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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당시 전투화를 보며,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다

[호국보훈의 달 특집 ③] 다부동 전적기념관, 유엔기념공원 방문기

2017.06.28 정책기자 남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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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현충일 뿐만 아니라 6.25 한국전쟁, 6.29 제2연평해전이 모두 6월입니다.

우리에게 호국보훈은 어떤 의미일까요? 어느 순간부터 호국보훈이 우리의 관심 속에서 멀어져가고 잊혀진 건 아닐까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전국 각지에 거주하고 있는 20대 정책기자 5명이 호국보훈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 보고자 합니다.

분명 우리 가까이 있지만, 마음의 거리는 멀었던, 호국보훈의 의미를 호국보훈 탐방기를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6월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당신에게 6월은 어떤 의미였는가? 대학생들에게는 기말고사로 하얗게 불태웠던 달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런 일상의 반복이었던 달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목숨을 바쳤던, 잊을 수 없는 악몽과도 같은 그날이 떠오르는 6월이기도 하다. 6.25 한국전쟁. 우리 모두에게 너무도 큰 상처를 남긴 바로 그 날이다.  

경북 칠곡, 다부동 전적기념관

19506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사흘만에 서울을 뺏기며 수세에 몰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국군은 마지막 보류인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지 않으면 더 이상 나라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아군 1만 명, 적군 17,5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무려 55일 동안이나 치열한 격전이 계속됐다. 결국 이 전투에서 국군과 유엔군은 북한군을 상대로 승전보를 울리게 되었고, 다부동에서 약 55일간 진행된 전투의 이름을 다부동 전투라고 부른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필자는 다부동 전투의 역사가 담겨있는 다부동 전적기념관’(경상북도 칠곡군)으로 향했다. 이 곳은 1981년에 전투에 참여해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설립됐는데,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보다 10여 년 일찍 지어져 경상북도의 대표적인 호국보훈 기념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필자가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찾았을 때는 호국보훈의 달이라 그런지 전쟁에 참여한 이들의 희생 정신을 기리고자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다부동 전적기념관 야외에 전시된 전쟁 당시 사용한 장갑차
다부동 전적기념관 야외에 전시된 전쟁 당시 사용했던 장갑차.

전적기념관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입구에 전시된 전차와 장갑차였다. 이는 전쟁 당시 실제로 사용됐던 것들인데 직접 눈으로 살펴보며 참혹한 전쟁의 순간을 조금이나마 그려볼 수 있었다.
          

기념관으로 향하는 길 한켠에는 구국용사 충혼비와 구국경찰 충혼비가 자리하고 있다.
기념관으로 향하는 길 한켠에는 구국용사 충혼비와 구국경찰 충혼비가 자리하고 있다.

기념관을 향해 걸어 올라가다보니 나라를 위해 적군과 싸우다 희생한 구국용사 충혼비와 구국경찰 충혼비를 만날 수 있었다.

특히 구국경찰 충혼비가 눈길을 끌었는데, 이 비석은 6.25 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친 경찰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비석이다.

6.25 전쟁이 일어난 그해 8월 북한군은 4일 만에 서울을 함락시키고 부산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었다전황이 극도로 불리해지자 정부를 비롯한 육군사령부까지 부산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경찰도 철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게 된다.

그 때 경찰 총수인 조병욱 내무장관은 대구를 내주는 것은 나라를 내주는 것과 같다.”며 대구를 반드시 사수하겠다는 굳은 결의로 70만 대구 시민을 보호하고 군과 더불어 대구 방어에 큰 몫을 다했다고 전해진다
          

전적기념관 위에 있는 적적기념비의 모습이 우리 국군의 기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전적기념관 위에 있는 전적기념비의 모습이 우리 국군의 기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구국충혼비를 뒤로하고 필자는 전적기념관 입구로 향했다. 전적기념관 위에는 다부동 전적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역동적인 그 모습이 적군을 향한 우리 국군의 기상과 닮아있었다.

전적기념관 내부에는 6.25 전쟁에 관한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져 있었다. 6.25 전쟁의 경과와 결과 등을 살펴보며 6.25 전쟁에 대해 다시 한 번 알게된 뜻깊은 기회였다. 뿐만아니라 단순히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낙동강 방어선 전투의 상세한 이야기들을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전쟁터에서 발겨된 당시 사용한 전투화
전쟁터에서 발견된 전투화.
 

다부동 전적지념관에는 다부동 전투와 관련된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다부동 전적지념관에는 다부동 전투와 관련된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특히 그 끔찍한 상황 속에서 싸워냈던 우리 국군과 유엔군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절로 가지게 되었다. 전투에 사용된 무기와 전투복 등을 살펴보며 치열했던 그 날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부산, 유엔기념공원 

유엔기념공원은 부산시민들에게는 가벼운 나들이를 할 수 있고 봄에는 겹벚꽃으로 유명해 꽃놀이를 하기에도 적당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곳은 시민들의 안식처이기 전에 한국이라는 이름 모를 나라를 위해 싸우다 세상을 떠난 우리의 영원한 전우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고 들어온 북한군으로 수세에 몰리자 유엔군 또한 자유를 위해 싸우는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총력을 다하게 된다. 결국 915일 맥아더 장군이 지휘한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은 다시 서울을 탈환하게 되고 전세가 역전된다. 

이처럼 유엔군은 6.25 전쟁의 역사에 있어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이자 그 어려움의 시기를 함께 이겨낸 전우와도 같다. 하여 대한민국은 199511월 유엔기념공원 부지를 유엔에 영구 기증하고 공원을 성지로 규정할 것을 약속하면서 그들에 대한 예우를 다하고 있다.
          

6.25 전쟁 당시 사용된 최초의 유엔기
6.25 전쟁 당시 사용된 최초의 유엔기.

부산역에서 134번 버스를 타면 손쉽게 도착할 수 있는 이 곳은 현재 국군들이 그 앞을 지키고 있다. 정문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추모관을 만날 수 있다.

유엔기념공원 관련 영상을 통해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후 바로 옆에 위치한 기념관으로 향해 6.25 전쟁 당시 사용한 첫 유엔기 등 유엔군 참전에 관련된 여러 유물들을 살펴보며 그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었다.
          

유엔기념공원에는 많은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유해가 매장되어 있다.
유엔기념공원에는 많은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유해가 매장되어 있다.

기념관 뒤쪽에는 주 묘역이 위치하고 있다. 푸른 빛깔의 잔디와 줄지어 있는 이름모를 참전용사들의 묘와 비석이 어우러져 더욱더 경건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  

유엔기념공원에는 각 나라별로 이 곳에 참든 참전용사들의 이름이 세겨진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유엔기념공원에는 각 나라별로 이 곳에 참든 참전용사들의 이름이 세겨진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특히 이 묘지들은 각 나라별로 구역이 나뉘어져 있는데, 각 나라마다 기념비를 세우고 그 뒤에 참전용사들의 이름을 새겼다. 

계속해서 길을 따라 걸어가면 유엔군 위령탑이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로 장식된 새하얀 위령탑은 다시는 6.25 전쟁과 같은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세계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필자에게 6호국보훈의 달은 굉장히 뜻깊은 달이다. 지난해 국가보훈처 훈남훈녀기자단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국가유공자와 유엔군 참전용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직도 그 아픈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국군과 유엔군 그들의 희생 덕분에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고 우리는 자유라는 숭고한 가치를 지키며 각자의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남긴 이 자유 대한민국이라는 이 유산을 더 아끼고 사랑하고 더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남가희 ghgyu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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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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