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먹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술 취한 나를 내 차가 알아서 집까지 데려가주면 안 되나? 조금 황당한 생각일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내가 사는 분당구 판교에서 자율주행차가 시험주행을 하는 것을 자주 본다. 그렇다면 머지않아 술 먹어도 걱정 없는 날이 오지 않을까? 이런 날이 빨리 오리라 생각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정부의 규제 혁파다.
규제(規制)는 못하게 막는 부정적 의미다. 기업에게 좋을 리 없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규제가 장애물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그래서 정부가 지난 2월 신제품, 신기술 출시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일시에 면제해주거나 임시 허가해 주는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했다.
규제 샌드박스는 한마디로 제도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것이다. 시행 6개월 만에 81건의 과제가 도출됐다. 그 중 수소충전소 설치는 가장 눈에 띄는 변화다. 규제 때문에 설치하지 못했던 충전소가 동네에도 생기니 수소차를 끌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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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샌드박스는 제도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것이다. 시행 6개월 만에 81건의 과제가 도출되는 등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사진은 수소충전소 모습.(사진=저작권자(c)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규제 샌드박스가 잘 시행되고 있는데 얼마 전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가 강원 등 전국 7개 지역을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했다. 세계 최초라고 한다. 사실 '경제자유특구'란 말은 들어봤어도 규제자유특구란 말은 처음 들어본다. 중기부 말을 빌리자면, 혁신적인 기술을 시험하고 신산업 육성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7개 규제자유특구는 앞으로 2년간 규제 제약 없이 신기술을 개발하고 테스트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규제샌드박스(타부처)와 규제자유특구(지역특구법)는 어떻게 다를까? 공통점은 실증특례, 임시허가, 신속확인 등 3종 세트의 규제 샌드박스가 적용되는 것이다. 다른 점은 규제 샌드박스는 기업의 신청으로 개별 단위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고, 규제자유특구는 지역단위로 핵심규제들을 패키지로 완화하여 비수도권 지역의 신산업 육성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규제 샌드박스를 지역으로 확대시킨 것이 규제자유특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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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강원도 등 7개 지역이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됐다. 선정된 지역들은 앞으로 2년간 규제 제약 없이 신기술을 개발하고 테스트 할 수 있게 됐다.(출처=세종시청) |
승인된 지역을 보니 강원의 디지털 헬스케어, 대구의 스마트 웰니스, 전남의 e모빌리티, 충북의 스마트 안전, 경북의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부산의 블록체인, 세종의 자율주행 등 7개 지역과 사업이다. 지난 4월 발효된 개정 지역특구법에 따라 처음 도입된 것이다. 이중 세종시의 자율주행에 관심이 갔다. 세종시가 국내 최초로 자율차 상용화 거점도시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세종시청 경제정책과 자율차산업팀장 유민상사무관에게 자율차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이유를 물었다. 유사무관은 세종시가 2018년 10월 '자율차 산업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버스전용차로인 BRT(Bus Rapid Transit, 간선급행버스체계, 주요 도로에 버스전용차로를 설치하고 급행으로 버스를 운행시키는 시스템)를 갖추는 등 자율차 산업 육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한다.
BRT는 땅 위의 지하철이라고 불리는 빠른 교통체계다. 다른 도시의 BRT와 달리 세종시 BRT는 일반차의 물리적 진입이 불가능한 구조다. 즉 도시 조성단계부터 자율차가 활용되기 적합한 도로 체계를 갖췄다. 그래서 기업들이 자율차 상용화에 적합한 도로 인프라를 보고 세종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BRT 노선에 자율차가 상용화되면 세종시 전역을 20분대로 이동할 수 있다니 대박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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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제2테크노밸리에 있는 경기도자율주행센터 제로셔틀 홍보관 |
세종시는 한국교통연구원과 자율주행을 기반으로 한 대중교통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국토교통부 지원 하에 연구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도로 인프라 설치와 실증기간 조사 등을 통해 자율차 안전운행 요건을 도출하고 있다. 앞으로 3개월간 유도차량을 동반한 실증테스트, 6개월간 일반차와 함께 반복적인 실증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자율차 상용화가 완성된 세종시는 어떤 모습일까? 자율차가 상용화되면 세종시 내 대중교통 취약지역인 세종테크밸리(도시첨단산단) 지역의 대중교통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주민들이 소유한 모든 자동차는 도시 입구에 주차하고 내부에서는 자율차, 자전거를 이용하는 스마트시티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도심지 교통정체, 자동차로 인한 미세먼지 감소 등 여러 가지 부수적 효과도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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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에 가서 자율주행차량을 직접 타보니 생각보다 빠른 기술 발달에 놀랐다. |
