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8년
“백의민족 대망의 태극기 입장, 아 삼천리 동산, 무궁화 동산, 해외에서 민족정신 폭발의 날, 제5회 동계올림픽대회에서 유사 이래 처음 참가하야 보무당당히 행진하였다.”(출처=최용진 감독 사진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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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제5회 스위스 생모리츠동계올림픽에 참가한 대한민국 대표단의 모습.(출처=17.7.24, 행정자치부 보도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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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단 출국 직전의 모습이다. 단출한 모습과 손에 들고 있는 깃발이 눈에 띈다.(출처=17.7.24, 행정자치부 보도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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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장에서 대표단을 격려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출처=17.7.24, 행정자치부 보도자료) |
# 2017년
‘2018 평창! 하나된 열정! 하나된 대한민국! 하나된 세계!’ (G-200 기념 문재인 대통령 메시지)
‘2018 평창올림픽은 우리 모두의 올림픽입니다. 저와 함께 응원해 주세요!!’ (G-200 기념 김연아 홍보대사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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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희망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연아 홍보대사.(출처=청와대 누리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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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소치동계올림픽대회를 마치고 귀국한 선수단의 모습. 1948년 사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격세지감이다.(출처=공감포토) |
지금으로부터 69년 전, 제5회 동계올림픽 참가 선수들의 모습을 묘사한 문구와 평창동계올림픽 G-200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를 맡으며 평창의 성공을 기원하는 메시지 문구. 두 문구가 자아내는 아우라가 만감을 교차하게 한다.
1948년이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던 해. 나라는 그야말로 혼란의 시기였다. 나라의 틀과 체계가 아직 잡히지 않은 미군정 시기에 당장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와 국민들의 팍팍한 삶 속에서 우리 선수들의 국제대회 참가는 그야말로 무리한 도전, ‘계란으로 바위 치기’의 형국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었던 나라가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한·일월드컵을 개최하고 내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을 개최하게 됐다.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은 여기에 가장 부합하는 사자성어일 것이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7월 24일을 기점으로 200일(D-200)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우리들도 잘 알다시피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는 단박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관계자들, 여러 주체들의 땀과 눈물이 모아져 세 번의 도전 끝에 성공한 ‘값진 올림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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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이자 한국의 동계올림픽 위상을 드높인 김연아 전 피겨스케이팅 선수.(출처=공감포토) |
우리나라는 하계올림픽과 더불어 동계올림픽에서도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 3년 전에 열린 소치동계올림픽에선 종합 13위(금3, 은3, 동2)를 했고, 2010년에 열린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는 종합 5위(금6, 은6, 동2)라는 금자탑을 쌓기도 했다.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에서 늘 종합 10위권 내외를 석권하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 선수들의 저력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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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녀 쇼트트랙 최강자! 왼쪽부터 심석희, 최민정, 이정수 선수.(출처=공감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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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없이는 한국의 동계올림픽을 논할 수 없다. 그만큼 메달 가능성이 높은,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는 종목이다.(출처=공감포토) |
전통적으로 메달획득의 효자노릇을 하고 있는 쇼트트랙과, 이상화, 이승훈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포진해 있는 스피드스케이팅,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피겨스케이팅 메달을 획득한 김연아 선수 등 각자의 타고난 신체감각과 체계적인 훈련이 더해져 실제 대회에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야 국가의 체계적 뒷받침이 이뤄지고 있지만 70여년 전 동계올림픽에서의 우리나라 선수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잠시 70여년 전으로 떠나보도록 하자. 밑의 사진은 지금의 대한민국 동계올림픽을 있게 한 초창기 선수들이 기증한 아주 가치있는 사진들이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평창동계올림픽 200일을 맞아 광복 이후 최초로 1948년 스위스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고(故) 이효창 선수(1922~2006)와 1956년 이탈리아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조윤식 선수(1931~ )의 관련 기록물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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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제5회 스위스 생모리츠동계올림픽 경기장에 입장하는 우리나라 대표단. 무척 조촐한 모습이다.(출처=17.7.24, 행정자치부 보도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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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 국제빙상대회에서 노르웨이 황태자와 최용진 감독이 악수하는 장면이다.(출처=17.7.24, 행정자치부 보도자료) |
이효창 선수는 1948년 개최된 제5회 스위스 생모리츠동계올림픽에 참가했다. 이 올림픽은 1948년 초에 열렸으니 아직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의 시기다. 스위스 동계올림픽에는 총 28개국이 참가했고, 한국 선수단의 규모는 매우 작았다고 한다.
위 사진을 보니 지원이 빈약한 상황 속에서도 나라를 되찾은 기쁨과 우리나라 국가대표로서 사명감을 갖고 출전한 고 이효창 선수 및 참가 선수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스위스 동계올림픽에서는 이효창 선수의 배탈과 문동성 선수의 중상 등으로 메달권에는 들지 못했지만 노르웨이 단장으로부터 같은 해 오슬로에서 열리는 노르웨이 빙상선수권 대회에 초청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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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제7회 이탈리아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기 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훈련하고 있는 선수들의 모습.(출처=17.7.24, 행정자치부 보도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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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핀란드 헬싱키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일본을 경유하면서 선수단은 영친왕을 만났다. 영친왕 이은(1897~1970)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였다. 가운데가 영친왕이고 오른쪽이 조윤식 선수다.(출처=17.7.24, 행정자치부 보도자료) |
그리고 조윤식 선수가 기증한 사진들도 주옥같다. 조 선수는 1956년 이탈리아 동계올림픽에 참가 후 경희대/동국대/단국대 빙상부 감독을 맡으며 후학들을 양성했고 쇼트트랙 빙상 선수단 창설에 큰 기여를 했다.
조 선수가 참가한 1956년 올림픽 전후상황도 참으로 지난했다. 1956년은 6.25전쟁이 정전협정을 맺은 지 채 3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다. 게다가 1952년 올림픽은 6.25전쟁으로 참가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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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핀란드 헬싱키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때, 동양인(조윤식 선수)이 4발비행기를 처음 탔다며 기장이 위의 증서를 발급해줬다고 한다.(출처=17.7.24, 행정자치부 보도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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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에서 육군 빙상부 소속 선수들이 훈련하면서 찍은 사진. 가장 왼쪽이 조윤식 선수다.(출처=17.7.24, 행정자치부 보도자료) |
위의 조 선수 사진들을 보니 필자는 당시 선수들의 모습과 동계올림픽 풍경을 엿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오히려 흑백사진, 낮은 해상도의 사진이 지금의 사진보다 더 인상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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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이탈리아 동계올림픽에서 사용한 조윤식 선수의 스케이트화. 신발 위쪽에 ‘조윤식’ 이라고 쓰인 부분이 흐릿하게 보인다.(출처=17.7.24, 행정자치부 보도자료) |
고 이효창 선수, 조윤식 선수 및 당시 참가 선수들처럼 척박하고 어려운 환경을 개척해나간 선구자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동계올림픽 개최와 좋은 성과는 아마도 요원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무쪼록 우리 땅에서 처음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이 선배 선수들의 정기를 듬뿍 받아 성공적으로 개최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 선수들도 신명나게 경기장을 누빌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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