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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불 향 가득 밴 육즙과 달콤한 양념의 완벽한 조화, 소갈비 대 소갈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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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 그것도 소. 갈. 비! 먹거리가 풍성한 21세기임에도 불구하고, 지존(至尊)의 자리를 당당하게 지키고 있는 메뉴다. 가족 외식이든 직장 회식이든 ‘소갈비’란 통보엔 모두들 환호성을 지른다. 공부 핑계를 대고 슬그머니 빠지려고 했던 애들도 못 이기는 척 합류하고, 삼겹살 회식 자리라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을 부하 직원도 식탁 귀퉁이에 앉아 열심히 젓가락질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설과 추석 명절 최고의 선물로 소갈비가 꼽히던 시절이 있었다. 좋게 표현해서 선물이지, ‘잘 좀 봐 주십사’ 하고 보내는 최고급 뇌물성 상납품이었다. 그 시절 소갈비는 요즘처럼 일정한 규격으로 손질한 선물세트가 아니었다. 소의 크기를 한눈에 가늠할 수 있는 짝 갈비였다. 설이나 추석이 지나고 나면 집에 갈비 몇 짝 들어왔다며 은근히 남편이나 아버지의 권력을 과시하던 이도 많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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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갈비. 한마디로 요약하면 ‘힘’이 담긴 음식이다. 외식이나 회식을 할 때 의논해서 결정하는 메뉴가 아니다. 음식 값을 지불할 결정권자의 일방적인 통보가 대부분이다. 힘의 과시가 느껴지는 씁쓸함이 따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사실 직장 회식 메뉴가 소갈비일 땐 격려와 우려의 마음이 교차한다. 그 전에 죽도록 고생한 대가(代價)든지, 아니면 그것을 예고하는 신호다.
어쨌든 양손에 갈빗대를 잡고,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기는’ 행위는 고생 뒤에 낙(樂)이든 아니든 행복한 일임엔 틀림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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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갈비는 묘하다. 언양 불고기, 횡성 한우, 목포 낙지, 서산 어리굴젓 등은 ‘원산지+식재료 또는 메뉴’로 불리는데 소갈비는 원산지가 아닌 곳의 지명이 앞에 붙어 있다. 수원 갈비, 포천 이동 갈비가 바로 그것이다. 수원과 포천이 강원도 횡성이나 경기도 안성처럼 소고기, 아니 소갈비의 원산지가 아닌데 왜 유명할까? 게다가 수원 갈비는 그냥 갈비가 아니다. 꼭 수원은 ‘왕’갈비라고 한다. 반면 포천 이동 갈비는 ‘쪽’갈비라고도 한다. 뭐가 어떻게 돼서 그런지 양쪽의 진실을 파헤쳐 차근차근 비교해보면서 살펴보도록 하자.
‘갈비’란 단어는 조선 인조 17년(1639년) 6월 24일자 《승정원일기》에 등장한다. 누군가는 갈비를 그 이전부터 먹어 왔지만 서민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던 음식이었다. 일반인들이 그나마 군침이라도 삼킬 수 있게 된 것은 값싼 수입 소갈비가 들어오면서부터다. 더불어 나라 경제 사정이 좋아지는 1970년대 들어서서야 소갈비가 가족 외식의 꼭짓점에 등극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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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왕갈비와 포천 이동 쪽갈비, 둘 다 설탕이 들어간 달달한 양념갈비로 시작한다. 큰 갈빗대로 시선을 압도하는 수원 왕갈비는 서울의 남쪽에서, 푸짐한 양으로 승부하는 포천 이동 갈비는 서울의 북쪽에서 달달한 냄새를 풍기며 남녀노소를 유혹한다. 갈비(고기)구이의 맛을 좌우하는 요소로는 재료 자체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과학적 으로 따지면 ‘탄수화물이 분해된 당과 단백질이 분해된 아미노산의 결합인 마이야르 반응’의 영향이 가장 크다. 일반적으로 양념갈비구이가 생갈비구이보다 맛난 이유도 달달한 감칠맛의 결합인 이 마이야르 반응 때문이다.
수원 왕갈비는 ‘왕’이란 접두사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사이즈가 압권이다. 갈빗대와 갈빗살이 대략 15cm에 달한다. 갈비 한 대로 불판을 덮어 버릴 만큼 ‘크다’. 대신 포천 이동 쪽갈비는 갈빗대가 3cm 정도로 작지만 1인분에 7~8대라 양적으로 ‘많다’는 느낌이다.
