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거제에 있는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6.25전쟁 당시 약 17만 명의 포로가 수용됐던 유적공원에는 전쟁 무기와 함께 6.25전쟁에 참여한 국가와 인원, 도움을 준 내용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에 6.25전쟁과 관련된 개요와 도움을 준 국가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도움들. 정말 많은 국가들이 유엔(UN)군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에 참여하여 대한민국에 도움을 주었다. 이를 보며 대한민국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은 국가들을 방문해 참전용사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직접 만나지 못한다면 참전용사 추모공원에라도 방문하겠다고 다짐했었다.
맑은 하늘에 바람까지 좋은 날이었다. 서울의 한강처럼 프랑스 파리를 가로지르는 센강(Seine River)에 6.25전쟁에 참여했던 프랑스 군인을 위한 추모비가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된 후 시간을 내어 발걸음을 옮겼다.
파리를 가로지르는 센강. 6.25전쟁 참전 기념비는 4구 센강변에 위치해있다. |
센강변에 있다는 설명에 조금은 헤맸지만, 한반도 모양으로 만들어진 추모비를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백두대간 즈음에 쓰인 COREE와 하단에 1950~1953이라는 글자가 가장 처음 눈에 들어왔다. 한 걸음 더 다가서니 전쟁의 결과인 38도 철조망도 추모비에 새겨져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매년 6월 25일이 다가올 때마다 한글과 불어로 현판을 만드는 등 조금의 노력을 더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프랑스군 대대 소속으로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던 약 300명의 이름을 새긴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많은 프랑스 이름 사이에 한국 이름이 눈에 띄었다. 한국인으로 프랑스 대대에 소속되어 목숨을 잃은 장병이었다.
추모비는 주변을 지나는 주민과 관광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인근 학교에서 야외 활동을 나온 학생들은 비석 근처에 서서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고, 몇몇 관광객은 수 초간 추모비를 응시하더니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고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그들에게 추모비는 어떤 의미일까?
센강변에 위치한 프랑스의 6.25전쟁 참전 기념비. 38선과 함께 전사자의 이름이 새겨진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
미국에서 여행 온 관광객은 한국전쟁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많은 국가가 이념적 문제로 싸운 전쟁이라고 들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세계 각지에서 힘의 논리에 의해 전쟁이 일어나지만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이라고 덧붙이며 오늘날 우크라이나 사태와 세계 각지의 분쟁에 대한 걱정을 드러냈다.
파리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유학 와있는 라일리는 학교에서 역사 관련 프로젝트를 하던 당시 한국전쟁을 조사하며 추모비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그들은 단순히 한국을 넘어 자유를 위해 싸운 영웅들”이라며 많은 사람이 마땅히 기억해야 할 역사라고 말했다.
마땅히 기억해야 할 역사, 그렇게 나는 추모비 앞에서 6.25전쟁으로 희생된 모두를 위해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지구 반대편을 날아와 함께 목숨을 바친 용사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었다.
프랑스를 떠나서도 계속된 유럽 일정, 추모비 방문의 영향이었을까? 6.25전쟁에서 우리나라에 도움을 준 국가들이 궁금했다. 내가 방문한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당시 서독),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다수의 유럽 국가들이 UN군으로 참전하거나 기타 지원을 통해 대한민국을 도와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독일 중앙역(HBF)에 크게 걸린 우크라이나 국기. 우크라이나와 함께라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
지구 반대편 유럽은 6.25전쟁보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사태에 더욱 많은 관심과 비중을 두고 있었다. 나이가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은 한국전쟁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젊은 청년에게 한국은 K-팝과 한식으로만 기억되는 경우가 많았다.
유튜브에서 한 영상을 봤다. 6.25전쟁 당시 한국을 위해 참전한 용사들을 방문해 사진을 찍어주고 무료로 사진을 주는 일종의 재능기부였다. 용사에게 사진을 건네며 전하던 말은 마음을 울렸다. “당신은 돈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오래전 비용을 다 냈습니다.”
아직 내가 그런 실천을 하진 못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날을 기억하고, 그들을 기억하고, 알리는 것이다. 반세기 전 세계가 도와준 대한민국은 오늘날 말도 안 되게 성장해 다시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오늘도 도움을 준 많은 국가를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