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지나는 마포 한강 변에서 특별한 저녁을 보냈다. 청사초롱을 들고 옛 나루터를 걸은 뒤, 뚝배기에 새우젓국을 보글보글 끓였다. 낮에 이곳을 방문한 적은 있지만, 밤에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익숙했던 동네의 풍경이 그날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국가유산청은 한국문화유산활용단체연합회와 함께 10월 한 달 동안 '2026년 국가유산주간'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세 번째를 맞은 국가유산주간은 국민이 일상 가까이에서 국가유산의 가치를 경험하도록 마련됐으며 전국의 국가유산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용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운영한다. 이와 함께 380여건의 '우리고장 국가유산 활용 프로그램'과 모바일 스탬프 투어도 진행한다.
또 서울·강원, 경기·인천, 충청, 전라, 경상 등 5개 권역에서 국가유산의 역사와 장소성을 지역 음식 문화와 연결하는 특집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번 특집 프로그램의 주제는 '한식 문화'다.
지역의 맛이라니, 무척 궁금하지 않은가. 인천 개항장에서는 근대건축유산을 둘러보며 짜장면과 닭강정을 만들고 청주에서는 100여 년 전 음식을 기록한 '반찬등속'의 옛 밥상과 만난다. 김제 벽골제(고대 수리시설)에서는 지평선 쌀로 가마솥 밥을 짓고 경주에서는 최부자댁의 내림 음식과 손님맞이 문화를 경험한다. 지역 내 국가유산이 품은 이야기를 음식으로 풀어내는 방식이다. 서울·강원 프로그램은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에서 마포의 옛 음식 문화를 경험하도록 구성됐다.


시간이 되자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양화진 역사공원에 모여들었다. 참가자들에게는 앙부일구 배지와 청사초롱이 제공됐다. 어둑어둑한 밤길을 그 초롱을 손에 들고 걸으니, 평소와 다른 기분이 들었다.
서재순 문화관광 해설사는 "이곳 양화진과 마포나루는 옛날부터 서해의 해산물과 소금이 배로 들어와 염리동과 새우젓 축제 같은 마포만의 독특한 포구 문화를 만든 중심지입니다. 이따가 새우젓 요리를 만들어 보시며 이 지역의 역사와 생활 문화를 직접 경험하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이어 해설사는 한강을 오가던 사람과 물자, 양화진과 마포나루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양화나루가 적이 쳐들어왔을 때 마지막 보루였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설명을 들으며 한강이 사람들의 삶과 지역의 음식 문화를 이어준 통로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야기는 한강을 바라보며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절두산 순교성지의 종탑을 바라보며 이곳에 깃든 역사에 귀를 기울였다.

서해에서 들어온 소금과 새우젓도 물길을 따라 유통됐다. 마포의 음식 문화를 이야기할 때 새우젓을 빼놓기 어려운 이유다.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나니 이날 새우젓 요리 체험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지역의 역사를 보고 들은 뒤 음식으로 경험한다는 점에서, 이번 프로그램은 익숙한 내 동네 마포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 직접 끓이고 무쳐 본 마포의 옛 맛

가벼운 해설을 마치고 선상 옥상으로 올라가 요리 체험을 시작했다. 이날 만든 음식은 새우젓국과 무짠지였다. 새우젓국은 작은 뚝배기에 가지런히 재료를 넣고 끓였다. 양파와 말린 표고버섯, 얇게 썬 무를 넣었다. 두부와 애호박, 쇠고기도 더했다. 국물이 끓기 시작하자 새우젓과 마늘로 간을 맞췄다. 마지막으로 파와 고추를 넣어 마무리했다.

고소한 깨와 참기름을 넣어 무짠지도 무쳤다. 옆에서 말없이 칼질하는 딸의 모습에 왠지 흐뭇해졌다. 평소라면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먹는 데 그쳤겠지만, 이날은 재료를 손질하고 간을 맞추며 음식이 완성되는 과정을 함께했다.

