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상황을 가리지 않는다. 아직 육아에 한창인 후배, 자녀를 결혼시킨 선배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외로움을 느낄 틈조차 없이 바쁘다고 해도, 결국 외롭지 않은 건 아니다. 바쁜 일을 마친 후, 더 큰 허탈함이 밀려오기도 하니까. 지난 2023년 문체부가 조사한 ‘국민 사회적 연결 실태조사’에서는 국민 10명 중 7명이 평상시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외로운 상황이 지속 되면 정서적 우울과 고립, 은둔으로 나타나게 된다. 사람 개개인은 물론 효율이나 비용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다. 고립·은둔 청년 34만 명에게 연간 약 7조 5,000억 원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단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런 외로움을 문화로 치유하기 위해 ‘문화담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10월 학계 세미나를 비롯해 국립기관과 지자체, 민간단체에서도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문체부와 지역문화진흥원이 함께 진행한 ‘외:로움이의 집’도 이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지난 12월 20, 21일 성수동 세원정밀 창고에서는 체험형 반짝 공간(팝업 스토어) ‘외:로움이의 집’이 열렸다. 이틀간 진행된 행사는 방문객에게 외로움의 본질을 파악해 다양한 문화로 연결해보는 훈훈한 시간을 선사했다.
행사 첫날, 성수동에서 열리는 ‘외;로움이의 집’을 찾았다. 젊은 세대에게 핫플인 성수동은 늘 그렇듯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특히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앞둬서 그럴까. 이곳저곳에서 인증샷을 찍는 모습들에 크게 외로움을 타지 않았던 나도 상대적으로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외:로움이의 집’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반갑게 맞아주는 안내요원의 모습에 외롭다는 생각이 조금 누그러졌다. ‘외:로움이의 집’은 크게 야외와 실내로 구성돼 있었다. 먼저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꾸며진 야외를 지나 실내로 들어갔다.
처음 들어서자 안내요원은 빈 컵홀더를 주며 ‘감정지도’ 체험을 하면서 자신의 외로움에 맞게 꾸며보라고 했다. ‘감정지도’라는 커튼으로 가려진 세 공간을 지나면서 시간, 날씨, 상황별로 스스로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을 되돌아봤다.
하루 중 가장 외로움을 느꼈던 시간은 언제였을까. 누군가는 새벽일 수도 또 다른 누군가는 저녁일 수도 있겠지. 또 날씨가 어떨 때 가장 외로웠을까. 창문에 가려진 블라인드를 열어보고 가장 외로웠던 순간을 떠올렸다. 마지막은 흔히 있는 외로운 상황을 구성해놨다. 가령 혼자 밥 먹을 때, 카페에서 모두 핸드폰을 볼 때, 생일 때 아무 연락이 오지 않을 때와 같은. 분명 나도 이런 상황에서 고독을 느꼈을 테다. 그렇지만 한 번도 언제였는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앞으로 느낄 외로움을 대비하려면 근본적으로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감정지도’ 체험을 통해 내가 느꼈던 외로움을 분석해볼 수 있어 좋았다.
‘해소의 방’은 외로움을 다독여줄 다양한 체험이 준비돼 있었다. 각각 협업 기관들과 함께 꾸민 로움이네 다락방, 산책길, 거실, 옥탑방, 연구실 등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누려볼 수 있었다.
먼저 부스 앞에 놓인 벤치가 시선을 끌었다. 춘전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로움이네 산책길’부스다. 벤치에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참가자들은 설명을 보면서 “영국에서 한 여성이 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이 벤치에 앉는다고 쪽지를 붙였대”, “여기 앉은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소리네. 아이디어 좋은데”라고 소곤거렸다. 이곳에서 외로움을 테스트해 볼 수 있었다. 난 예상외로 외로움을 별로 타지 않는 유형으로 나왔다(내가?). 세상에 나보다 더 쓸쓸한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일까. 주변에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테스트를 마치고 벽면에 소개해놓은 이웃과의 커뮤니티 사업(문화로 소통하는 도시마음산책)에 관해 읽었다.
