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일간지이며 조선시대의 『국정신문』이라 할 수 있는 연설(筵說)이 신문의 날(지난 7일)을 맞아 청주대 신문방송학과 박정규(朴正圭) 교수(50·신문사(新聞史)전공)에 의해 공개됐다.
문헌기록으로만 알려져 왔던 연설의 실물이 발견됨으로써 전통사회에서의 언론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발견된 연살은 조선 헌종3년(1837년) 4월5일부터 11일까지 발간된 것이다. 다음은 朴교수와의 일문일답주요내용.
- 먼저 연설 발견의 의의를 말씀해주십시오.
▲전제왕권 중심의 조선시대에도 국정을 국민들(여론형성층)에게 널리 알렸던 신문현상이 제도화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상소와 같은 상향적인 언로(言路)뿐만 아니라 하향적인 언로도 상당히 트여 있었음도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조선시대 연설의 역할과 내용은.
▲조선시대에는 관리·양반 독자들에게 전달되던 ‘기별(奇別)’ 또는 ‘보조(朝報)’라는 필사신문도 있었습니다. 숭정원에서 발표하는 국왕의 동정, 관리의 인사·이동 등 다양한 소식과 정보를 실어 오늘날 종합일간지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 인사 소식만 알리는 ‘정사(政事)’, 대신회의에서 거론된 안건의 소식지인 ‘次對擧隆’(차대거조) 등도 있었습니다. 이와는 달리 연설은 군신(君臣) 사이에서 이루어진 회의 내용만을 따로 기록하여 발표하는 특수 전문신문 같은 관보성격의 뉴스 매체였습니다. 대부분의 ‘연설’ 내용은 국민들(관원과 양반, 토호계층)에게 발표되어 국왕과 대신들의 국정에 관한 견해와 의지를 알 수 있게 한 것이지요. 이번에 발견된 ‘연설’에는 ‘농사를 잘 짓도록 제방을 잘 쌓자’, ‘나쁜 수령은 파면한다’는 등의 토의내용과 왕릉의 수리문제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연설의 발견은 현재의 「국정신문」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 발견된 연설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국정의 소식이나 정보를 국민들과 공유하는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국정신문」도 우리 전통사회에서 볼 수 있었던 ‘언로의 확대’가 국민설득의 지름길이라는 인식을 받아들여 국민의 알 권리를 최대한 충족시킬 수 있는 제작노력이 지속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