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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봉투를 내밀던 내 손이 부끄러웠다

[2017 청렴 사연·수기 공모전] ⑦ 일반부문 우수상

2017.10.19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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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금지법의 시행 등 청렴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부와 국민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국민권익위원회는 청탁금지법으로 바뀐 삶의 이야기 등 청렴과 관련된 국민들의 수기 공모전을 진행했다. 올해로 세번째를 맞이한 공모전 우수작을 정책브리핑에서 공유한다. 과연 우리는 생활 속 청렴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을까? 쉬운 듯하면서도 어렵게 느껴지는 청렴의 의미를 국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 번 더 생각해보자.(편집자 주)

* 수상자 중에는 공익신고자가 포함돼 있어 개인 실명 등은 밝히지 않음을 양해바랍니다.

대학 3학년인 아들이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해 보고 싶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정직하고, 소신이 있는 아이이기는 하지만 당선되기가 쉬운 것도 아닐테고 혹시라도 선거 후 득표율이 저조해서 자신에게 실망하고 자신감을 잃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도전해볼 수 없는 일이니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뜻이 있으면 한번 해보라고 했다.

11월 첫 주부터 본격적인 선거유세전에 들어갔고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갈 때쯤 아들이 유세하는 모습을 한번 보고 싶은 마음에 학교 앞으로 향했다. 해도 뜨기 전 어둑한 교문 앞에는 후보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조금 있으니 같은 색깔 점퍼를 입은 팀끼리 일렬로 늘어서더니 공약들이 적혀있는 피켓을 들고 등교하는 학우들에게 자기들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소중한 한 표를 찍어 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하는 모습이 국회의원 선거유세 못지않은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네 명의 후보 중 기호 2번인 아들도 2번이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빛바랜 낡은 주홍색 점퍼를 입은 일행들과 함께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학우 한 명, 차 한 대가 지나갈 때마다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 자신이 내건 공약을 꼭 지키겠노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모습이 의젓해 보였다.

아들이 내건 공약은 ‘등록금 동결, 장학제도 늘리기, 학생식당 운영업체교체/음식 질 높이기’ 등이 주된 공약이었다. 다른 것 들은 잘 모르겠지만 학생식당은 문제가 많다고 여러 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학교가 외진 곳에 있다 보니 주변에 식당이 없어서 학생들은 교내식당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가격대비 음식 질이 형편없이 낮은 데다 조리하시는 분들이 턱없이 부족해서 점심을 거르는 학생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나 역시 학부모 입장에서 누가 학생회장이 되든 그 부분만은 꼭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아들의 유세하는 모습도 봤으니 출근하려고 버스정류소로 내려가고 있는데 셔틀버스가 도착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한 아주머니가 셔틀버스 앞으로 달려가더니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나눠 주는 것이었다. 흔히 학교 앞에서 나눠주는 홍보용 전단지나 할인 쿠폰 같은 것이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마주 걸어오는 여학생들이 주고받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1번 후보 어머니, 진짜 대단하시지 않나? 도서상품권을 전교생에게 다 나눠주실 생각인지 가방에 가득 들어있더라. 인자 막판이라 애가 타시는 갑따.”
“이런 거 막 나눠주시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을 낀데…”
“그 선배 동아리 모임마다 참석해서 술 사주고, 밥 사주고, 돈도 엄청 마이써따카더라. 우리 과 봉사활동 갔을 때도 거까지 찾아와가 저녁 사주고 갔다 아이가. 4번 선배도 만만치 않게 작업하고 다닌다카던데… 1번, 4번, 두 선배가 경쟁하는 거 같제? 과연 누가 당선될지 억수로 궁금해지네.”
“그란다꼬 되겠나? 어쨌든, 그리 공들였는데 안 되면 우짜노?”
“선배언니들 말로는 1번 선배가 80%는 가능성 있다카더라.” 여학생들이 주고받는 대화 소리를 들으니 온몸에 힘이 쫙 빠졌다.

지난여름, 아들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총학생 회장출마에 뜻을 가진 친구들은 방학 동안 여기저기 물 밑 작업하러 다니면서 표 굳히기를 한다고 정신없는데 우리 아들만 ‘청렴한 선거’를 할거라며 그들이 그러든 말든, 강 건너 불구경하듯 구경만 하고 있어서 답답하다고 말 한 적이 있었다.

물밑 작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동아리 모임도 찾아다니고 되도록 많은 학생을 만나서 밥도 사고 술도 사주면서, 총학생회장에 출마할 의사가 있으니 지지하여 달라고 부탁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말도 한마디 못 꺼내보고 혼자 고민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고 미안해서 그날 저녁, 남편 몰래 아들에게 돈 백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네주면서 우선 이 돈으로 다른 친구들처럼 물밑 작업을 하고 있으면 형편 되는대로 조금 더 마련하여 주겠다고 했더니 펄쩍 뛰는 것이었다.

“어머니! 돈을 써 가면서까지 총학생회장이 될 필요가 있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해서 회장이 된다면 그건, 내가 아니라 돈 이 회장이 되는 겁니다. 술 먹고, 밥 얻어먹어야 표를 찍어주겠다면 저는 그런 표, 단 한 표도 필요 없습니다. 엄마는, 아들이 그렇게 하려고 해도 그러면 안 된다고 말리셔야지.”

봉투를 내밀던 손이 부끄럽고 무안해져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래도 저를 위해서 그러는 엄마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 서운하긴 하였지만 아들 말이 옳기는 했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지 못하니 그 게 문제 아닌가! 노파심에 내 목소리도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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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돈 한 푼 안들이고 어떻게 선거를 할꺼고? 물밑 작업인가 그거 말고도, 단체복도 사야 하고, 현수막이니, 포스터니… 돈 많이 든다카던데.”