새우젓국은 양화대교를 배경 삼아 보글보글 끓였고 밥과 수육, 막걸리까지 더해져 식탁이 풍성해졌다. 평소 집에서 먹는 한 끼와는 느낌이 달랐다. 함께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음식이 담백하고 섬세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옛사람들이 먹었을 음식을 직접 만들어 본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날 만든 새우젓국이 조선시대의 조리법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양화나루와 마포의 식재료, 음식 문화에 바탕을 두고 오늘날의 식탁에 맞게 재해석했다고 한다.

"생각보다 간단한데 국물이 개운하고 맛있어."
"한강을 바라보며 음식을 만들 줄이야. 사진 찍으면 고급 레스토랑인 줄 알겠어."
새우젓국을 한입 뜨자 담백한 맛이 온몸에 퍼졌다. 역시 음식은 사람을 친근하게 하는 재주가 있는 걸까. 같은 테이블에 앉은 여성들과 자연스레 이야기가 이어졌다. 두 여성은 이 근처를 자주 다녔으나 이렇게 좋은 공간이 있는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딸에게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밤의 한강 풍경을 바라보며 자신이 직접 끓인 국을 먹고 손수 무친 반찬도 곁들였다. 평소 식사에서는 좀처럼 해보기 어려운 경험이다. 그것도 의미 있는 음식이 아닌가. 같은 장소도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강원권 프로그램을 기획한 이동범 대표(컬처앤로드)는 이번 특집 프로그램의 구성을 음식과 술의 조합을 뜻하는 '페어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옛날에는 막걸리에 파전을 곁들였잖아요. 그게 사실 가장 적합한 페어링이죠."
이 대표는 과거 이 지역에서 일하거나 물건을 나르던 사람들이 막걸리와 음식을 함께 즐겼을 모습을 떠올렸다. 이러한 음식 문화는 오늘날 공덕동 전 골목과도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역의 역사와 음식을 함께 살펴보면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까지 상상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젊은 세대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데 신경 썼다고 했다. 특히 1인 가구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식사 형식을 고민했고, 새우젓국을 작은 뚝배기에 담아 끓이는 방식도 그런 생각에서 나왔다. 한강 변까지 찾아온 참가자들이 음식뿐 아니라 식탁의 풍성함과 분위기도 느낄 수 있도록 여러 음식을 함께 구성했다고 덧붙였다.
양화나루 일대의 옛 음식 문화에는 떡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이 대표는 과거 나루 주변에 떡을 파는 곳이 있었다는 기록을 접하고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기라는 과일 찹쌀떡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특집 프로그램 후반기에는 전통주인 삼해주와 제철 과일을 넣은 찹쌀떡을 만드는 체험도 포함돼 있다.
처음에는 과일을 넣은 떡을 젊은 세대가 즐겨 찾는 요즘식 디저트라서 만드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루를 오가던 사람들의 생활과 옛 음식 문화를 연결해 설명을 들으니,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 젊은이들이 줄 서서 사 먹는 음식에도 옛이야기가 담겨 있을 수 있다는 점이 꽤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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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을 마치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국가유산은 박물관 유리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필자가 사는 동네의 나루터가 조선시대 물류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확인했다. 강바람을 맞으며 새우젓국을 직접 끓이고 무짠지를 맛보면서 음식으로도 역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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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을 일상 가까이에서 경험하게 한다는 취지가 무엇인지 체감한 시간이었다. 해설을 듣고 돌아서는 관람과는 전혀 달랐다. 직접 만들고 먹었기에 양화나루라는 이름은 지식에 머물지 않고 기억으로 남았다. 딸에게도 그렇지 않을까. 더욱이 야경이 이렇게 화려한 양화나루가 해설사의 말처럼 국방적 주요 요충지이자 각종 물건이 모이는 중요한 물길이었다는 사실까지 함께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5대 권역 특집 프로그램은 예약 마감됐지만, 10월 한 달 동안 전국 각지에서 '우리고장 국가유산 활용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 자세한 일정은 '국가유산주간(k-heritageweeks.kr)' 공식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우리 동네의 오래된 장소와 음식에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 있을지 모른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가까운 국가유산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곳에 깃든 옛 맛과 이야기가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기억으로 바꿔줄지도 모른다.
☞ (보도자료) 전국 5개 권역 국가유산에서 즐기는 음식과 식문화 이야기
문의처 :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포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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