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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운조루 고택에서 본 국가민속문화유산의 가치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통 고택 '구례 운조루 고택' 방문기
살아 있는 예술적 공간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전통가옥에서 보낸 특별한 하루

2026.04.27 정책기자단 윤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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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를 여러 차례 찾았지만, 운조루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 달 살기를 하고 있는 지인의 추천이 계기가 됐다. 지인은 봄날의 구례를 즐기기 위해 머물고 있었다. 산수유꽃에 이어 벚꽃이 한창인 이곳은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은 자연경관뿐 아니라 곳곳에 숨은 볼거리도 많다. 그 가운데 오래된 한옥인 운조루가 있다. 이곳은 외지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장소는 아니었다.

봄날의 구례는 곳곳이 노란 산수유꽃으로 물들어 있다. 산수유마을로 꼽히는 대음마을(본인 촬영)
봄날의 구례는 곳곳이 노란 산수유꽃으로 물들어 있다. 산수유마을로 꼽히는 대음마을 (본인 촬영)

현장을 찾기 전 운조루를 검색하다가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자리한 이곳은 1776년(조선 영조 52년)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가 지은 집이며, 풍수지리에서는 산과 연못으로 둘러싸인 '금환락지(金環落地)'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총 55칸 규모의 목조 기와집으로 사랑채·안채·행랑채·사당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양반가 건축이다. 마을에 들어서자, 한옥으로 이어진 풍경 속에서 운조루는 마을의 중심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운조루 대문 앞에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적힌 뒤주가 놓여 있다. 굶주린 이웃을 위해 언제든 뒤주를 열어두었던 나눔의 정신을 담고 있다. (본인 촬영)
운조루 대문 앞에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적힌 뒤주가 놓여 있다. 굶주린 이웃을 위해 언제든 뒤주를 열어두었던 나눔의 정신을 담고 있다. (본인 촬영)

운조루 대문 앞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적힌 뒤주가 놓여 있었다. '타인능해(他人能解)'는 '다른 사람도 능히 열어 쌀을 가져갈 수 있다'는 뜻으로, 굶주린 이웃을 위해 언제든 뒤주를 열어뒀던 나눔의 정신을 담고 있다. 이렇듯 고택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었다. 사람과 함께 살아온 삶의 방식이 담긴 공간이었다.

◆ 보존은 제도로, 관리는 개인의 몫

운조루를 지키고 있는 류정수 씨는 이 집의 10대 후손이다. 그는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의 지원에 대해 수리·보수 중심으로 설명했다.

운조루를 지키고 있는 후손 류정수 씨가 방문객들에게 손수 준비한 차를 정성껏 대접하고 있다. (본인 촬영)
운조루를 지키고 있는 후손 류정수 씨가 방문객들에게 손수 준비한 차를 정성껏 대접하고 있다. (본인 촬영)

"일상적인 지원은 없고요. 수리·보수할 때만 지원이 있습니다. 지원 절차가 더 간편하면 좋겠습니다."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 보수·정비 비용에 대한 국고 지원과 함께 국가 차원의 관리·보호 체계에 포함되며, 별도의 활용사업을 통한 운영 지원도 받을 수 있다. 다만 모든 고택이 활용사업의 수혜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유산 제도는 대규모 보수에는 기능하지만, 일상적인 유지관리까지는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구조다. 보존은 지원되지만, 관리의 부담은 개인에게 남아 있었다.

◆ '우리고장 국가유산 활용사업'을 통해 '보존'에서 '활용'으로 확장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국가유산청은 '우리고장 국가유산 활용사업'을 통해 정책 방향을 '보존'에서 '활용'으로 확장하고 있다.

운조루가 있는 오미마을은 운조루를 중심으로 여러 한옥이 자리하고 있다. (본인 촬영)
운조루가 있는 오미마을은 운조루를 중심으로 여러 한옥이 있다. (본인 촬영)

2026년에는 총 379건의 활용사업이 선정됐으며, 이 가운데 '고택·종갓집 활용' 사업이 48건 포함됐다. 고택을 체험과 관광, 지역경제와 연결하는 정책이다. 하지만 모든 고택이 이 사업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공모를 통해 일부만 선정되는 구조다. 운조루 역시 국가민속문화유산이지만, '고택·종갓집 활용' 사업의 수혜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아 정책과 현장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 고택과 예술, '살아 있는 공간'으로의 가능성

운조루에서는 또 다른 가능성이 펼쳐지고 있었다. 고택 곳곳이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필자가 방문한 날, 고택 곳곳에 솟대 작품을 설치하고 있었다. 솟대 작가 강성신 씨는 고택에서의 작업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솟대작가 강성진 씨가 운조루 곳곳에 솟대 작품을 설치하고 있다. 5월 30일까지 '산풍성신 솟대초대전'이 열린다. (본인 촬영)
솟대 작가 강성신 씨가 운조루 곳곳에 솟대 작품을 설치하고 있다. 5월 30일까지 '산풍성신 솟대초대전'이 열린다. (본인 촬영)

"운조루와 같은 고택은 그 자체가 이미 이야기를 가진 공간입니다. 작품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드러내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또한 그는 고택 활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국 곳곳에 고택이 많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방치된 곳도 많습니다. 그런 고택에 사람들이 찾아오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고택을 활용하는 정책을 다양하게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택을 중심으로 체험·전시· 지역 생산물 판매 등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고택이 지역의 문화 거점이 될 수 있습니다."

고택은 보존의 대상에서 사람을 불러들이는 공간으로 바뀔 때 비로소 살아난다.

고택은 보존의 대상에서 활용의 대상으로 바뀌면서 사람을 불러들이는 공간으로 살아나고 있다. (본인 촬영)
고택은 보존의 대상에서 활용의 대상으로 바뀌면서 사람을 불러들이는 공간으로 살아나고 있다. (본인 촬영)

운조루 대문 앞의 '타인능해' 뒤주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문을 열어두었던 공간,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 이제 그 의미는 다시 확장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쌀을 나누는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사람들이 다시 찾고 머무는 공간으로 열려야 한다. 보존을 넘어 활용으로. 운조루는 그 변화의 출발점에 서 있었다.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왔던 운조루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서사가 있다. 운조루는 누구에게든 활짝 열려 있다. 구례를 여행하면서 운조루를 여정지에 추가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잠시 운조루 툇마루에 앉아서 쉬어가도 좋다. 우연히 주인장 류정수 씨를 만나 따듯한 차와 함께 그가 들려주는 인문학 이야기에 심취해도 좋다. 이것이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운조루가 주는 가치일 것이다.

☞ 구례 운조루 고택 누리집 바로가기

☞ (보도자료) 국가유산청, 2026년 우리고장 국가유산 활용사업 379건 선정

윤혜숙대한민국 정책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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