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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를 기억하다!

[광복70년, 70가지 나라사랑 이야기 (40)] 국립고궁박물관 ‘돌아온 덕혜옹주 유품’ 특별 공개

2015.09.02 정책기자 이밝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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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지막 황녀, 시대 속에 희생된 비운의 여인, 조선과 일본 양국에서 외면당하고 잊힌 이름. 그리고 조선의 제26대 왕이고 동시에 대한제국 첫 번째 황제인 고종의 고명딸.

덕혜옹주를 설명하는 수많은 수식어다. 언뜻 보기에도 가슴 아픈 수식어들은 덕혜옹주의 삶이 어땠는지를 단편적으로 짐작하게 해준다. 조선시대 옹주로 태어나 가장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 했지만, 그 누구보다 굴곡진 삶을 살았던 덕혜옹주의 유품이 한국 땅을 밟았다.

2015년은 광복70주년임과 동시에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두 나라의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은 덕혜옹주 유품 7점을 국립고궁받물관에 기증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1층 ‘대한제국과 황실’ 전시실에서 9월 6일까지 ‘돌아온 덕혜옹주 유품’을 특별 공개한다.

국립고궁박물관은 덕혜옹주의 유품을 9월 6일까지 특별 공개한다.
국립고궁박물관은 ‘돌아온 덕혜옹주 유품’을 9월 6일까지 특별 공개한다.

7점의 유품은 소 다케유키가 덕혜옹주와 이혼하면서 영친왕 부부에게 돌려보낸 유품 중 일부다. 영친왕 부부가 이를 지금 문화학원의 전신인 문화여자단기대학 학장에게 기증했고, 이후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에서 소장해왔다. 덕혜옹주의 유품은 대한제국 당대 최고 수준의 왕실 복식이다. 20세기 초 복식사 연구에 있어서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덕혜옹주의 유품에 포함된 초록색 어린이용 당의는 안감이 없는 여름용 홑당의로 덕혜옹주가 돌 기념사진에서 착용한 당의와 유사하다. 홑당의와 한 벌인 붉은색 스란치마는 일반 치마보다 폭이 넓고 길이가 길며, 문자와 문양을 금박한 스란단이 치마 아래에 덧붙여져 있다.

덕혜옹주가 돌 기념사진에서 입었던 것과 유사한 당의와 스란치마
덕혜옹주가 돌 기념사진에서 입었던 것과 유사한 당의와 스란치마.
 
 
덕혜옹주가 어린 시절 입었던 분홍색 돌띠 저고리
덕혜옹주가 어린 시절 입었던 분홍색 돌띠 저고리.
 
솜을 넣어서 만든 돌띠 저고리와 함께 온 풍차바지는 기저귀를 갈기 편하게 뒤가 트여있다, 이 역시도 진분홍 돌띠 저고리와 한 벌이다. 연노랑색의 속바지는 어린이용 단속곳으로 치마 바로 아래 입는 속옷이다. 버선목을 가려서 옷맵시를 갖춰주는 역할을 한다.

어른용 반회장 저고리와 치마도 포함되어 있다. 깃과 고름 소매 끝에 다른 색 천을 대어서 만든 저고리를 반회장 저고리라고 하는데, 덕혜옹주의 반회장 저고리는 붉은색 천으로 장식돼 있다. 이와 함께 어른용 진분홍 치마도 함께 왔다. 진분홍 천은 젊은 여성이나 여자 어린이의 옷에 많이 쓰였다고 한다.

관람객 오른쪽에 있는 복식이 반회장 저고리와 진분홍 치마다.
관람객 오른편에 보이는 복식이 반회장 저고리와 진분홍 치마다.

“덕혜옹주가 누구야?”라는 질문을 던지며 전시를 관람하러 온 필자의 친구는 덕혜옹주의 삶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덕혜옹주의 유품이라는 설명 없이 전시된 치마저고리들을 보면 ‘색감이 참 곱다’는 생각이 먼저 들 것이다. 분홍, 노랑, 초록, 빨강색의 천들은 세월이 무색하게 여전히 곱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빛나고 있는 색색의 옷들과 덕혜옹주의 비극적이었던 삶이 대비되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고운 색의 복식과 달리 덕혜옹주의 삶은 비극으로 가득했다.
고운 색의 복식과 달리 덕혜옹주의 삶은 비극으로 가득했다.

