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소방차 소리 들려?”
얼마 전, 큰아이가 방에서 뛰쳐나오며 물었다.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었다. 아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소방차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이어폰을 껴 안 들리는지 문 닫은 작은 아이 방문을 세게 두드렸다. 현관문을 조금 열어보자 매캐한 냄새가 먼저 코를 찔렀다. 복도 창문에서는 아래부터 치솟는 연기가 보였다. 생각지도 못한 불이 우리 아파트 아래층에서 발생했다.
“얘들아, 비상계단에 연기가 올라오면 내려가면 안 되는 건 알지? 엘리베이터 이용도 하지 말아야 해!”
침착하게 올해 바뀐 아파트 화재 대피법을 기억해냈다. 무조건 대피가 아닌, 상황에 따른 대피법 말이다. 더욱이 우리 집은 10층 이상이라 완강기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화재가 진압됐다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다행히 큰불은 아니었나 보다. 이전에 화재를 겪은 경험 때문인지 가족들은 그때보단 침착했지만, 내 심장은 몹시 두근거렸다. ‘이론만이 아니라 실제 화재대피훈련을 열심히 받아야겠다’라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그러던 며칠 전 서울정부청사에서 화재대피훈련을 참관할 기회가 생겼다.
지난 11월 5일 서울 종로구 서울정부청사에서는 ‘2024년 재난대응 안전한국’ 훈련과 연계한 화재 대피 민방위 훈련이 열렸다. 이곳에 화재가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곳은 공무원은 물론 청사 어린이집 아이들까지 다양한 연령의 많은 인원이 있는 만큼 무엇보다 철저하게 계획에 맞춰 대피가 이뤄져야 한다.
이날 훈련은 서울정부청사에서 누전으로 불이 났다는 가정하에 진행되었다. 훈련대상은 본·별관 약 3,200명으로 종로소방서와 방호관, 청원경찰 등의 지원을 받았다.
먼저 연막탄을 이용해 연기를 피웠다. 곧이어 건물 내 화재경보가 발령하고 안내방송과 현장 지휘로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계단을 따라 대피장소인 정문 앞 잔디마당 (본관)으로 이동했다. 건물 내부는 승강기 가동이 정지되고 사무실 내 전기가 소등됐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거나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 신속하게 계단 비상구를 이용해 대피했다. 어린이집 아이들도 수건으로 코를 막고 선생님을 따라 이동했다. 대피하는 동안 안내요원은 경광등으로 차례차례 나갈 수 있도록 지휘했다.
정부서울청사 관할지인 종로소방서에서 소방장비와 소방대원이 출동했다. 먼저 호스를 이어 연기가 난 곳으로 물을 뿌리는 살수 훈련을 진행했다. 하얀 물기둥이 솟으며 불길을 잡았다. 대피한 사람들은 모두 이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연막탄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실제와 다를 바 없었다,
야외 대피장소에는 생활형 안전 교육이 준비돼 있었다. 각 부처에서 담당해 야외 소화기 분사훈련, 투척용 소화기 및 완강기, 심폐소생술을 익혀볼 수 있었다.
“이 부분을 손으로 세게 압박해주셔야 해요. 한번 해보시겠어요?”
심폐소생술도 익힐 수 있었다. 한덕수 총리를 비롯한 직원들과 어린이들이 심폐소생술을 배우며 골든타임 4분의 중요성, 나아가 신속한 조처가 꼭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소방대원은 흉부압박 중 각도나 위치가 다르면 친절하게 교정해주었다.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심폐소생술을 배우는 모습을 보니 뭉클하기도 했다.
응급훈련도 배울 수 있었다. 에반스 매듭과 보우라인 매듭이라는 두 가지 매듭방법이었다. 에반스 매듭은 화재 등의 이유로 탈출 시 기둥에 고정할 수 있게 당길수록 풀리지 않는 매듭법이다, 반대로 보우라인 매듭은 당겨도 조여들지 않는 고정매듭으로 고정된 물체에 고정용으로 사용하게 된다. 인명 구조 시 구명로프나 암벽등반 시 안전벨트 등에서 사용할 수 있다. 한 총리가 가장 먼저 묶는 법을 배웠다. 담당자는 어려운 부분을 열심히 설명해줬다.
“완강기는 처음 해보는데 막상 좀 떨리네요.”
대부분 완강기 실습은 생소해서인지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불안한 표정으로 의용소방대원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시행한 뒤 굳었던 인상이 풀렸다. 생각보다 무섭지 않다는 점, 또 기억해둬야 할 점들을 익혔다.
옆에서는 이동식 소화전을 직접 소방대원이 설명을 해줬다, 집 복도나 건물 내에서 늘 보던 소화전이라 친근해 보였다. 그렇지만 좀처럼 직접 소화전을 열고 호스를 꺼내는 모습은 없었기에 신기했다.
건너편 잔디마당에서도 연기가 피어올랐다. 드럼통에 난 불을 끈다는 설정으로 야외 소화기에서 물을 뿜었다
크고 복잡한 건물인 만큼 안전한 대처를 위해서는 각 기관의 임무와 유관기관의 역할이 긴밀해 보였다. 보안관리팀과 방호관실, 중앙감시반, 소방서 및 경찰이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체계적으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또 직접 훈련과정을 보니 실제 화재가 아닌 점이 다행이었다. 무엇보다 귀찮다고 생각되더라도 평상시 적극적인 훈련이 화재 시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새삼 느꼈다.
11월 9일은 소방의 날이고 11월은 ‘불조심 강조의 달’이다. 특히 올해 77회를 맞는 ‘불조심 강조의 달’ 슬로건은 ‘화재로부터 안전한 나라, 국민과 함께하는 불조심 환경 조성’이다. 이에 따라 11월 1일부터 소방청과 전국 19개 시도 소방본부가 화재 예방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요추진 과제는 국민 공감형 화재 예방 분위기 조성과 국민 맞춤형 소방안전 교육, 국민 참여형 소방안전 문화확산 등으로 안전문화 확산에 주력한다.
또 국민 참여형 소방안전문화 확산의 일환으로 소방차 길터주기 훈련을 비롯해 ‘제77회 불조심 강조의 달 소방차 퍼레이드’를 지역적으로 진행한다. 이외에도 11월 한 달간 12세 이하 어린이를 대상으로 ‘2024 어린이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공모전’을 개최하며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이벤트 ‘너도 나도 불조심! 인증샷 이벤트’를 진행한다.
뭐니뭐니 해도 화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예방이다. 그렇지만 본의 아니게 화재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훈련이나 대피를 통해 알아두자. 올해는 부디 화마로 큰 피해를 겪는 소식은 없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