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퀴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도로의 턱 앞에 멈춰선 휠체어. 바퀴가 턱에 닿는 순간 원형의 두 바퀴가 점토처럼 천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턱을 감싸안듯 바퀴가 안으로 움푹 찌그러져 들어가더니 턱을 넘어섰다. 힘으로 밀어붙인 것도 아니었다. 장애물의 모양에 맞춰 바퀴가 스스로 형태를 바꾸며 길을 만들었다. 턱을 넘은 바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완벽한 원형으로 돌아왔다.
이 바퀴의 이름은 '모핑 휠(Morphing Wheel·형태를 바꿀 수 있는 바퀴). 계단이나 턱, 울퉁불퉁한 노면 때문에 이동을 포기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기술이다. 세계 최초의 이 변형 바퀴는 박동일 한국기계연구원 첨단로봇연구센터장이 이끈 연구진이 개발했다. 박 센터장은 "우리가 만든 것은 새로운 바퀴가 아니라 사람들의 이동권"이라고 말했다. 로봇을 연구하던 공학자는 왜 '계단을 오르는 바퀴'를 만들게 됐을까. 지난 6월 그를 만났다.
첨단로봇연구센터에서 어떻게 바퀴를 만들게 됐나.
원래 내 연구 분야는 로봇 팔을 이용한 정밀 조작 기술이었다. 물체를 정확하게 다루고 작업을 수행하는 머니퓰레이션(manipulation) 기술 개발이 주요 분야였다. 그러다 장애인을 위한 이동성(Mobility) 기술 개발 과제를 받으면서 연구 방향을 확장했다.
휠체어 장애인에게 가장 큰 불편은 협소한 공간이나 계단, 턱 같은 장애물이 있는 환경에서의 이동 문제였다. 비장애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10㎝의 턱이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포기하게 만드는 장벽이었다. 당시에도 계단을 오를 수 있는 로보틱 휠체어가 있었지만 대부분 큰 바퀴나 트랙(궤도) 구조를 적용해 크고 무겁고 소음이 크다는 한계가 있었다. '휠체어를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바퀴가 스스로 환경에 적응하면 어떨까.' 그 생각이 모핑 휠의 출발이었다.
그래서 두 바퀴 구조를 선택한 건가.
기동성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네 바퀴 전동휠체어는 안정적이지만 크기가 크고 회전반경이 넓어 협소한 실내 공간에서는 움직임이 제한된다. 반면 두 바퀴는 제자리 회전이 가능해 좁은 공간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문제는 장애물이다. 일반 두 바퀴로는 계단이나 턱을 넘을 수 없다. 결국 바퀴 자체가 변형되는 구조를 생각해냈다.
개발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평소에는 단단한 바퀴, 장애물을 만나면 유연하게 형태를 바꾸는 바퀴. 말은 쉬운데 실제로 구현하기가 어려웠다. 평지에서는 일반 타이어처럼 단단해야 하고 장애물을 만나면 즉시 형태를 바꾸는 바퀴를 구현하기 위해 2~3년 동안 수없이 실패했다. 기초연구와 개념 검증을 반복한 끝에 2022년부터 변형 바퀴 기술 개발이 본격화됐고 2023년 후반부터 연구 성과가 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설계 개선과 실험을 거친 끝에 2024년 기술 개발을 마무리했다.
처음 시연에 성공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
가장 먼저 안도감이 들었다. 아이디어를 처음 구상했을 때만 해도 구현이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퀴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의 시행착오가 모두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딱한 바퀴가 어떻게 점토처럼 모양을 바꿀 수 있나.
모핑 휠의 핵심은 '강성과 유연성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구조'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고무바퀴처럼 보이지만 내부에는 여러 개의 작은 링크(관절 구조)가 촘촘히 연결돼 있다. 이 링크들은 특수 와이어인 핀(pin·경첩 역할을 하는 연결부)으로 서로 연결돼 있는데 와이어를 팽팽하게 당기면 링크들이 서로 맞물리면서 하나의 단단한 바퀴처럼 움직인다.
