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마지막 황녀, 시대 속에 희생된 비운의 여인, 조선과 일본 양국에서 외면당하고 잊힌 이름. 그리고 조선의 제26대 왕이고 동시에 대한제국 첫 번째 황제인 고종의 고명딸.
덕혜옹주를 설명하는 수많은 수식어다. 언뜻 보기에도 가슴 아픈 수식어들은 덕혜옹주의 삶이 어땠는지를 단편적으로 짐작하게 해준다. 조선시대 옹주로 태어나 가장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 했지만, 그 누구보다 굴곡진 삶을 살았던 덕혜옹주의 유품이 한국 땅을 밟았다.
2015년은 광복70주년임과 동시에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두 나라의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은 덕혜옹주 유품 7점을 국립고궁받물관에 기증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1층 ‘대한제국과 황실’ 전시실에서 9월 6일까지 ‘돌아온 덕혜옹주 유품’을 특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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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고궁박물관은 ‘돌아온 덕혜옹주 유품’을 9월 6일까지 특별 공개한다. |
7점의 유품은 소 다케유키가 덕혜옹주와 이혼하면서 영친왕 부부에게 돌려보낸 유품 중 일부다. 영친왕 부부가 이를 지금 문화학원의 전신인 문화여자단기대학 학장에게 기증했고, 이후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에서 소장해왔다. 덕혜옹주의 유품은 대한제국 당대 최고 수준의 왕실 복식이다. 20세기 초 복식사 연구에 있어서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덕혜옹주의 유품에 포함된 초록색 어린이용 당의는 안감이 없는 여름용 홑당의로 덕혜옹주가 돌 기념사진에서 착용한 당의와 유사하다. 홑당의와 한 벌인 붉은색 스란치마는 일반 치마보다 폭이 넓고 길이가 길며, 문자와 문양을 금박한 스란단이 치마 아래에 덧붙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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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혜옹주가 돌 기념사진에서 입었던 것과 유사한 당의와 스란치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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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혜옹주가 어린 시절 입었던 분홍색 돌띠 저고리. |
솜을 넣어서 만든 돌띠 저고리와 함께 온 풍차바지는 기저귀를 갈기 편하게 뒤가 트여있다, 이 역시도 진분홍 돌띠 저고리와 한 벌이다. 연노랑색의 속바지는 어린이용 단속곳으로 치마 바로 아래 입는 속옷이다. 버선목을 가려서 옷맵시를 갖춰주는 역할을 한다.
어른용 반회장 저고리와 치마도 포함되어 있다. 깃과 고름 소매 끝에 다른 색 천을 대어서 만든 저고리를 반회장 저고리라고 하는데, 덕혜옹주의 반회장 저고리는 붉은색 천으로 장식돼 있다. 이와 함께 어른용 진분홍 치마도 함께 왔다. 진분홍 천은 젊은 여성이나 여자 어린이의 옷에 많이 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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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람객 오른편에 보이는 복식이 반회장 저고리와 진분홍 치마다. |
“덕혜옹주가 누구야?”라는 질문을 던지며 전시를 관람하러 온 필자의 친구는 덕혜옹주의 삶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덕혜옹주의 유품이라는 설명 없이 전시된 치마저고리들을 보면 ‘색감이 참 곱다’는 생각이 먼저 들 것이다. 분홍, 노랑, 초록, 빨강색의 천들은 세월이 무색하게 여전히 곱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빛나고 있는 색색의 옷들과 덕혜옹주의 비극적이었던 삶이 대비되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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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 색의 복식과 달리 덕혜옹주의 삶은 비극으로 가득했다. |
박물관을 찾은 나상문(21) 씨는 “이렇게 유품을 직접 보니까 오래 전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고 관람 소감을 말했다. “파란만장했던 덕혜옹주의 삶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한 관람객은 “덕혜옹주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을 울린다.”며 “너무 안타까운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가슴 아파했다. “조국에서도 잊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며 “앞으로 꼭 잊지 않고 기억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관람객도 있었다.
필자 역시 동명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당시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저 재밌어 보이는 역사소설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마음이 무거워졌고 마지막장을 넘길 무렵에는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동안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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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혜옹주의 비극적인 삶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관람객이 많았다. |
1912년 덕혜옹주는 회갑을 맞은 고종의 고명딸로 태어났다. 주권을 빼앗기고 하루하루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던 고종에게도 늦은 나이에 본 덕혜옹주의 탄생은 큰 기쁨이었다. 어머니 양씨에게는 복녁당이라는 당호를 내렸고, 수많은 종친들이 문안을 왔다.
하지만 일본은 서녀라는 이유로 그녀를 황적에 올리려하지 않았다. 덕혜옹주는 태어난 지 5년이 지나서야 황적에 오르고, 4년이 더 지난 뒤에야 ‘덕혜’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었다.
막내딸을 지키고 싶었던 고종은 덕혜옹주를 일본인과 결혼시키지 않기 위해 1919년 황실의 시종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과 약혼시킨다. 그러나 같은 해 1월 21일 고종이 갑작스럽게 승하하면서 혼인은 무산되고, 덕혜옹주는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덕혜옹주가 14살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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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유품은 덕혜옹주가 일본으로 떠날 때 가져갔던 조선 왕실의 복식이다. |
덕혜옹주가 일본으로 건너간 지 얼마 되지 않은 1926년 순종이 승하했고, 1929년에는 생모인 귀인 양씨가 사망했다. 그러나 덕혜옹주는 두 번 모두 복상하지 못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1930년 봄부터 몽유병 증세가 나타났고, 조현증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1931년 덕혜옹주의 병세가 좋아지자 일본은 대대로 쓰시마섬의 도주였던 백작 소 다케유키와 정략결혼을 시킨다. 결혼한 다음해 딸 정혜를 낳았으나 병세는 갈수록 악화되어 1946년에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1955년 남편과 이혼하고, 1년 뒤에는 결혼에 실패한 딸 정혜가 죽으면서 덕혜옹주의 삶은 비극의 끝을 향해 달려간다.
덕혜옹주가 다시 고국 땅을 밟게 된 것은 일본으로 간지 37년 만인 1962년이다. 일본에서 이혼하면서 어머니의 성을 따라 ‘양덕혜’라는 이름으로 일본 호적을 만들었는데, 한국에 온지 20년이 지난 1982년에야 한국 호적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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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우리가 고국을 끝내 잊지 않았던 덕혜옹주를 기억할 차례다. |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실어증과 지병을 앓던 덕혜옹주가 1989년 낙선재에서 세상을 떠나지 전까지, 정신이 들 때면 썼던 글이라고 한다. 덕혜옹주는 가장 굴곡진 시대에 태어나 가장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 그 자체인 것이다. 이런 덕혜옹주의 삶에 대해 알고 나서 유품을 본다면 색색의 고운 천들이 더욱 처연해 보인다.
가슴 아픈 역사라고 해서 외면해서는 안 된다. 덕혜옹주가 평생 조국을 잊지 않고 살았으니, 이젠 우리가 그녀를 기억해 줘야할 차례가 아닐까. 광복70주년이자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꼭 찾아야할 전시가 열리고 있다.
<돌아온 덕혜옹주 유품> 특별 공개
- 공개기간: 8월 25일(화) ~ 9월 6일(일) (매주 월요일 휴관)
- 관람시간: 오전9시~오후6시 (종료 한 시간 전, 입장마감)
- 장 소: 국립고궁박물관 1층 ‘대한제국과 황실’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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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처 :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포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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