 세번째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나라가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안정적인 국정운영에 전념하되,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입니다.
만약 불가피하게 이러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면,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서
여야 합의가 먼저 이루어지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 헌정사에서
단 한 번도 깨진 적 없는 관례라고 생각합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님 역시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에 영향을 주는 임명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헌재 결정 전에는 헌법재판관 임명을 하지 않았고
헌재 결정이 나온 뒤 임명하셨습니다.
이처럼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을 행사하기에 앞서
여야가 합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법리 해석이 엇갈리고 분열과 갈등이 극심하지만
시간을 들여 사법적 판단을 기다릴만한 여유가 없을 때,
국민의 대표인 여야의 합의야말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둑이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이번 일로 인하여
우리 국민들이 느끼고 계신 불안과 분노를
절절하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사태의 조속한 수습과 안정된 국정운영을 위하여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중대한 사안 중 하나가
헌법재판소 재판관 충원이라는데
이견을 가질 분은 거의 안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데
그냥 임명하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이 문제는 안타깝게도
그렇게 쉽게 답을 정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고민입니다.
헌법재판관은 헌법에 명시된 헌법기관으로서
그 역할과 책임이 막중합니다.
우리 역사를 돌아볼 때
여야 합의 없이 임명된 헌법재판관은
단 한 분도 안 계셨다는 점이
그 자리의 무게를 방증합니다.
특히나 지금은
국가의 운명과 역사를 결정하는 공정한 재판이
헌법재판관에 달려있는 시점입니다.
헌법재판소의 구성과 헌법재판관 임명에 대하여
합리적인 국민이 이견 없이 수용할 수 있는
현명한 해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헌법재판관 충원에 대하여
여야는 불과 한달전까지
지금과 다른 입장을 취하였고,
이 순간에도 정반대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은,
여야 합의 없이
헌법기관 임명이라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을 행사하라고
대통령 권한대행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가는 자칫,
불가피한 비상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한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고유권한 행사를 자제하고
안정된 국정운영에만 전념하라는
우리 헌정질서의 또다른 기본 원칙마저
훼손될 우려가 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로서,
저는 오로지 국민을 바라보며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가의 미래를 위해 판단할 뿐
개인의 거취나 영욕은
하등 중요하지 않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야에 다시 한번 간곡하게 말씀드립니다.
미국은 건국 이후 200여년 동안
탄핵소추 위기에 몰린 대통령은 다섯 분이고
우리나라는 70여년간 벌써 세번째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에 대하여
여야 정치인은 물론
좌우 언론인, 헌법학자, 정치학자 여러분의 말씀을
폭넓게 들으며 깊이 숙고해왔습니다.
제가 무엇보다 무겁게 느끼는 의문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여야의 정치적 합의 없는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것이
과연 우리 헌정질서에 부합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고민에 제대로 답을 찾지 않고
결론을 내라는 말씀에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제대로 답을 찾는 것이
반드시 오랜 시간을 요하는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뒤돌아볼 때,
우리 뒤에는
우리보다 힘든 상황에서
우리보다 어려운 결단과 희생을 해오신
선배 세대들이 계셨습니다.
정치 분야가 특히 그렇습니다.
젊은 경제관료 시절 저는
중동과 독일에서 땀흘리는 우리 국민,
열악한 국내에서 수출 신화를 쓰는 우리 기업,
민주화에 노력하는 시민과 지식인,
그리고 그들 모두를 위해 여야 양편에서
오로지 나라를 위해
때로는 고집하고 때로는 타협하는
정계의 거인들을 바라보면서
대한민국의 힘을 느꼈고,
저 자신도 몸을 던져 일하리라 각오를 다졌습니다.
존경하는 우원식 국회의장님,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지명자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님을 포함한 여야 정치인들이
지금 여러분을 보고 있는 다음 세대 한국인들을 위해
앞선 세대 정치인들을 뛰어넘는
슬기와 용기를 보여주시길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로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여야가 합의하여 안을 제출하실 때까지
저는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습니다.
여야가 합의하여 안을 제출하시면
즉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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