박물관을 찾은 나상문(21) 씨는 “이렇게 유품을 직접 보니까 오래 전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고 관람 소감을 말했다. “파란만장했던 덕혜옹주의 삶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한 관람객은 “덕혜옹주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을 울린다.”며 “너무 안타까운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가슴 아파했다. “조국에서도 잊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며 “앞으로 꼭 잊지 않고 기억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관람객도 있었다.

필자 역시 동명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당시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저 재밌어 보이는 역사소설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마음이 무거워졌고 마지막장을 넘길 무렵에는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동안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고운 색의 복식과 달리 덕혜옹주의 삶은 비극으로 가득했다.
 
덕혜옹주가 어린 시절 입었던 돌띠 저고리와 풍차바지, 단속곳(아래)을 보고있는 관람객
덕혜옹주의 비극적인 삶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관람객이 많았다.

1912년 덕혜옹주는 회갑을 맞은 고종의 고명딸로 태어났다. 주권을 빼앗기고 하루하루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던 고종에게도 늦은 나이에 본 덕혜옹주의 탄생은 큰 기쁨이었다. 어머니 양씨에게는 복녁당이라는 당호를 내렸고, 수많은 종친들이 문안을 왔다.

하지만 일본은 서녀라는 이유로 그녀를 황적에 올리려하지 않았다. 덕혜옹주는 태어난 지 5년이 지나서야 황적에 오르고, 4년이 더 지난 뒤에야 ‘덕혜’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었다.

막내딸을 지키고 싶었던 고종은 덕혜옹주를 일본인과 결혼시키지 않기 위해 1919년 황실의 시종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과 약혼시킨다. 그러나 같은 해 1월 21일 고종이 갑작스럽게 승하하면서 혼인은 무산되고, 덕혜옹주는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덕혜옹주가 14살 때의 일이다.

이번 유품은 덕혜옹주가 일본으로 갈 때 가져갔던 조선 왕실의 복식이다.
이번 유품은 덕혜옹주가 일본으로 떠날 때 가져갔던 조선 왕실의 복식이다.

덕혜옹주가 일본으로 건너간 지 얼마 되지 않은 1926년 순종이 승하했고, 1929년에는 생모인 귀인 양씨가 사망했다. 그러나 덕혜옹주는 두 번 모두 복상하지 못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1930년 봄부터 몽유병 증세가 나타났고, 조현증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1931년 덕혜옹주의 병세가 좋아지자 일본은 대대로 쓰시마섬의 도주였던 백작 소 다케유키와 정략결혼을 시킨다. 결혼한 다음해 딸 정혜를 낳았으나 병세는 갈수록 악화되어 1946년에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1955년 남편과 이혼하고, 1년 뒤에는 결혼에 실패한 딸 정혜가 죽으면서 덕혜옹주의 삶은 비극의 끝을 향해 달려간다.

덕혜옹주가 다시 고국 땅을 밟게 된 것은 일본으로 간지 37년 만인 1962년이다. 일본에서 이혼하면서 어머니의 성을 따라 ‘양덕혜’라는 이름으로 일본 호적을 만들었는데, 한국에 온지 20년이 지난 1982년에야 한국 호적이 만들어졌다.

이제는 우리가 고국을 끝내 잊지 않았던 덕혜옹주를 기억할 차례다.
이제는 우리가 고국을 끝내 잊지 않았던 덕혜옹주를 기억할 차례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실어증과 지병을 앓던 덕혜옹주가 1989년 낙선재에서 세상을 떠나지 전까지, 정신이 들 때면 썼던 글이라고 한다. 덕혜옹주는 가장 굴곡진 시대에 태어나 가장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 그 자체인 것이다. 이런 덕혜옹주의 삶에 대해 알고 나서 유품을 본다면 색색의 고운 천들이 더욱 처연해 보인다.

가슴 아픈 역사라고 해서 외면해서는 안 된다. 덕혜옹주가 평생 조국을 잊지 않고 살았으니, 이젠 우리가 그녀를 기억해 줘야할 차례가 아닐까. 광복70주년이자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꼭 찾아야할 전시가 열리고 있다.


<돌아온 덕혜옹주 유품> 특별 공개

- 공개기간: 8월 25일(화) ~ 9월 6일(일) (매주 월요일 휴관)
- 관람시간: 오전9시~오후6시 (종료 한 시간 전, 입장마감)
- 장    소: 국립고궁박물관 1층 ‘대한제국과 황실’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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