“단체복은 작년에 선배님들 입었던 거 물려 입기로 했고, 포스터도 직접 만들면 되고 학교 창고에 찾아보니까 작년에 선배님들이 사용했던 거, 재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그런 거 쓰면 됩니다. 꼭 필요한 비용들은 회원들 모두 N분의 1로 나눠서 부담하기로 했고, 최대한 아껴서 최소의 비용으로 깨끗한 선거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으니까, 어머니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너희들 뜻은 알겠는데, 세상이 그러타 아이가? 얻어먹고 실타는 사람 엄따. 니그 학교 학생들이라꼬 별수 있겠나? 남들이 하는 거, 흉내 내는 시늉이라도 해봐야 후회가 없을까 아이가?”
“남들이 그런다고 우리까지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우리들만이라도 정직하게 해야 후배들도 본받을 거 아닙니까.” 그때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아들아, 너희들처럼 해서 과연 몇 표나 나오겠니?’

하지만 아들의 뜻이 워낙 강경하다 보니 그대로 지켜볼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속상한 마음에 남편에게 전화해서 다른 후보들처럼 우리도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을 할 걸 그랬다고 했더니 오히려 남편이 화를 내는 것이었다.

“대학 총학생회장 선거가 얼마나 중요한 선거인데 청렴을 가르쳐야 할 부모들이 우리나라를 책임져야 할 젊은이들에게 부정, 부패부터 가르친다면 미래가 어떻게 되겠소?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제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삐뚤어지는 법이요. 그 자리는 수천 명의 학생들을 대표할 중요한 사람을 선출하는 자리지, 엄마 치마폭에 휩싸여 좌지우지하는 초등학교 1, 2학년 반장을 뽑는 자리가 아니란 말이오.”

구구절절 옳은 말 이기는 하였지만 그 상황에서 그렇게 말하는 남편이 너무나 야속했었다. 그 날 이후, 총선이 끝나는 날까지 도통 손에 일이 잡히질 않았다. 아무것도 한 것도 없고 해준 것이 없으니 마음은 접었지만 득표율이라도 조금 많이 나와서 자신감만이라도 잃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투표 당일! 오후 여덟시 경이 되면 당선자가 확정될 것이라고 들었는데 열 시가 다 되어가도 아들에게선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혼자서 낙담하고 있지나 않을까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아들이 들어오면 무슨 말로 위로를 해주어야 할지 걱정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기다리던 아들 번호인데도 선뜻 받기가 망설여져서 여러 번 벨이 울리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수화기를 들었다.

“어머니, 저, 해냈어요! 과반수 이상 높은 득표율로 어머니 아들이 당선되었습니다. 이게 다 부모님께서 올바르게 가르쳐 주신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말이가? 확정됐나? 우리 아들 장하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다 있노?”
“어머니가 걱정하셨던 것처럼 우리 학우들, 밥 한 끼, 술 한 잔에 흔들리는 형편없는 친구들이 아니었습니다.”

잠시라도 학생들을 부정부패에 익숙한 속물로 취급을 했던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활발하게 선거운동을 했던, 가장 유력하다던 후보가 득표율이 가장 낮았다는 것이었다. 생각지 못했던 이외의 결과라서 그런지 정말 기뻤다. 아들이 당선되어서 기쁘기도 하였지만 젊은 학생들도 ‘청렴’함을 원하고 있었고 ‘청렴’함을 알아봐 주었다는 점이 더없이 감사했다.

며칠 후, 낯선 남자가 집으로 찾아왔다.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학생식당 운영자인데 아드님이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것을 축하하러 왔다면서 봉투를 한 장 내미는 것이었다. 어떻게 우리 집을 알고 찾아왔는지 황당하기도 하였지만 그분이 내미는 봉투가 더 황당했다.

봉투를 정중히 사양했더니 선거운동 한다고 돈이 많이 들었을 거 아니냐며 관례적인 일이고, 아무 뜻 없이 축하금으로 주는 것이니 부담 없이 받아달라면서, 정신없이 바빠질 텐데 ‘승용차’ 한 대 사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봉투 안에는 상당한 액수의 돈이 들어있듯 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몹시 불쾌했다.

‘당신 같은 어른들이 앞날 창창한 젊은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라고 따끔하게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그냥 돌려보냈다. 만약, 우리 아들도 선거운동 하면서 일부 후보들처럼 많은 돈을 썼더라면 어쩌면 나도, 그분이 내미는 봉투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정부패하지 않고도 정직과 청렴함 만으로도 너무나 훌륭하게 잘 해 내는 것을 지켜보았으니 그런 돈은 전혀 필요치가 않았다.

아들이 가장 먼저 시도한 일은 학생식당 업체교체였다. 취임 전 이기는 하였지만 겨울방학 동안 그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신학기에 지장이 없다며 뛰어다니는 것을 보니 대견하고 뿌듯했다.

아들의 선거를 치르면서 어른으로서 부끄러운 점도 많았지만, 젊은이들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우고 반성했다. 많은 젊은이가 당장 자신들에게 득이 되는 부정부패보다는 조금은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정직과 청렴함을 원하고 있다는 것, 또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건강한 생각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 너무나 감사했다. 하여, 우리나라의 미래가 더 밝아 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자료제공: 국민권익위원회 블로그(http://blog.daum.net/loveac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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