“참가자들이 커뮤니티 사업을 통해 깊은 연대감을 느꼈다고 해요. 사업이 끝나고 자발적으로 후속 모임을 하는 경우도 많아졌어요.”
춘천문화재단 김미연 담당자가 말했다. 춘천문화재단의 커뮤니티에는 외롭거나 고립에 관심 있는 사람들 300여 명이 모였다. 각 커뮤니티 리더들은 내용에 맞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6개월간 6회차를 운영했다. 기관에서는 사회적 연결성 척도 검사와 심리 상담을 통해 알맞은 커뮤니티를 추천해줬다. 리더 중에는 플로리스트, 조각가, 북카페 등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있어 더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참가자 중에 이 동네에서 32년을 사신 분이 계셨어요. 사실 늘 보는 사람만 보고 인사를 나눴다고 해요. 그런데 이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새로운 주민이나 그냥 지나쳤던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게 됐다고 해요. 그렇게 서로가 필요했다는 걸 알게 되고 교류하며 오래 살던 동네를 재발견했다고 해요. 또 한 분은 리더 활동을 통해 자신이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어 감격스러웠다는 소감을 주셨어요.”
그는 외로움을 가진 이들이 모여 변화하는 과정을 보아왔다. 그런 그가 생각하는 외로움은 무엇일까, 또 외로움과 친구가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때. 그때가 가장 외로운 것 같아요”라고 답변했다. 이어 “저희가 커뮤니티 활동을 진행하며 느낀 게 있거든요. 아무래도 외로움은 개인의 과제라기보단 누군가와 만나 소통하면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 덧붙였다.
김해문화관광재단에서는 ‘로움이네 옥탑방’이란 콘셉트로 타로 심리 상담 등을 진행했다. 현재 가진 고민을 타로카드와 상담을 통해 해소하는 체험을 했다. 내가 현재 가진 고민을 적어 구겨 버린 후 누군가가 써준 메시지 카드를 하나씩 뽑았다.
“문구도 좋은데 손글씨라는 자체가 감격스러운데요.” 옆에서 카드를 펴보던 참가자가 말했다. 내 카드에는 2025년은 혼자도 좋지만 함께하는 행복을 느껴보라고 적혀 있었다. 나 또한 누군가 모르는 사람에게 격려를 받은 사실이 왠지 흐뭇했다. 내색하진 않아도 누구나 마음속 온기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포근하게 느껴진 까닭이리라. 나 역시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응원의 문구를 적어 넣었다. 작은 한 문장이 강추위 속 큰 담요처럼 느껴지도록.
연세대학교 원주산학협력단에서는 디지털 의료기기로 건강을 측정하고 원격 상담기기로 상담을 했다. 영상으로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상담사는 내게 근심거리를 물었고 난 건강에 관한 불안을 털어놨다. 10분가량 상담을 진행하고 상담사는 심리 카드로 처방을 내려줬다. 신기하게도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걸 알게 됐고 해결방안도 들어볼 수 있었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김쌤의 음악상담실’에도 참여했다. 김쌤은 내가 하고픈 이야기를 마음껏 들어 줬다. 말하기 어색하다면 그냥 노래만 신청해도 좋다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나를 위해 불러주는 노래를 듣자 예전 즐거웠던 추억이 몽실몽실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퍼졌다. “작은 행복을 떠올리면서 외로움을 잊어도 좋지 않을까요?”라는 말을 듣고 끄덕거렸다.
영암문화관광재단에서는 컵 받침과 카드를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행사에는 혼자 온 사람들이 꽤 많아 보였다. 그렇지만 좀 지나 어우러져 친근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외로움’이 이 공간의 키워드인 만큼 혼자가 낯설거나 멋쩍게 느껴지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 편했던 건지 모르겠다.
