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한 공무원들이 공직에서 쌓은 경험과 전문성을 발휘해 국민에게 더 나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퇴직한 소방공무원이 학교안전지도관으로 변신해 아이들에게 재난안전 교육을 한다. 또 퇴직한 경찰공무원은 어르신들의 교통안전컨설턴트로 은퇴 전보다 더 바쁜 삶을 살고 있다. ‘퇴직공무원 노하우플러스 사업’이 국민과 퇴직공무원 모두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편집자 주)
나는 1986년 경찰공무원에 임용돼 33년을 재직하며 교통경찰 업무에만 22년간 근무한 후 교통외근팀장 업무를 마지막으로 2015년 6월 30일자로 정년퇴직했다.
퇴직 후에도 재직시에 경험한 교통 노하우를 어떻게 사회에 봉사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인사혁신처 노하우플러스 사업 공고를 접했다. 마침 사업 종류 중에 나의 거주와 근무경험에 맞는 ‘부산시 고령자 교통안전 컨설팅’ 사업이 있었고, 응시한 결과 나를 포함한 5명의 교통분야 근무 퇴직공무원이 고령자 교통안전 컨설턴트로 선발됐다.
활동에 앞서 부산시 담당부서 관계자의 설명을 통해 고령자 교통사고 현황과 고령자 교통사고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고 향후 부산시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고령자 교통안전 정책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고령자의 교통안전 교육이 전체 고령인구에 비해 낮은 실정임에 따라 노인대학·노인교실·경로당 등 노인여가시설을 중심으로 고령자 교통안전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고령운전자 인지·지각검사 시행, 그리고 지역별 고령자 교통안전 위해요소를 발굴 하는 것이 우리 고령자 교통안전 컨설턴트의 임무였다.
본격적인 강의에 앞서 도로교통공단 부산본부 연구교수님의 도움으로 교수방법에 대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나와 동료 참가자들은 부산시에서 제공한 노트북 등의 교육 장비, 교통안전 홍보물, 강의안을 지급받고 수차례 모의 강의를 순번을 바꿔가며 진행하면서 활동을 준비했다. 실제 사고영상과 안전수칙을 동영상으로 많이 담아 교육대상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5월부터 활동이 시작됐다. 처음 강의를 하러 간 곳은 큰 규모의 노인대학이었는데 약 300여명의 어르신들이 참석하셨다. 현직 재직 시절 간혹 노인교실과 경로당 등에서 강의를 하였던 경험은 있었지만 많은 어르신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려고 하니 긴장감이 생각보다 높았다.
그러나 막상 강의를 시작하고 어르신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바라보니 긴장은 어느새 사라졌고 첫 강의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첫 강의를 시작으로 노인복지관, 경로당 등 다양한 노인여가시설에 본격적으로 교육을 진행했다.
일방적인 전달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어르신들의 안전을 걱정하며 안전하게 다니시라고 당부를 드리니 “친절하고 다정다감하게 얘기해 주셔서 너무 좋더라”, “정말 교통사고의 위험성과 심각성을 느끼게 되었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7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한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노인대학을 방문해서 교통안전 교육을 했다. 강의가 끝나고 80대로 보이던 한 어르신이 나를 향해 손수건을 내밀며 땀을 닦으라고 했다.
“사실 친한 친구가 얼마 전에 무단횡단을 하다 교통사고가 나 세상을 떠났다. 오늘 강의를 듣고 이제 어떤 경우라도 무단횡단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고된 점도 있었다. 부산 지형의 특성상 주택가 밀집지역이나 고지대로 이동할 때의 고충이 있었다. 강의에 쓸 노트북, 인지·지각검사 장비는 꽤 무거웠고 이번 여름의 폭염은 특히 힘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고령자 교통안전 컨설턴트의 활동 이후의 부산지역의 어르신 교통사고가 꽤 많이 감소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부산은 전국 특·광역시중 고령화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인데 지난 9월 발표한 경찰청과 국토교통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전년 대비 고령자 교통사고 감소율이 35%로 전국에서 부산이 가장 높았다.
사실 나도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몇 해 전 지리산 쪽 고향에 계신 어머님께서 음주운전 차량에 의한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돌아가셨다. 그런 상처가 있기에 어르신들의 교통사고 예방에 대한 나의 진심이 조금은 어르신들에게 전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안 된 활동기간이었지만 조금이나마 어르신들의 교통사고가 줄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우리나라의 고령 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향후 어르신들의 교통안전 교육은 보다 더 촘촘하게 진행돼야 한다. 이에 고령자 교통안전 컨설턴트 인력들이 더 많이 확보돼 어르신들의 교통안전이 좀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본다.
아울러 그동안 공직자로서 쌓아온 노하우와 경험이 퇴직과 동시에 사라지지 않고 퇴직자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에게 잘 전해질 수 있었던 점에 인사처와 부산시 관계자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