세종시에 가서 직접 자율주행 차량을 탑승하고 싶었지만 아직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 그래서 판교에 위치한 경기도 자율주행센터를 찾았다. 이곳은 자율주행 차량 탑승을 원하면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관계자 안내로 홍보관에서 자율주행센터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뭔가 복잡하지만 자율차가 판교 테크노밸리를 다닌다는 게 실감이 가지 않는다. 판교에 갈 때 가끔 운전사 없이 다니던 차량을 드디어 한 번 타보게 됐다. 8월부터 체험 탑승이 시작됐는데, 인기가 많아 매회 만원이다.(단, 안전 문제로 성인만 가능하다)
내가 탄 차는 '제로셔틀'이다. 경기도 자율주행센터가 연구 개발한 차다. 왜 이름을 제로셔틀이라고 지었을까? 판교 제로시티에서 운영되는 자율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규제 제로, 비용 제로, 탄소 제로, 사고 제로 등 4가지 의미도 담았다. 내가 탑승을 하러 간 날 국민대학교 대학원(스마트경험디자인학과) 이현욱 등 3명이 탑승 체험을 하러 와서 함께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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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차량이 판교 테크노밸리 일대를 혼자서 잘도 간다. 운전사 없이 가는 지하철, 경전철은 타봤어도 운전사 없는 자동차 탑승은 처음이라 조금 흥분됐다. |
탑승 체험자들이 올라타자 스스로 출발했다. 시속 25km 속도다. 속도는 느리지만 운전사가 없어서 그런지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제로셔틀이 판교 테크노밸리 도로 한가운데를 혼자서 잘도 간다. 모니터에는 제로셔틀 주변을 오가는 차량들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다. 체험 주행거리는 5.5km다. 이 구간에 신호등은 15회, 좌회전 4번과 우회전 2번을 한다. 차선변경도 12번이나 했다. 운전사 없이 가는 지하철, 경전철은 타봤어도 운전사 없는 자동차 탑승은 처음이다. 신기하기도 하고 우리나라 기술이 이렇게 발전했나 하고 놀랐다.
국민대학교 대학원생 이현욱씨는 "자율주행 제로셔틀을 타보니 가감속이 매우 부드러웠으며, 실내 소음 또한 거의 없어서 탑승 중 거슬리는 점이 없었다. 불법 주정차 차량이 있을 때 자율차가 알아서 인지하고 피해서 차선을 변경을 했다가 불법 주정차 차량을 지난 후 다시 원래의 차선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자율주행 기술이 많이 발전했음을 느꼈다. 정부의 규제완화 등 많은 지원을 통해 자율주행 기술이 더 발전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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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차량 모니터에는 주변을 오가는 차량들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다. |
규제자유특구에서는 지자체 추산에 따르면 향후 4~5년간 매출 7000억원, 고용유발 3500명, 400개 기업 유치효과가 기대된다고 한다. 세종시를 보면 매년 25개사의 기업유치, 신규고용 222명, 사업화 매출액 170.6억원, 특허 17건 등의 경제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부가 2차 특구도 지정한다. 사전 컨설팅과 특구계획 공고 등을 거쳐 12월 중에 이뤄질 예정이다. 1차 지정에서 누락된 지자체들이 적극적으로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노력들이 발전을 거듭하면 운전자 없는 자율주행차량들이 도로를 누빌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서울 도봉구, 의정부, 용인시 등 경전철은 물론 신분당선 지하철은 무인 운행이다. 자율주행은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세종시가 자율차 상용화 거점도시로 성장한다고 하니 다른 지자체도 자율차 상용화에 눈길을 돌리지 않을까 싶다. 자율차가 가져오는 교통문제 해결은 물론 경제적 부수효과도 만만치 않아 마다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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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차 개발이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에 규제자유특구 지정으로 날개를 달게 됐다. |
정부가 왜 규제자유특구를 지정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결론은 미래의 먹거리 즉 4차산업 발전을 위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규제샌드박스의 일환으로 혁신기술과 관련된 규제를 풀어 고용유발 등 경제발전을 위한 정부의 과감한 정책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규제 때문에 사업 기회는 물론 지역발전에 제약을 받았던 기업과 지자체들이 규제자유특구에서 새로운 사업 진출의 기회를 갖게 될 것으로 기대가 된다.
판교 테크로밸리에 가서 자율주행차량을 탑승해보니 세상이 참 빠르게 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규제 때문에 제대로 기술을 펼쳐보이지 못했던 자율주행차 개발이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에 규제자유특구 지정으로 날개를 달게 됐다. 정부의 과감한 규제 혁파로 자율차가 상용화되는 날이 빨리 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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