“저 구석의 여학생이 외로워 보이는데 같이 찍어 드릴까요?”
웹툰 ‘아르마딜로’가 협업해 만든 메인 포토존 ‘로움이의 방’ 앞에서 인증샷을 찍자 안내요원이 말했다. 그의 말에 포토존 그림을 보니 쓸쓸한 여학생이 방에 웅크린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모습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굳이 방구석에 혼자 앉아 있진 않더라도 그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
“현대인들은 다들 외롭잖아요. 저는 외로움과 고립, 은둔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떤 목적이나 성과, 또는 금전적인 부담이 없는 커뮤니티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은데 가족들하고만 다 통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떤 커뮤니티에서 내 이야기를 공감해줄 누군가가 있으면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요? 그런 지원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니트생활자의 박은미 공동대표가 말했다. 니트생활자는 2019년 무업(無業)상태의 청년들을 연결하기 위해 탄생했다. 이곳에서는 이들이 고립하지 않도록 다양한 모임으로 교류하고 재충전하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이런 상황에 있는 많은 청년을 만났고 그들의 고민을 알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행사에 ‘시간의 방’이란 전시 공간을 만들었다. 이 공간은 손전등을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칠흑처럼 깜깜하기 때문이다. 내부에서 손전등을 비춰가며 고립과 은둔에 관한 이야기, 박차고 나온 방법 등을 볼 수 있었다. 내부에서 보고 있으면 고립과 은둔을 겪은 이들의 마음이 훅 전해진다.
자칫 무업 상태를 시간을 허비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공감하는 사람들끼리 만나고 어울리는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서로에게 안전망이 돼 줄 수 있으니까. 물론 여기까지 오기 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단다. 그런 이들을 생각하면 사실 무척 안타깝다. 무엇보다 사회에서 무업을 바라보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 나와 야외에서는 ‘로움이네 우편함’ 등을 체험했다. 아기자기한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며진 비닐 돔 안에 들어가 고민을 적었다. 막상 적으려니 어떤 걸 쓸까 망설여졌다(실내에서 걱정거리가 많이 해소된 이유도 있었다). 적은 메시지를 외부 벽에 붙인 뒤 외로움, 관계, 꿈이라고 적힌 우편함에서 답장을 꺼냈다. 관계라고 적힌 우편함을 열자 응원 문구가 적힌 엽서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예쁜 엽서 뒷장에는 ‘나를 소중히 여기고 다른 이의 기대에만 맞추지 말라’는 조언이 들어 있었다.
미션을 완수한 참가자에게는 따뜻한 간식이 제공됐다. 제법 추운 날씨. 뜨끈한 어묵 국물에 곱은 손이 펴졌다. 마음이 풀어진 까닭인지 다른 참가자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눴다. 그는 싱가포르인, 2년 전 좋아하는 BTS의 고향인 한국으로 왔다. 그는 외로울 때면 이런 문화체험을 통해 극복한다고 했다. 오늘 행사에서도 예쁜 컵 받침을 만들었다며 자랑했다. 또 싱가포르 여행 추천지도 직접 사진을 보여주며 상세히 알려줬다. 외로움을 해결하는 방안 중 하나는 가치가 비슷한 사람과의 만남 아닐까.
앞서 문체부는 문화를 통해 외로움뿐만 아니라 지역소멸, 사회갈등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화가 가진 긍정적인 힘으로 일상의 만족을 높이며 문화가 사회적 안전망으로 자리를 잡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힘입어 ‘문화담론 프로젝트’는 내년에도 계속된다.
훈훈한 체험들이 마음속 온도를 높여줬을까. 분명 들어올 때보다 밖은 더 어둡고 추웠으나 기분은 따스했다. 내 상황은 이전과 같았지만 만원 지하철에서 피로함은 한결 덜했다. 이런 소소한 만족감이 쌓여 외로움을 해결할 용기를 주지 않을까. 문화가 주는 든든한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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