반대로 장력을 풀어주면 링크 사이에 여유가 생기면서 바퀴가 외부 형태에 맞춰 자연스럽게 변형된다. 평지에서는 일반 바퀴처럼 굴러가고 계단이나 턱을 만나면 장력이 풀리면서 형태를 바꿔 장애물을 감싸듯 올라가는 원리다. 일반 바퀴가 한 점으로 충격을 받는다면 모핑 휠은 접촉 면적을 넓혀 하중을 분산하기 때문에 훨씬 안정적으로 이동할 수 있다.
겉은 고무인데 내부는 정교한 기계장치인 셈이다.
맞다. 바깥은 일반 타이어처럼 강화고무로 감싸고 안에는 변형 구조와 장력 조절 장치가 들어 있다. 그 사이에는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재도 적용했다. 겉모습만 보면 평범한 바퀴지만 내부에는 여러 기술이 함께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용자가 특별한 조작을 하지 않아도 상황에 따라 바퀴가 알아서 가장 적합한 상태로 바뀌도록 설계했다.

반복해서 형태를 바꾸면 쉽게 망가지지 않나.
내구성은 연구 초기부터 가장 중요하게 검증한 부분이었다. 와이어는 계속 당겼다 풀기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피로도가 높다. 그래서 재질과 구조를 바꿔가며 수많은 반복 시험을 진행했다. 실험실에서는 장시간 연속 주행과 반복 변형 시험을 통해 충분한 내구성을 확인했다. 물론 실제 환경은 다르다. 돌이나 자갈, 파편처럼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많기 때문에 앞으로도 야외 실증을 계속해야 한다. 유지보수도 고려해 와이어는 손상되면 쉽게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무엇보다 안전성이 가장 중요하겠다.
많은 사람이 모핑 휠 기술 자체에 주목하지만 연구진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안전성이다. 아무리 뛰어난 장애물 극복 성능을 갖추더라도 이용자가 불안감을 느끼거나 넘어질 위험이 있다면 의미가 없다. 현재 기술로 계단 주행도 가능하지만 다양한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안전성을 보장하는 수준까지 신뢰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두 바퀴 휠체어는 균형 잡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제어 기술이 중요하다. 휠체어에 장착된 여러 센서가 기울기와 노면 상태, 하중 변화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제어시스템이 최적의 자세를 계산한다. 인공지능(AI)이나 딥러닝을 적용한 방식은 아니지만 다양한 센서 데이터와 수학적 연산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주행을 구현한 상태다. 안전장치도 갖췄다. 전원이 꺼지거나 탑승·하차할 때는 보조바퀴가 자동으로 내려와 휠체어를 지탱하게 돼 있다. 계단을 오르는 도중 갑작스럽게 전원이 차단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완벽하게 대비할 수 있도록 연구를 진행 중이다.
모핑 휠은 휠체어 외에도 활용할 수 있는 분야가 많을 것 같다.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다. 산업 현장용 이동로봇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대표적인 예가 조선소다. 조선소는 용접 자재와 구조물, 각종 돌출물이 많아 일반적인 이동로봇이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운 환경이다. 모핑 휠 기술을 적용하면 장애물이 있어도 이동이 가능해 설비 점검이나 물류 운반 같은 작업을 더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건설 현장과 플랜트, 물류창고도 마찬가지다. 바닥이 고르지 않거나 턱이 많은 곳에서 기존 바퀴보다 훨씬 유리하다. 재난 현장에 투입되는 로봇에도 활용 가능성이 크다. 이동성이 좋아질수록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까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모핑 휠은 휠체어용 바퀴가 아니라 다양한 이동기기의 한계를 바꾸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최초 기술을 개발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이번 연구는 바퀴 하나만 만든 것이 아니다. 모터와 구동기, 제어시스템, 배터리까지 하나의 이동 플랫폼을 구축한 것이다. 기존 상용 부품만으로는 원하는 성능을 구현하기 어려워 우리 연구진이 필요한 기술을 대부분 직접 개발해야 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그만큼 우리 기술로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꼭 이루고 싶은 목표는.
모핑 휠이 이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갈 수 없는 곳'을 '갈 수 있는 곳'으로 바꾸는 기술이 됐으면 좋겠다.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지만 안전성과 완성도를 더욱 높여 누구나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이동수단으로 상용화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가장 큰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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