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년 범죄와 관련된 드라마인 ‘소년범죄’가 사회의 큰 화두였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등장하는 판사들은 각자 다양한 사연이 있는 소년범들을 만나며 그들을 타이르고 깨달음을 줬습니다. 소년범과 관련된 각 에피소드를 통해 판사들은 사건 파일을 밤낮없이 읽고 또 읽으며 그들에게 적법한 판결을 내리고자 노력합니다. 현실의 판사들도 같은 상황과 고민에 놓여있습니다. 소년범은 법의 심판이 아닌 교화가 목적인 것과 같이 다른 범죄들 역시도 심판과 교화 그 미묘한 지렛대의 추에서 판사들은 항상 고민합니다.
사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수많은 판결들에 분노합니다. “고작 저것 밖에 형량이 안돼?”, “형량이 너무 약한 거 아니야?”와 같은 말을 합니다. 저 역시도 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낮은 형량이 선고됐을 때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러다 ‘소년범죄’ 드라마를 통해 범죄에 대한 판결의 목적은 처벌 못지않게 교화의 측면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범죄자의 교화를 위해 법원에서 고려하는 점은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법원 산하 양형정책 연구기관인 양형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양형체험 프로그램 ‘당신이 판사입니다’(https://sc.scourt.go.kr/sc/exp/main.work)를 알게 되었습니다.
양형체험 프로그램 ‘당신이 판사입니다’ 첫 화면. |
법은 법을 어긴 그 누구에게도 공정해야 합니다. 또한 판결을 내리는 법관에 따라 판결이 좌지우지 되지 않기 위해 ‘양형기준’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양형기준의 사전적 정의는 ‘법관이 형을 정함에 있어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을 말합니다.
양형기준은 원칙적으로는 구속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법관의 판결이 만약 양형기준을 이탈하는 경우에는 판결문에 양형 이유를 기재하고 명시해야 하므로, 법관은 합리적인 사유 없이 양형기준을 위반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 법관의 판결에 있어 양형기준은 무시할 수 없는 판결 요소입니다.
양형기준은 법에 따라 양형위원회에 의해 설정됩니다. 양형위원회는 각각의 개별 범죄에 따라 범죄가 가진 특성을 고려한 별도의 양형기준을 만듭니다. 그리고 새로운 범죄가 생길 때마다 양형기준의 범위를 점진적으로 확대합니다.
양형위원회의 국민 양형체험 프로그램 ‘당신이 판사입니다’를 통해 판사의 판결 과정에서 양형이 어떻게 적용되고 고려되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양형체험 프로그램 사건 개요.(이하 사진 출처=양형위원회 ‘당신이 판사입니다’) |
‘당신이 판사입니다’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하는 국민은 판사가 돼 사건 영상과 피고인, 변호사, 검사의 변론을 차례대로 본 뒤 피고인에게 합리적인 양형이 얼마인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한 판결을 내립니다.
총 8가지의 범죄에 대한 양형체험을 진행할 수 있는데 해당 사건들은 실제 벌어진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8가지의 범죄는 △ 살인범죄 △ 절도범죄 △ 강제추행죄 △ 보이스피싱사기죄 △ 도주치상죄 △ 공무집행방해죄 △ 상해범죄 △ 방화범죄입니다.
8가지의 범죄 중에서 실제 같은 사건에서 선고된 형량과 국민이 선택한 형량을 비교할 수 있으며 형법과 양형기준에 대한 설명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참여한 프로그램은 상해와 관련된 재판이었습니다. 주차 문제로 시비가 벌어져 상해를 입힌 사건입니다. 해당 사건과 관련된 기사의 제목은 ‘늦은 밤, 주차 문제로 다투다 80대 이웃을 뒤로 넘어지게 하여 목숨까지 위험하게 해’였습니다. 관련 내용을 읽고, 체험 전 형량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체험 전 형량 선택. |
양형기준을 참고해 직접 판결을 내린다. |
그 뒤에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경위를 알려주는 사건 영상을 보게 됩니다. 기사로만 접하던 사건을 영상을 통해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사건 영상을 보고 텍스트로만 전해 들었던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됩니다. 그 뒤 주어진 법정형 및 양형의 조건을 파악하고 해당 법을 적용할 규정을 파악합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양형에 참조할 규정 역시 파악합니다. 즉 형을 확정하는 과정은 형법 외에도 양형기준 역시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그 뒤 양쪽 검사와 판사의 법정 공방 영상을 보고 양형심리에 영향을 주는 합의서와 탄원서를 판사의 입장에서 읽습니다.
선고 전 검사, 변호인, 피고인 등의 입장을 들어본다. |
이제 직접 판사가 되어 선고를 내립니다. 양형기준에 따른 선고를 내리고 판결 결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와 같이 국민 양형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체험자들의 양형 통계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양형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양형체험 프로그램 완수자는 지난해 10월 31일 기준 약 19만2477명이었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국민들은 사건 개요만 보고 불합리한 양형을 선택했지만 프로그램을 체험한 뒤에는 합리적인 양형기준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국민 양형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후에 국민들의 법감정에 맞는 양형기준을 설정하는 자료로 사용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다른 체험자들의 판결 결과도 확인할 수 있다. |
저도 처음에는 사건 개요만 보고 과한 잣대를 들이댔지만 관련해서 다양한 양형 요소를 알게 되고 추후에는 합리적인 법리 판단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양형기준을 수립할 수 있는 자료가 되고, 국민들 역시도 법리적 판단에 있어 다양한 요소가 있음을 알게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