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깊이 있는 분석기사로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지만 2005년 4월부터 10월까지 6개월간 세계은행으로부터 자료 제공을 못 받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유는 세계은행 온라인미디어브리핑센터(OMBC)에 올라있던 자료를 지정된 보도시점 이전에 기사화했기 때문이다. 결국 세계은행은 보도제한 시점, 즉 엠바고 파기에 대한 책임을 물어 취재편의를 제한한 것이다.
FT 측은 엠바고 파기가 우발적이었다고 설명했지만 세계은행의 태도는 단호했다. 당시 세계은행 비타 플론카 공보담당관은 “어떠한 경우든 엠바고 파기 시에는 관련자료 제공 금지 처분을 받도록 돼 있다”고 강조했고, FT 측은 제재를 받아들였다.
7일 다수 언론이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의 원칙을 정한 정부의 ‘취재지원에 관한 기준안(총리훈령)’ 내용을 보도하면서 언론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라고 매도했다.
선진국도 엠바고 파기 땐 불이익
그 중 핵심이 엠바고 설정과 파기 때 불이익 조치 부분이다. 정부는 비보도나 엠바고 요청을 이행하지 않은 언론사 및 기자에게 자료 제공이나 인터뷰 거부 등 불이익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명문화할 방침이다.
엠바고는 원칙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등 공익적 목적이나 중대한 정책에 대한 사전 이해를 높이기 위한 선의의 조치다. 만약 필요한 경우 엠바고 설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언론에 대한 정부의 정보 제공이 충분히 이뤄질 수 없고 언론 취재 역시 불편과 제약이 따른다.
물론 이번에 마련한 취재지원에 관한 기준안에는 정부 부처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능한 엠바고 요청을 못하도록 하고 있다. 즉 행정 편의 목적만으로는 엠바고를 설정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또 필요하면 기자들의 의견도 청취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엠바고를 설정하고 제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엠바고 파기에 따른 불이익 조치는 공정성을 위해 개별 부처가 아닌 각 부처 홍보관리관으로 구성된 취재지원 운영협의회에서 논의하고, 해당 언론사와 담당기자의 소명기회를 제공함은 물론 언론단체가 참석해 의견을 개진할 수도 있다. 불이익 조치 결정 이후에도 재심청구 기회를 보장한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비보도나 엠바고를 전제로 한 언론 대상 자료제공이 관행으로 정착돼 위반사례가 거의 없다. 만약 이를 어겼을 때 제재 역시 앞서 FT 사례에서처럼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다. “선진국선 상상도 못할 일”이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와 달리 미국, 영국, 스위스 등 국가에서도 엠바고 파기 때 취재자료 제공 거부, 출입 제한 등 조치를 취하고 있다.
엠바고 파기 피해자는 국민
7일자 조선일보는 총리 훈령으로 준비 중인 취재지원에 관한 기준안을 비판하면서 지금까지 '비보도'나 '엠바고'는 정부가 요청하면 각 언론사가 협의를 거쳐 자율적으로 결정해 왔고, 약속을 깬 언론사나 기자에 대한 징계도 해당 출입기자단이 행사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여기서 조선일보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우선 정부는 개방형 브리핑제도 도입 이래 조선일보가 거론하는 부처 출입기자단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번에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 나온 주요 배경이기도 하다. 정부부처 내 자리잡은 기사송고실이 과거 관언유착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받던 배타적 출입기자단으로 되돌아가려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한 엠바고 운영 등은 출입 기자실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정부가 엠바고를 요청할 때 필요하다면 관련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의견을 물을 수는 있다하더라도 엠바고의 요청과 운영은 전적으로 정부의 몫이다. 이를 두고 '총리훈령으로 기자 제재 추진'한다는 조선일보의 기사는 현실판단이 한 참 덜 된 것이다.
정부 부처가 요청한 엠바고의 파기는 정부와 언론 간의 기본적인 신뢰를 해치는 것은 물론 정보의 정상적인 흐름을 막아 국민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정부 제공자인 정부가 나서 불이익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신도시 입지 발표의 경우를 보자. 정부의 공식발표 이전에 어설픈 언론 보도가 나가면 해당 지역 땅값이 급등하고 전체 부동산 시장을 들썩이게 만들어 가격을 왜곡한다. 이를 보도한 특정 언론사는 소위 특종을 했다고 자위할지 모르나 공공의 이익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주1회 이상 브리핑 불참 시 해당 부처 출입을 제한하기로 했다는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기준안을 꼼꼼히 보면, 정부를 상대로 취재활동을 하는 기자는 언제나 자유롭게 브리핑실 및 송고실을 이용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정기출입증 기준이 부처 출입 제한?…없어도 취재가능
주1회 이상 브리핑 참석 기준은 상시적으로 이용하는 기자의 출입편의를 위해 발급하는 ‘정기출입증’의 기준일 뿐이다. 현재 정기출입증 발급 기준은 주2회 브리핑 참석으로 돼 있으나 기준안은 되레 이를 완화한 것이다.
정기출입증은 정부 예산으로 발급되고 해당 기자에게 복사비와 전화요금 등 운영경비를 요청할 수 있는 만큼 무분별하게 발급할 수 없어 기준을 정한 것 뿐이다.
정기출입증이 없더라도 임시출입증을 통해 정부 브리핑에 제한없이 참석할 수 있다. 정기출입증 발급 기준을 놓고 마치 부처 출입을 제한하는 것처럼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적극적 취재응대 의무화…위반 시 징계대상
일부 언론은 또 취재 불응 공무원에 대한 제재 수단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사실 총리 훈령으로 마련된 기준안은 이례적으로 공무원의 적극적 취재응대를 의무화했다. 이 훈령이 시행되면 공무원은 의무적으로 공평한 취재 기회 제공과 적극적 지원을 해야 하며, 특별한 이유없이 취재를 거부하거나 회피해서는 안 된다.
또 언론의 전화, 면담, 자료요청 등 취재활동에 대해 최대한 신속 정확하게 응대해야 하고, 지연되거나 협조가 어려울 경우는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신속응대 원칙도 포함돼 있다.
제재수단은 훈령의 의미 속에 들어있다. 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훈령(안)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고, 이를 어길 경우 직무상 의무 위반으로 징계대상이 될 수 있다.