왕갈비가 수원의 대표 음식이 된 것은 우시장 때문이다. 수원 우시장은 1940년대 ‘전국 3대 우시장’의 하나였다. 소 거래가 활발했던 영동시장 근처에는 자연스럽게 해장국집과 소갈빗집이 생겨났고, 이곳 고기 맛을 본 상인들이 “갈비가 큼지막하고 맛있다”고 소문을 내면서 유명세를 타게 됐다. 수원 왕갈비의 원조집을 찾아보면 ‘화춘옥’이란 옥호가 뜬다. 이곳에서 해장국에 넣어주던 갈비를 양념을 해 구워 팔면서 유명해졌다는 얘기도 있다. 또 ‘왕’이 단순한 사이즈 문제뿐 아니라 정조대왕의 화성행차 아침 수라상에 갈비가 올랐고, 60년대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주 찾아서 붙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풀이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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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이동 소갈비가 유명해진 것은 군부대 덕이다.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일대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군인들이 많았는데 소갈비는 장교들의 회식 메뉴로 간혹 등장했다. 그때 ‘질보다는 양(?)’이란 군대 음식의 특성을 감안해 갈빗대를 잘게 자르고 세로로 갈라 1인분에 10대를 만들어 푸짐하게 내놓던 것이 ‘쪽’갈비로 유명세를 타게 된 배경이란다. 이후 사병과 면회객에게도 입소문이 나면서 포천의 명물이 됐다.
수원 왕갈비와 이동 쪽갈비의 차이점은 갈빗대 말고 양념에도 있다. 수원은 소금양념을, 이동은 간장양념을 주로 쓴다. 그러다 보니 왕갈비는 물기가 없고, 쪽갈비는 물기가 많다. 또 수원 갈비를 시키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있다. 빨간 양념게장이다. 게장 맛에 따라 매상이 달라질 정도로 소비자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반찬이란다. 이에 견줄 만한 것이 이동 갈비에선 동치미국수나 동치미냉면이다. 후식 메뉴로 판매하기도 하지만 기름진 고기 맛을 깔끔한 동치미국물로 마무리하는 게 이동 갈비를 제대로 즐기는 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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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왕갈비 맛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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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수원 |
현지인보다 서울, 안양, 군포 등 타지 손님이 더 많다. 한때 불친절하다는 말도 있었지만 종업원의 서비스가 많이 좋아졌다. 마블링이 잘 된 생갈비가 인기. 하지만 수원 갈비를 제대로 맛보려면 역시 양념갈비가 제격이다. 점심시간에만 파는 갈비탕엔 왕 갈빗대가 들어 있고 국물도 진하다. 미국산 양념갈비(450g) 3만7000원, 미국산 생갈비(450g) 4만원, 갈비탕 1만원.
주소 경기 수원시 팔달구 중부대로223번길 41 전화 031-211-8434 |
가보정 |
1989년 165㎡(약 50평) 점포에서 시작한 동네 갈빗집이 1400석을 갖춘 수원 대표 갈비전문점으로 성장했다. “소고기는 참숯으로 구워야 제맛”이라는 사장이 소신을 갖고 개업 후 지금까지 참숯만을 고집하고 있다. 파인애플을 갈아 넣어 갈비 맛이 달달하면서 부드러운 게 특징이다. 한우 양념갈비(270g) 4만2000원, 미국산 양념갈비(450g) 3만4000원.
주소 경기 수원시 팔달구 장다리로 282 전화 031-238-3883 |
송풍가든 |
경기도 인증 제1호 모범음식점이다. 주인장이 ‘음식에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직접 담근 간장과 포도 발효식초로 고기소스를 만든다. 갈비 맛이 삼삼한 편이라 소스 없이 그냥 먹어도 좋다. 한우 양념갈비(230g) 3만8000원, 미국산 양념갈비(450g) 3만5000원.
주소 경기 수원시 장안구 경수대로 1013 전화 031-252-4700 |
포천 이동 쪽갈비 맛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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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자할머니갈비 |
포천 이동 갈비의 원조집으로 꼽힌다. 1960년대 군인들의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갈비를 잘게 잘라서 가운데를 썬 쪽갈비로 만들어내 팔기 시작했다. 군인들 사이에 인기를 독차지하면서 포천시 이동면의 명품 메뉴로 자리 잡았다. 서비스는 부족한 게 많은데 여전히 손님은 문전성시다. 미국산 양념갈비(400g) 2만9000원, 미국산 생갈비(300g) 3만3000원.
주소 경기 포천시 이동면 화동로 2087 전화 031-531-4459 |
느티나무갈비 |
김미자할머니갈비와 거의 같은 시기에 문을 열어 이동 갈비촌의 쌍두마차로 꼽히는 집이다. 이곳은 양념갈비 못지않게 생갈비도 인기다. 생갈비가 4000원(1인분) 더 비싸다. 2층 음식점 실내 복판으로 500년 된 느티나무가 지나고 있는데 나무 주위엔 복돈이 걸려 있다. 미국산 양념갈비(400g) 2만9000원, 미국산 생갈비(400g) 3만3000원.
주소 경기 포천시 이동면 화동로 2089 전화 031-532-4454 |
출처 : 청사초롱 글 : 유지상(음식칼럼니스트), 사진 : 청사초롱 박은경 기자 |
* 위 정보는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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