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는 그 나라의 문화가 스며있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순간부터 배우기 시작하여 일생을 살아가며 가장 많이 보고, 듣고, 말하고 있는 언어인 한국어는 의식하지 못하는 지금도 내 삶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사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에 살면서 한글의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한국어는 당연하게 내가 구사하는 언어였고, 이에 특별함을 느끼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떠나고 난 후에야 그 중요성을 알게 된다고 하던가, 학업으로 미국에 살던 기간 동안 한국어는 내게 너무나도 반갑고 특별한 언어가 되어 있었다. 

한참 영어와 씨름하다 보니 중학교 국어 시간 때부터 공부했던 한글의 중요성과 우수성이 더 크게 생각났던 것 같다. 길을 가다가도 한국어가 들리면 한 번 더 뒤를 돌아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한국어를 전공, 혹은 부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을 알게 되었다. 케이팝, 드라마 등을 통해 한국어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던 친구들과 언어 스터디를 함께 하며 한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는 게 쉽지 않을텐데,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 물어보니 당시 친구들은 “한글은 굉장히 과학적인 문자기 때문에 발음하는 방법만 알면, 모든 글자를 읽을 수 있다”라며 수업 시간에 배웠던 한글에 대한 지식과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대한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어내기도 했다.

함께 언어 스터디를 한지도 약 1년이 지났을 무렵, 친구들의 한국어 실력은 빠르게 늘었다. 간단한 이야기는 한국어로 할 수 있게 되었고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도 간단한 한글을 섞어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졸업 후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함께 한글을 공부하던 친구 중 한 명은 한국으로 대학원을, 다른 한 명은 한국에서 원어민 강사로 일을 하고 있으며, 또 다른 친구 한 명은 한국 기업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다.

그런 친구들과 오랜만에 서울에서 모일 기회가 있었다. 바로 ‘한글 주간'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한글 주간이란 세계인이 함께 참여하는 문화축제를 통해 10월 9일 한글날을 기념하고 한글의 가치를 되새기고자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10월 4일부터 10일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한글 주간에는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 세계인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 축제가 진행된다. 578번째 한글날을 기념하여, 올해는 “괜찮아?! 한글”이라는 주제로 행사가 개최되었다. 무분별한 외국어 남용과 신조어 등으로 한글이 홀대받고 있는 상황을 돌아보며 한글이 갖는 의미를 되새기고 한글의 가치를 체험할 수 있도록 행사가 준비되었다고 한다.

이에 친구들과 함께 지난 5일 토요일,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된 행사에 참여해 보았다. 가을 하늘이 청명하던 지난 주말, 광화문 광장은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과 행사를 보고 발걸음을 멈추어 선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내가 광화문 광장에 도착했을 땐 한글 패션쇼가 한창이었다. 한복을 입은 모델과 시니어 모델이 한 데 모이니 한복의 매력이 더욱 각양각색으로 나타나는 것 같았다. 런웨이를 하는 모델의 모습에 관심을 보이며 지나가던 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거나 주위 스텝에게 행사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다. 내 친구들 역시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한복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다”라며 “굉장히 아름답고 매력이 다양한 옷”이라고 칭찬했다.

한글 패션쇼가 진행되던 메인 무대 주위로는 다양한 부스가 운영되고 있었다. 한글 관련 다양한 기관에서 함께 한 부스에서는 한글에 관련된 퀴즈, 이벤트, 체험 활동도 진행되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행사를 즐기는 모습이었는데, 퀴즈를 푸는 아이들의 신난 목소리, 이벤트에 참여하는 청년들의 표정, 체험 활동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족과 함께 서울에 나들이를 왔다 행사에 참여했다는 김지영 씨(38세)는 “그동안 한글날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 행사에 참여한 초등학생 아들이 한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라며 “친구들과 게임할 때도 바른 말을 사용하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니 스스로도 우리 말을 바르게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덧붙였다.

나 역시 행사를 통해 한글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순우리말과 다듬은 말(순화어) 등에 대해 알아볼 수 있었는데, 그동안 일상생활에서 비규범적인 말이나 외래어 등을 정말 많이 사용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한글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와 함께 행사에 참여했던 친구들은 “케이팝, 드라마, 영화 등 한국과 관련된 콘텐츠들이 점점 세계로 뻗어가는 요즘, 한국어에도 관심을 갖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라며 “한글이 누구나 배우기 쉬운 문자인 만큼, 한글을 쉽게 접하고 공부할 수 있는 콘텐츠가 늘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덧붙였다.

10월 9일 한글날을 기념하여 10일까지 국립한글박물관 및 전국 각지에서 한글 주간 행사가 진행된다. 행사에 참여하고 한글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글의 가치가 더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