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에 참전했습니다."
2017년 여름, 당시 국가보훈처가 주최한 '유엔참전국 청소년 평화캠프'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가 했던 말이다. 유엔참전국 청소년 평화캠프는 세계 각국에서 온 유엔참전국 3세대 후손 청소년들이 함께 생활하며 한국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배우는 자리였다. 필자는 프랑스에서 온 친구와 룸메이트가 돼 일주일 동안 캠프 일정을 함께했다.

당시에는 프랑스에서 온 또래 친구의 할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하게 느껴졌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살아온 우리가 70여 년 전 한국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도 낯설었다. 그는 할아버지가 프랑스군의 일원으로 지평리 전투에 참전했다고 들려줬지만, 당시의 나는 그 전투가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깊이 알지 못했다.
어느덧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유엔참전국 청소년 평화캠프라는 기억이 잊혀갈 무렵, 올해가 한-프 수교 140주년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유엔군 참전의 날을 앞두고 프랑스 친구가 들려줬던 한마디가 다시 떠올랐다. 이제는 그 친구의 할아버지가 지나온 역사를 조금 더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유엔군 참전의 날(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을 기념하고,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싸운 국군과 유엔참전용사의 희생을 기리는 국가기념일)을 맞아 수원 지지대고개의 프랑스군 참전기념비와 양평 지평의병·지평리전투기념관을 차례로 찾았다.
먼저 찾은 곳은 수원과 의왕의 경계인 지지대고개였다. 도로 옆 숲에 들어서자, 태극기와 유엔기, 프랑스 국기가 새겨진 프랑스군 참전기념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빗물이 맺힌 비석 주변은 조용했고, 수많은 차량이 오가는 도로와 달리 기념비 앞에는 묵직한 적막이 흘렀다.

프랑스군 참전기념비가 수원의 북쪽 관문인 지지대고개에 세워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한국에 도착한 프랑스 대대는 미군 부대에 배속되기 전 수원에 처음 집결해 전투 준비와 적응 훈련을 했다. 프랑스군이 한국에서 처음 머물렀던 곳을 기억하기 위해 1974년 수원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기념비가 건립됐다.

기념비 안내문에는 프랑스 대대가 1950년 11월 부산에 도착한 뒤 수원에서 전열을 가다듬고 전선으로 향한 과정이 담겨 있었다. 낯선 나라에 도착한 젊은 병사들이 이곳에서 처음 한국의 겨울을 마주했을 모습을 떠올렸다. 지금은 차량이 쉼 없이 오가는 평범한 길목이지만, 70여 년 전에는 프랑스 장병들이 전쟁터로 향하기 전 각오를 다졌던 출발점이었다.

기념비를 둘러보고, 수원을 떠나 양평 지평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평의병·지평리전투기념관 주변에는 프랑스군과 미군 참전 충혼비, 지평지구 전투전적비가 한자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계단 위에 세워진 전적비를 중심으로 양쪽에 프랑스와 미국 참전용사를 기리는 비석이 놓여 있어 당시 전투가 여러 나라 장병의 연대로 치러졌음을 한눈에 보여줬다.


지평리 전투는 1951년 2월 13일부터 16일까지 이어졌다. 미 제2보병사단 제23연대와 이에 배속된 프랑스 대대는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 속에서 사방이 포위된 채 진지를 지켰다. 당시 지평리는 유엔군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왜냐하면 중앙선 철도가 지나는 교통 요충지였고, 이곳이 무너지면 중공군이 남한강을 건너 서울 남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프랑스 대대를 이끈 인물은 라울 마그랭베르느레, 이른바 '랄프 몽클라르 장군'이었다. 그는 이미 두 차례 세계대전에 참전한 중장의 계급이었지만, 한국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계급을 낮췄다. 당시 프랑스는 대대급 규모였기에, 중령으로 스스로 계급을 낮춰 프랑스 대대장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모두의 만류에도 몽클라르 장군은 "계급은 중요하지 않다. 훗날 태어날 자식에게 유엔군의 일원으로 평화를 위해 참전했다는 사실을 물려주고 싶다"라고 남기며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전투 당시 프랑스 장병들은 병력과 장비 면에서 불리한 상황에서도 서쪽 방어선을 지켰다. 전시관에는 프랑스 대대가 중공군의 피리와 나팔 소리에 맞서 수동식 사이렌을 울리고, 붉은 수건을 머리에 맨 채 반격에 나섰다는 일화도 소개돼 있었다. 또한, 이들은 치열한 백병전을 하기도 했다. 기념관에서 전시된 사료(史料)를 읽으며 지평리 전투가 교과서 속 짧은 문장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밤새 총성과 함성 속에서 버텨야 했던 사람들의 시간이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지평리 전투는 중공군의 공세를 막아내고 유엔군이 다시 반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전투이자, 유엔군 참전 이후 첫 승전보를 남긴 전투로 평가된다. 기념관 역시 이 전투를 중공군의 공격을 차단해 재반격의 기틀을 세운 역사적 전환점으로 소개하고 있다. 전망대에서 전적지 주변의 낮은 산과 마을을 바라보니, 평범하고 고요한 풍경 아래 치열한 전투의 기억이 겹쳤다.

수원 지지대고개에서 시작해 양평 지평리까지 걸음을 옮기며 '한-프 수교 140년'의 시간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됐다. 두 나라의 관계는 외교문서와 문화 행사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었다. 가장 어려웠던 순간 함께 피를 흘린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그 기억을 이어받은 후손들의 만남이 양국 우정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다.

유엔군 참전의 날과 한-프 수교 140주년을 맞아 찾은 수원과 양평 지평리에서, 전쟁으로 맺어진 두 나라의 인연이 오늘날 세대를 잇는 우정과 연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다시 느꼈다. 또한, 참전용사들이 목숨으로 지켜낸 자유와 평화를 기억하는 것이, 그들의 희생에 감사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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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처 :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포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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