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면서 종종 역사 게시판을 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눈에 띄는 포스터가 있었다. 국가보훈부에서 제작하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다.
1992년부터 매년 12명 이상의 독립운동가를 월별로 지정해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의 생애와 공적을 알려온 캠페인이다. 1992년부터 작년 12월까지 총 501명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했다.
그리고 2025년, 국가보훈부는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사건 중심의 독립운동을 선정해 발표한다고 밝혔다.
그 첫 시작을 알린 '2025년 1월의 독립운동'은 바로 '국채보상운동'이다.
국채보상운동은 일본의 침탈에 맞서 나랏빚 1300만 원을 갚자는 범국민 애국계몽운동이다. 한국 근현대사 시험 문제, 특히 시간 흐름에 따른 사건 순서 맞히기 문제에 단골로 등장하던 소재로 연도 외우기 힘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907년 1월 29일, 대구 광문사 사장 김광제, 부사장 서상돈 등은 "담배를 끊어 국채를 보상하자"는 건의서를 낭독했다.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의 서막을 올린 것이다. 국채보상운동을 기념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2011년 대구에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 개관했다. 국비와 시비, 그리고 시민 성금이 더해져 건립된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이 이어졌다.
마침 대구에 갈 일이 있어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 방문해 보았다. 기념관은 대구 중심에 있는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 위치했다. 공원은 꽤 큰 규모였는데 공원 안에는 압도적 크기의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도 자리하고 있었다. 이만하면 국채보상운동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모습이었다. 기념관 입구에는 '2025년 1월의 독립운동 국채보상운동', '2025년 1월 이달의 6.25 전쟁영웅 안병섭 이등상사'를 기리는 포스터가 부착되어 있었다.
기념관은 지하 1층 제1전시실, 1층 제2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제1전시실은 국채보상운동의 시작과 전개, 제2전시실은 결말과 의의, 특별 전시실은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관해 전시하고 있다.
2017년 등재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유사 운동에 비해 시기적으로 가장 앞섰고, 가장 긴 기간 동안 전 국민이 참여한 국민적 기부운동이었다는 점, 당시의 기록물이 유일하게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전시는 지하 1층에서 영상을 관람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영상을 통해 대략적으로 역사와 의의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영상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1997년 금 모으기 운동이었다. 1997년 외환 위기를 맞은 대한민국의 부채를 갚기 위해 국민들은 자신이 소유하던 금을 자발적으로 내놓았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도 줄을 길게 늘어선 모습을 뉴스에서 본 기억이 있다. 이 범국민적 애국운동의 효시가 국채보상운동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에게 국채보상운동은 과거 의무적으로 달달 외워야 했던 골치 아픈 시험 문제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다시 본 국채보상운동의 의미는 다르게 다가왔다. 국채보상운동 앞에는 '한국 최초' 타이틀이 여럿 붙어있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들이 주체로 활동한 한국 최초의 근대적 여성운동, 대한메일신보를 필두로 황성신문, 제국신문, 만세보 등의 보도로 전국에 확산될 수 있었던 한국 최초의 언론 캠페인 운동, 담배를 끊고 그 돈을 모아 국채를 갚고자 했던 한국 최초의 금연운동, 그리고 한국 최초의 국민적 기부운동, 한국 최초의 근대적 학생운동 등이 그것이다. 그 밖에도 한국 근대 시민 민족주의 운동, 한국 근대 경제주권 수호운동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추가할 수 있다.
'2025년 1월의 독립운동' 덕분에 시험 문제 속에만 갇혀 있었던 국채보상운동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국가의 경제 성장과 경제적 독립을 위해 산업, 특히 제조업을 일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도 다시 한번 느낄 수가 있었다. 내용과 연도에 치중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국채보상운동의 결과도 알게 되었다. 비록 일제의 방해로 국권 회복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모인 위탁금은 학교를 설립하는 토대가 되었고 민족 운동으로 승화하는 전환점이 되는 등 독립운동사에 많은 의미를 남겼다.
다음 달에는 또 어떤 '독립운동'이 국민들에게 알려질지 기대가 된다. 특별한 날만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독립운동사를 기억하고 그분들에게 감사하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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